▲민족문제연구소, 광복회, 주요 야당이 지난 10일 오전 11시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에서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윤석열 정권 규탄 집회'를 진행했다.
소중한
해마다 8월 15일이면 광복절 행사가 엄숙히 거행되곤 하지만, 제대로 거행된 광복절 기념식은 그리 많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을 비판해야 할 이 자리가 엉뚱한 성토장이 되는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이승만은 정부수립 이후의 첫 광복절인 1949년 8월 15일의 '정부수립 일주년 기념사'에서 이날이 "제4회 해방일"이라고 한 뒤, 기념사 본론의 첫마디로 제주 4·3을 거론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던 벽두에 제주도의 30만 인구는 대부분이 공산당 폭도의 손에 들어 있어서 작년 5·10 선거 때 제주도 세 선거구역 중 한 구역은 투표조차 못했"다며 4·3 북한 개입설이라는 가짜 뉴스를 유포했다.
그런 뒤 일본이 아닌 이북을 향해서도 집중포화를 날렸다. 그는 "공산당의 음성은 남을 속이는 음성입니다"라며 "음식을 주마, 땅을 주마, 재산을 주마, 또 자유를 주마 합니다"라는 말로 이목을 북한에 고정시켰다.
그는 "모든 민주국들이 공산세력에 대한 큰 역량을 따로따로 대립하게 된다면 그 결과로는 따로따로 실패될 것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반공투쟁의 국제적 연대를 강조하는 말로 광복절 경축사를 끝맺었다.
"모든 민주국가들은 구라파나 미주나 아세아를 물론하고 다 우리 동맹국입니다. 그 나라들이 다 각오한 바는 지금 시기가 이르렀으니 이때에 다 일어나서 자기들의 생존을 위하여 싸우던지 그렇지 않으면 굴복하던지 두 가지 중 한 가지만을 취해야 될 것입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광복절이 6·25 기억일처럼 변용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휴전 이듬해인 1954년 8·15기념사에서 이승만은 "사실대로 말하자면 오늘이 진정한 해방일로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라는 말을 연설 첫마디로 던졌다.
진정한 해방이 오지 않았다는 그의 말은 일제 잔재가 청산되지 않았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그는 "우리 반도의 반은 해방했다는 것은 사실"이라며 휴전선 이남은 확실히 해방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이 아닌 북한을 겨냥해 8·15의 의미를 설명했다. "지금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우리가 다 합동해서 압록강까지 다 밀고 올라가자는 것"이라는 말이 8·15 경축사에서 나왔다. 8·15를 6·25로 변용하는 이 같은 모습은 그 후 역대 반공정권의 광복절 행사에서 거듭거듭 되풀이됐다.
그런 모습은 과거처럼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윤석열 정권하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윤 대통령 역시 취임 첫해인 2022년 경축사에서 "독립운동은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라며 "그 이후 공산세력에 맞서 자유국가를 건국하는 과정"이 독립운동이었다며 초점을 일본이 아닌 북한으로 돌렸다. 일본제국주의의 역사적 해악을 되짚어야 할 날에 북한 정권을 거론한 것이다.
윤석열 정권은 이에 그치지 않고 일본 극우의 역사관인 역사수정주의(역사부정주의)의 한국 버전을 광복절 경축사에 내놓기까지 했다. 일본제국주의가 저지른 명명백백한 반인류 범죄를 부정하거나 수정하는 역사관의 한국판을 선보이고 이를 통해 일제강점기 역사의 정확한 이미지를 흐리게 만드는 시도가 경축사에서 나타났다.
취임 첫해인 2022년 경축사 때 그는 "광복절인 오늘, 우리는 과거에서 미래를 관통하는 독립운동의 세계사적 의미를 다시 새겨야 합니다"라고 한 뒤 독립운동가들의 여러 유형을 이렇게 열거했다.
"조국의 미래가 보이지 않던 캄캄한 일제강점기에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며 국내외에서 무장 투쟁을 전개하신 분들, 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면서 무장 독립운동가를 길러내신 분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하고 벅차오릅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할 민족 역량을 키워내기 위해 국내외에서 교육과 문화 사업에 매진하신 분들, 공산 침략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우신 분들, 진정한 자유의 경제적 토대를 만들기 위해 땀 흘리신 산업의 역군과 지도자들, 제도적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 희생과 헌신을 해오신 분들이 자유와 번영의 대한민국을 만든 위대한 독립운동가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모든 분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이분들에 대한 존경과 예우를 다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일 뿐 아니라 미래 번영의 출발입니다."
윤 대통령은 독립운동가로 존경과 예우를 받아야 할 "이분들" 속에 "공산 침략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우신 분들"을 끼워 넣었다. 반공투사들을 독립운동가의 범주에 포함시킨 것이다. 20세기 전반에 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전 세계 투쟁세력의 상당수는 공산주의자들이었다. 제국주의가 자본주의의 극단적 형태였으므로, 공산주의가 좋든 싫든 제국주의와 싸우려면 공산주의 이론을 배워두는 게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 반공투쟁의 첨단에 섰던 것은 일제 경찰 같은 제국주의 세력이었다. 일제는 독립운동가들을 빨갱이로 몰아세우며 이른바 반공투쟁을 전개했다. 반공투사들을 독립운동가 범주에 끼워넣은 윤 대통령의 경축사는 그런 역사를 왜곡하고 수정해 일제가 한민족의 우호세력이었던 듯한 이미지를 조성할 만한 것이다.
오죽하면 '진정한' 광복절 행사를 따로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