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태영호 전 의원(왼쪽)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안보의 새로운 비전 핵무장 3원칙 세미나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주 4·3과 관련된 우리 사회의 가치관을 전도시키는 일들이 며칠 사이에 일어났다. 지난 18일에는 태영호 전 의원이 헌법기관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의 사무처장에 임명됐다.
태영호 사무처장은 5·18 북한 개입설과 유사한 측면이 있는 4·3 북한 개입설을 유포했다. 국회의원일 때인 작년 2월 13일, 그는 "4·3사건은 명백히 김일성 일가에 의해 자행된 만행"이었다는 어이없는 주장으로 제주도민들과 북한 정권을 연결시켰다. 그는 이런 발언을 제주도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 최고위원후보 합동연설회에서 했다.
그는 다음날에도 "나는 북한 대학생 시절부터 4·3사건을 유발한 장본인은 김일성이라고 배워왔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며 확인사살 성격의 발언을 했다. 이런 것들이 원인이 되어 작년 5월 10일 그는 최고의원직을 사퇴하고 당원권 정지 3개월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그런 그가 민족통일의 가치를 구현하는 민주평통의 사무처장이 됐다. 윤석열 정부가 제주도민들에게 자행된 국가범죄의 심각성을 인식했다면, 통합의 가치와 관련된 국가기관에 그를 쉽사리 임명하지 못했을 것이다. 태영호 처장 임명에 대한 반발이 제주도에서 격화되고 24일 도의원 6명이 민주평통 위원 사퇴 기자회견을 연 것은 이번 인사조치의 반역사성을 반영한다.
태영호 처장이 임명되고 닷새 뒤인 지난 23일에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인권위의 6월 26일자 모집 공고에 의해 구성된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후보추천위원회'가 후보자 다섯 명을 추천하면서 그중 하나로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 전 회장인 김태훈 변호사를 천거한 것이다.
4·3학살 옹호 주도한 한변 회장
김태훈 변호사가 회장으로 있었던 '한변'은 북한인권 개선을 명분으로 2013년에 창립됐다. 이 단체가 4·3과 관련해 벌인 일들은 태영호 처장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다. 4·3을 폄하하고 모독하는 선에 그치지 않고, 4·3 해결을 위한 국가적 노력에까지 제동을 걸려 했다.
한변은 2021년 5월 10일 헌법재판소 정문 앞에서 4·3 희생자들에 대한 제주지방법원의 재심개시 결정이 위헌·위법이라고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태훈 회장 명의로 배포된 한변
보도자료는 4·3 피해자들을 이렇게 공격했다.
"이 사건 재심청구인들은 제주4·3사건의 수형인 신분으로 교도소에 구금되어 있었던 사람들이다. 제주4·3사건은 대한민국 건국을 위한 5·10 선거를 방해하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려는 공산무장세력이 주도한 반란이었고, 이러한 반란행위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한 자들은 헌법질서를 파괴하려던 자들이므로 그들을 희생자로 보는 것은 위헌이라 할 것이다."
마치 판결문을 연상시키는 문투로 4·3 희생자들을 5·10총선 방해자, 공산무장세력, 반란행위 가담자들로 규정했다. 희생자들에게 총선 방해자의 이미지를 덧칠하고자 기자회견 날짜도 5월 10일로 정했으리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4·3항쟁은 1947년 3·1절 기념식 때 발생한 경찰의 발포와 도민들의 희생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자, 분단을 반대하고 통일을 열망하는 도민들의 염원과 어우러져 1948년 4월 3일을 계기로 크게 확대된 사건이다. 제주도민들이 5·10 단독 총선을 반대한 것은 이를 방치하면 분단을 돌이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동기에서였건 대한민국 국회 수립을 위한 총선을 조직적으로 방해했으니 대한민국 법체계 안에서는 범죄자들로 봐야 하지 않나 하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헌법이 '분단은 옳지 않았다'는 반성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헌법 전문은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라고 선언했다.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고 규정했고,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천명했다. 제69조는 대통령이 취임선서를 할 때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노력을 서약하도록 요구했다.
헌법 곳곳에 깔려 있는 이 같은 통일의 염원은 우리 민족이 1945년과 1948년 사이에 분단의 길을 걸은 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반성을 전제로 한다. 이는 분단국회 수립을 위한 1948년 5월 10일 총선을 거부한 제주도민들의 충정과 궐기가 우리 헌법 정신에 부합됨을 보여준다.
우리 헌법이 분단을 반성하고 통일을 지향하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변호사들이 하필이면 분단 총선의 날인 5월 10일을 골라 제주 4·3 희생자들을 모욕했다. 이 변호사들의 역사의식을 드러내는 일이었다. 대표적인 인권 파괴 범죄 중 하나인 4·3학살을 옹호하는 기자회견을 주도한 김태훈 당시 한변 회장이 인권위 책임자로 추천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비정하고 반역사적인 4·3 폄훼 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