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여름 기억을 잃어버리다

치매가족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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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화(kyunghwa65)등록 2024.06.27 09:27
2020년 여름 기억을 잃어버리다
치매 가족이 되었습니다


한창 바쁜시간에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가 다급하고도 불안한 목소리로 약간 울먹이듯 내게 말했다. "나 돈을 잃어번것같아 빨리 와주면 안될까?"
이상했다.  한번도 이런 일로 나를 찾은 적이 없었는데, 그래도 10분거리의 엄마집으로 가 보았다.

   얘기를 들어보니 한달에 나오는 노령연금 30만원을 찾으러 은행에 다녀왔는데 집에 와보니 돈이없어졌다고 하셨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은행여직원이 아무래도 할머니라 몰래 가로챈것 같다고 ..

   다소 흥분한 엄마를 진정시키고 엄마를 차에 태우고 은행으로 향했다. 엄마를 응대한 여직원을 찾아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엄마께서 돈을 받아가셨다고 했는데, 그때부터 엄마가 좀 이상했다.

   90이 넘으셨지만 여태 건강하게 살림도 직접 하시고 용돈관리도 직접하셨었다. 더구나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셔서 얼마나 감사했었던가? 엄마는 평소 잘 쓰지않은 언어로 여직원을 서슴없이 의심하는 말들을 쏟아냈다.

   순간적으로 묘한 분위가 조성되고 급기야 책임자가 우리를 별실로 이끌고 갔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원래는 안되지만 cctv를 보여주겠단다.
그런데 그 어조가 내가 듣기에는 듣기 거북했다.
엄마를 치매노인 취급하는 말투여서 잠시 욱할뻔했다. 하지만 그 감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엄마와 나 그리고 책임자와 여직원이 동시에 모티터를 주시했다. 놀랍게도 화면속 엄마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여직원에게 인사도 건내고 양산도 야무지게 잘 챙기셨다. 돈을 받아서 가방에 잘 넣은 다음 유유히 은행을 나왔다. 그 모습을 보는데 머리가 멍해졌다. 내게는 절대 일어날것 같지 않았던 일이 눈앞에 펼쳐지자 나도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치매 부모님을 요양원에 몇년씩 모시면서 마음 고생하는 친구들을 볼때 적잖은 연민의 눈으로 위로했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죄송하다 사과하고 엄마를 모시고 집에 돌아왔다. 엄마는 여전히 은행사람들이 자기를 속이는것 같다 하셨다. 엄마한테 여러번 기계는 거짓말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오히려 엄마를 믿어주지않는 딸이 야속한지 화를 감추지 못하셨다.

   그날 이후 엄마는 점점 내 엄마가 아닌 듯했다.
아침저녁으로 엄마를 찾아가 엄마 이야기를 듣고 식사를 챙겨드렸지만 한밤중에도 수시로 나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엄마 머릿속 지우개는 날이 갈수록 성능이 좋아져서 약의 도움 없이는 잠도 이루지 못하게 되었다 .

   나는 오랜 고민끝 엄마를 위해 토요일을 휴무로 정하고 매주 소풍을 다녔다.엄마와 함께 할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음을 직감한 탓도 있지만, 치매환자에겐 가족과 함께 있는시간이 중요하다해서
결정했다.  엄마는 꽃구경 시장구경을 좋아하셔서 여기저기 다니다보니 어느새 나는 재래시장 투어 전문가가 다 되었다.
그중 엄마가 가장 좋아하셨던 여행은 엄마의 어릴적 사셨던 동네 종로구 인사동. 그리고 왜정시대에 다니셨던 시흥초등학교 방문했을 때였다. 소녀처럼 눈을 반짝이시며 행복하게 옛날 일을 반복해 말씀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우리나라 치매인구는 약 백만명, 50명중 한명은 치매인셈이다. 빠르게 고령화사회가 되면서 치매는 피할수 없는 질병이 되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치매환자 주간보호센타나 요양시설을 어렵지않게 발견한다. 더 이상 남의 얘기만이 아니다.
가끔씩 떠올리던 사람의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거나, 집을 나서면서 아무리 찾아도 차키가 보이지 않을 때는 살짝 두려움이 생긴다.
요즘엔 지역 주민센터에서 무료로 치매검사를 해 준다는 포스터도 종종 눈에 띈다.

엄마는  내가 일찍 알아차린 덕에 조기 치매진단을 받고 약을 비교적 일찍 복용해서 착하고 귀여운 치매를 앓다 천국에 가셨다.

  엄마가 천국가신지 1년 반이 되어간다. 지금처럼 6월의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면 가끔씩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엄마에겐 지워진 어느 여름날의 기억들이 .
나도 치매 가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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