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장벽은 도시감옥이다.
구교형
이 연재를 처음 시작할 때 쓰고 싶은 주제에 가장 적합해 보여,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연제 제목으로 빌려 쓰기로 했다. 다만, 영화와는 다르게 일상과 삶의 현장 이야기를 담겠다고 밝혔다.
같은 여행을 떠나도 지역과 그곳 사람들의 삶은 지나치고 이방인이나 소비자, 관광객으로 남을 수도 있고, 잠깐이나마 그곳과 사람들의 이야기에 함께 거할 수도 있다. 요즘만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사람들의 이야기가 절실할 때가 있을까?
몇 해 전 방문했던 기억과 경험을 소환하여 그 땅에서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사람들을 이야기해 보고 싶다. 국적이나 소속을 따질 여지조차 별로 없이 그 자리에서 그저 주민으로 살아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스라엘 침공 후 가자지구 안에서도 남쪽 마지막 귀퉁이까지 밀려났다. 가만히 앉아 죽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밖으로 탈출할 길도 봉쇄된, 비참하고 비인도적인 상황에 놓였다.
분리 장벽과 체크포인트
나는 2010년 팔레스타인 땅을 방문했다. 물론 (출입 허가가 나지 않는) 가자지구가 아닌, 자치정부가 있는 요르단강 서쪽 땅이었다.
가자지구는 아니었지만, 이스라엘의 지배와 통치를 받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상황이 얼마나 열악하고 처참한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주로 기독교 사회운동 현장 운동가인 우리는 그동안 들어왔던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차별, 분리, 감시와 처벌, 체포와 구금, 고문 상황을 직접 확인하고 외부에 알리자는 취지로 여행을 떠났다.
취지가 이러했기에 일반 관광객과는 다른 관점, 다른 현장을 밟아갈 코스를 선택했다. 그 땅 자체가 워낙 색다른 자연환경과 오래된 문화유산, 유적지가 많아 곳곳마다 관광객은 넘쳐났고, 특히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모두의 성지인 만큼 각 종교의 성지순례객들만도 일 년 내내 끊이지 않았다.
최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으로 그 지역에 대한 정보와 관심이 늘어나면서, 이제는 분리 장벽이니, 유대인 정착촌이니, 체크포인트(검문소) 같은 낯선 용어들도 제법 들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와 함께, 어떤 코스와 지역을 택하며, 누구 안내를 받느냐에 따라 보고 듣는 것이 천차만별인 땅이다.
이스라엘의 통제를 받는 그들의 일상, 즉 이동 자체가 얼마나 불편하고 두려울 수 있는지 우리는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분리 장벽은 말 그대로 길고 거대한 도시 감옥이다. 도시와 도시가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유대인 지역을 방어한다는 명목으로 6m 높이의 콘크리트 장벽을 수십 km씩 둘러놓았다.
도시 감옥을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려면 그곳 사람들은 아이, 어른,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매 순간마다 줄을 서서 방문 목적을 확인받고, 때로 소지품 검사까지 받으며 체크포인트를 통과해야 한다. 분리 장벽과 체크포인트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나 주민들과 상의해서 만든 게 아니라 이스라엘 정부가 자국 안보와 자국인 편의만 생각해 일방적으로 만든 시설이라,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생활권은 제멋대로 분리되었다.
학교, 직장, 병원, 관공서 등을 가려고 해도 그들은 항상 줄 서서 검문소를 통과해야 한다. 과거에는 거주하고, 놀러 가고, 학교 가고, 일하러 다니던 같은 동네였음에도, 분리 장벽을 둘러서 가려면 한참을 돌아가야 한다.
또한, 분리 장벽과 체크포인트는 그들에게 불편하고 두려운 곳만이 아니라 수치스러운 곳이기도 하다. 팔레스타인 사람인 가이드는 어느 날 우리를 체크포인트 가까운 분리 장벽 주변으로 데려갔다. 그 주변 곳곳에는 시커멓게 변색 되고, 굳은 사람들의 용변들이 널려 있었다. 검문소 통과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용변이 급하면 해결할 방법을 찾다가 분리 장벽 주변 곳곳에서 스스로 해결한 흔적들이다.
기막힌 것은 주민에게는 도시 감옥이겠지만, 그런 사정을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은 관광객에게는 분리 장벽도 해맑게 기념사진 찍으며 구경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관광 명소가 된다는 점이다. 일반 관광객은 큰 도로, 허가지역만 돌아다닐 뿐 아니라 민감한 곳을 간다고 해도 이스라엘 입장에서 해설하는 가이드가 붙기 때문에 사실상 팔레스타인들이 겪는 현실을 볼 수도, 알 수도 없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유명한 유적이나 종교 성지 주변에도 우리 같은 외국 관광객은 어디든 개의치 않고 넘나든다. 하지만 그곳 주민들을 감시하기 위해 배치된 젊은 이스라엘 남녀 군인들은 함부로 총구를 들이대고 차량 트렁크를 열고, 소지품을 뒤졌다.
팔레스타인에 평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