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악설이냐, 똥선설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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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주(mukhyangr)등록 2024.06.12 11:46

똥악설이냐, 똥선설이냐 그 잔인한 물음 사이에 끼어서 몸부림 쳤다. 기저귀를 아직 떼지 못한 아이를 육아 해본 사람들은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에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 것이다. 왜 아이들은 외출을 앞두고 겨우 준비해서 서둘러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는 바로 그때에 똥을 싸는 걸까?

이건 거의 침대와 맞먹는 과학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어떤 약속 시간을 딱 맞춘 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시종일관 쫓아 다니거나, 붙어 있는 아이를 마크하며 준비를 하다 보니 늘 아슬아슬 해지기 때문이다. 근데, 이렇게 겨우 준비해서 지금 나가야지 안 늦는데, 왜 하필이면 그 순간에, 내가 신발을 신고 문을 열면 냄새가 나냐 이 말이다.

결혼하고 애를 키우기 전에 몇몇 부부들이 약속 시간에 늦으며 하는 말이 아이가 나오려고 하는데 똥을 싸서 라고 하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참 궁색한 핑계다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소름이 돋는다. 이건 과학이다.

세음이 등교를 시키는 전쟁 같은 아침의 수많은 포탄을 뚫고 5분을 남겨놓고 마침내 문 밖을 나섰는데 똥 싸고 웃는다.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 아이를 장모님에게 맡기고 가야 하는데 겨우 준비해서 카시트에 앉혔는데 똥 싸고 웃고 있다. 이런 일은 한 두번이 아닌 거의 일상이어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도대체 왜 이러는걸까. 나는 똥악설을 떠올렸다. 인간의 본성은 악이라, 이녀석이 지금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본능적 악이 똥으로 발휘 되는 것이다. 즉, 자신을 이것이 악인지 인지 못하고 있지만, 내가 이런 상황에 닥칠 때 마다 당혹스러워 하는 것을 보고 악을 발휘 하며 즐거워 하는 것이다.

그럴듯 했다. 나가기 직전 마다 똥을 싸고 나를 바라보며 웃는 미소 속에서 후후후 라는 소리가 들렸던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 인간의 본성이란 진정 악이란 말인가. 나는 좌절했다.

그때, 문득, 이런 깨달음이 스쳐지나갔다. 아, 가만히 생각해보니, 만약에 이녀석이 나가기 직전에 그렇게 똥을 싸지 않고, 내가 세음이를 등교 시키는 도중에 쌌다면 어땠을까. 지하철에 아기띠를 하고 사람이 가득 찬 상태에서 쌌다면, 더 최악은 차에 나와 단 둘이 타고 이동하는데 오도가도 못하는 애매한 지점에서 쌌다면, 그것도 기저귀가 차고 넘치도록, 어땠을까?

아찔했다. 상상만 해도 식은 땀이 흐르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외쳤다. 아, 똥악설이 아니라 똥선설이구나.

그동안 아이는 나를 배려해줬던 것이다. 아빠, 내가 혹시나 나가서 똥을 싸면 더 힘든 상황들이 연출 되잖아. 그러니까 내가 힘내서 지금 쌀께. 그게 사실은 아빠에게 더 도움이 되는 길이야. 자, 간다!

아아, 인간의 본성은 악이 아니었다. 이 똥선설 앞에서 한줄기 희망을 발견하고 눈에 땀이 고였다. 오늘도 역시나 아침에 나음이를 안고 나가려고 하는 찰나에 아주 시원하게 똥을 싸고 웃는 아이를 보며 처음으로 미소를 지어주며 고맙다 라고 말하고, 씻기고 기저귀를 갈고 나가는데 딱 1분이 걸렸다. 전혀 힘들거나 짜증나지 않고 상쾌함 뿐이었다.

내 아이지만, 똥냄새는 진짜 질색하는데 오늘은 너의 똥냄새도 사랑할 수 있었다, 잠시. 똥선설, 여전히 사람을 보며 희망을 노래해본다 -

 

육아 ⓒ 픽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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