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나무에 열리는 커피 열매
위키미디어 공용
미국은 지금도 작동 중인 인류 최초의 항성 간 탐사선 보이저 2호와 1호를 연달아 발사하였고, 우리나라는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 고리1호기를 완성하여 송전을 시작하였다. 부가가치세와 의료보험제도가 처음 실시된 것도 이 해였고, 이리역 폭발 사고로 천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도 이 해 11월 11일이었다.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는 이 해 여름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여 전 세계 음악 팬들에게 큰 슬픔을 안겼다.
1975년 7월, 브라질의 검은 서리 사건에서 시작된 커피 생산량의 감소가 절정에 이른 해가 바로 1977년이었다. 1975년에 브라질 커피나무의 절반 가까이가 서리 피해를 입었고, 이 나무들은 죽어갔지만 새로 심은 나무들은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었다. 통상적으로 커피는 발아한 후 4년 내지 5년은 지나야 꽃이 피고 열매를 맺기 시작하기 때문이었다.
브라질의 검은 서리 사건에 이어 또 다른 커피 생산국인 과테말라에서 지진이 발생하여 커피 생산량이 감소하였고, 아프리카의 커피 생산국 앙골라에서 벌어진 내란도 커피 공급에 차질을 가져왔다. 세계 커피 재고량이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하였고, 이것이 커피 국제 시세를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여기에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던 대형 커피 수입업자, 가공업자, 도매업자들의 사재기가 등장하여 공급 부족을 악화시키고 있었다.
커피 가격은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1977년에는 1975년 대비 커피 소매 가격이 지역에 따라 75%에서 300%까지 상승하였다. 미국에서 1975년까지 5센트를 유지하여 오던 커피 한 잔 가격이 10센트, 15센트를 넘어 25센트로 치솟았다. 우리나라의 1년 커피 생두 수입액이 1천만 달러를 돌파한 것이 이해였다. 외화 낭비에 대한 비난과 함께 커피 안 마시기 운동이 벌어졌다.
이런 운동을 주도하는 것은 국회의원들이었다. 당시 여당이었던 공화당의 국회운영위원장은 "국산차도 좋은 게 많은데 막대한 외화를 써가면서 커피를 마시는 건 낭비"라는 주장을 하며 국회를 찾는 손님들에게 커피 대신 국산차를 대접하라는 특별 지시를 하였고, 이것을 신문에서는 '커피 사라진 국회 사무실'이라는 제목으로 받아썼다. 이 발표를 했던 국회 운영위원장 방은 마치 국산차 시음장이 되었다. 국내의 국산차 제조업자들이 이 발표에 찬사를 보내며 국산차 견본을 보내온 때문이었다. 이 풍경 또한 신문에 보도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입으로' 국민을 위하고 '말로' 민생을 책임지는 데 누구보다 앞에 나서는 것은 정치인들이었다.
커피 생두 가격의 폭등에 더욱 민감한 것은 커피 소비를 주도하고 있던 서구 선진국들이었다. 나라별로 대응책을 내놓기에 바빴다. 크게 두 가지 운동이 벌어졌다. 하나는 대용커피의 개발이었다. 스위스 네슬레는 치커리를 섞은 커피를 개발하여 시판을 시작하였고, 미국의 제너럴푸드는 소맥 40%를 배합한 커피를 개발하여 내놓았다. 콩과 당밀을 섞은 대용커피 판매를 하는 회사 등도 등장하였다. 대용커피 40%를 넣은 커피는 20~30% 낮아진 가격에 판매되었다. 소비자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전략이었다.
두 번째 방식은 애국심에 호소하는 것이었다. 커피를 줄이고 차를 마시자는 운동이 대표적이었다. 커피보다 차를 즐기던 영국인들은 너나없이 커피를 포기하고 차를 마시기 시작하였다. 문제는 차 소비가 급증하면서 찻값이 1년 사이에 4배로 폭등한 것이었다. 그래도 커피값의 1/4밖에 되지 않았다. 1977년 당시 커피 소비량이 우리나라의 1백 배인 연 30만 톤으로, 세계 3위 커피 소비국이었던 프랑스에서는 공무원들이 나서서 "커피잔을 조금 덜 채우고 대신 애국심을 담자"고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커피 가격 상승으로 가장 심각했던 것은 커피소비 1위국 미국과 생산 1위국 브라질의 갈등이었다. 때마침 등장한 카터행정부가 외국의 인권 문제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이 계기였다. 이른바 도의외교였다. 미국 국무성에서 펴내는 인권보고서에 인권 억압 국가로 분류되는 나라는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기 일쑤였다. 1977년 인권 보고서에서 브라질이 인권탄압 국가의 하나로 표기된 것이 문제였다. 브라질은 내정간섭이라고 주장하며 두 나라 사이의 방위조약을 폐기하는 강수를 두었다. 이에 맞서서 미국 시민들 사이에서는 브라질 커피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커피 안 마시기 운동을 벌여 커피 생산국을 더욱 자극하였다.
70년대 '커피 목욕' 유행한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