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 너머의 여성, 세상이 두렵다 - 60대 이상 여성, 범죄에 가장 취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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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ama2010)등록 2024.05.27 13:40
'2023년 5월 양평 경찰서는 노인학대, 상해, 퇴거불응 혐의로 A 씨(65)를 구속했다. A 씨는 80대 여성 B 씨의 집에 10년이 넘도록 눌러살면서 B 씨를 폭행하는 등 상습적으로 학대한 혐의를 받는다. B 씨의 조카 행세를 하며 B 씨 집에 전입신고까지 한 A씨는대외적으론 B 씨와 사실혼 관계라고 주장하고 다녔다. 오랫동안 한 집에서 산 이들, 이웃들도 그 내막을 몰랐다.'

2023년의 이 사건에서 주목할 만한 몇 가지 사실이 있다. 10년 넘게 A가 B씨의 집에 눌러 살았지만 B씨는 이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 하나, 그리고 주변 이웃들이 이들 관계의 내막을 전혀 몰랐다는 사실이다. 이는 우리 사회 노년에 접어든 여성이 얼마나 범죄에 있어 취약한 존재가 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는 단편적인 사례이다. 

 

성별 및 연령별 일상범죄 두려움 정도 ⓒ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지난 19일 서울시여성가족재단에 따르면 재단은 통계청의 '2022년 사회조사'를 기초로 만 20세 이상 서울시민 3천7명의 답변 내용을 재분석하여  '서울시민의 범죄 두려움 현황 및 영향 요인' 정책 리뷰 보고서를 최근 펴냈다. 전체 범죄 건수는 2020년 29만6천178건에서 2022년 27만9천507건으로, 5대 범죄(살인·강도·절도·폭력·성폭력)는 2020년 9만2천679건에서 2022년 9만339건으로 서울시 범죄 발생 건수는 전반적으로 감소세를 보였다.

60대 이상 여성, 범죄에 취약 

하지만 시민들의 생각은 달랐다. 사회가 범죄로부터 얼마나 안전하다고 생각하는지를 1∼5점 척도(매우 안전하다∼매우 안전하지 않다)로 나타냈을 때 2020년 3.13점에서 2022년 3.17로 소폭 상승했다. 특히 일상적으로 느끼는 범죄에 대한 두려움 을 1∼10점 척도(매우 안전하다∼매우 불안하다)로 측정했을 때 여성(6.38점)이 남성(5.40점)보다 높게 측정됐다. 그 중에서도 60대 이상이 6.96점으로 가장 높았다. 즉 우리 사회 60대 이상의 여성이 범죄에 있어 스스로 가장 취약한 존재로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오래 전 이야기지만 대학교 때 후배들과 함께 MT를 가다 '불법'적인 서적을 취득한 혐의로 경찰서로 연행된 적이 있었다. 홀로 취조실에 남겨진 나, 형사는 들어오자마자 냅다 내 따귀를 갈겼고 나는 무너졌다. 그 육체적 '가격'의 기억은 몇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상대방, 특히 남성과의 1;1 대응 상황에서 자신이 물리적으로 '약자'임을 느끼게 된다. 이런 본능은 여성을 스스로 수세적으로 만든다. 

이런 기억과 함께 나이듦은 여성을 더욱 무력하게 만든다. 흔히 나이가 드는 체험을 해보는 이벤트는 두 다리에 묵직한 모래 주머니를, 두 눈에 초점을 흐리게 만드는 안경을 씌운다. 굳이 어떤 신체적 질병이 없어도 나이가 들어가며 스스로 내 육체를 더는 내가 스스로 용이하게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앉았다 일어서면 자신도 모르게 '끙'하며 힘을 주어야 하는 시절, 당연히 '수세적'인 처지는 가중된다. 동물들 중에 초식 동물들은 편하게 잠을 이루지도 못한단다. 기린이나 얼룩말은 서서 잠깐 조는 것이 '숙면'의 전부라니. 즉 삶의 취약성이 그들의 숙면조차 앗아가 버리는 동물의 세계, 인간종의 세계에서 '노년'은, 그리고 여성의 노년은 삶의 피라미드에서 최하단에 스스로를 자리매김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지난 2021년 8월 SNS에는 늦은 밤 10대 학생 여러 명이 60대 여성에게 '담배 사 줄거야, 안 사줄거야'라며 머리와 어깨 등을 툭툭치며 욕설을 퍼붓는 영상이 퍼졌다. 여주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나이든 여성이 처한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남녀 1인가구 노인 소득 ⓒ 통계청

 

나이든 여성이 처한 각박한 삶의 조건 
거기에 더해 삶의 조건도 여의치 않다. 2017년 1인 가구의 수와 비율이 각각 561.9만 가구, 28.6%이던 것이 2021년 1인 가구의 수는 716.6만, 비율은 33.4%로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 인구 총조사) 2020년 가족 실태조사에 의하면, 20대가 13.6%, 50대가 15.4%, 60대가 19%, 70대 이상이 26.7%로 나이가 들어갈 수록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있다. 

2017년 기준 전체 17.7%에 해당하는 노인 1인가구 중 72.8%는 여성노인 1인가구다. 초고령 노인의 비중도 여성노인 1인가구에서 높게 나타났다. 거기에 더해 여성노인과 고령 여성 1인가구의 빈곤수준이 가장 높다. 또한 남성노인보다 돌봄공백에 노출될 가능성이 컸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초고령사회 대비 고령여성의 삶의 질 현황과 정책과제: 돌봄과 주거를 중심으로')

젊은 층이 스스로 취업 등의 이유로 '독립'을 한 반면, 나이가 들어서 1인 가구가 된 경우는 '이혼, 사별, 자녀들의 독립'등의 이유로 본의 아니게 홀로 살아가게 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즉 나이가 들어서 홀로 살아가는 노인들은 그간 '사회적 관계'에서 분리되어 고립되는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나 역시도 그렇지만 남편이나,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다, 홀로 그 시간을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 자신을 돌보아야 하는 것이 온전히 한 개인의 어깨에 짐으로 얹힌다. 

 

영화 <플랜 75> ⓒ 찬란

 

지난 2월에 개봉한 <플랜 75>는 이런 노년 여성 1인 가구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파헤친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가까운 미래의 일본. 청년층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는 75세 이상 국민의 죽음을 적극 지원하는 정책 '플랜 75'를 발표한다. 78세의 미치는 호텔 메이드로 일하며 스스로의 삶을 돌보며 살 수 있었다. 하지만 하루 아침에 직장에서도 해고 통보를 받고, 살던 집도 비워줘야 하는 형편에 처하고 만다. 결국 미치는 '플랜 75'를 고민하게 된다. 

영화에서 말하듯 여성 노인의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젠더적 관점에서도 그렇지만, 여성이 나이들어 간다는 것, 그 중에서도 홀로 나이들어 간다는 건, 사회경제적인 약자의 처지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노인 성범죄 현황 ⓒ 경찰청

 

대도시도 그렇지만, 지방으로 가면 나이든 여성들의 처지는 더욱 취약해 진다. 2021년 8월 전남의 한 농촌에 살던 90대 여성은 인근 마을에 살던 60대 남성에게 성폭력을 당했다. 그날 이후 이웃의 주민은 날이 어두워지면 '이웃과 함께 잔다'거나, '머리맡에 칼과 낫을 두고 잔다'고 했다. 60세 이상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총 3442건의 노인 성범죄가 발생했다. 심지어 '고령자일수록 사건을 숨기는 경우가 많아서' 노인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범죄가 쉽사리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 '성범죄'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대상이 스스로 자신을 지켜내기 힘든 여성 노인이라는 점이다. 

한 명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한 마을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급격하게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이 말은 이제 한 사람의 노인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모든 사회의 도움이 필요하다가 되지 않을까. 육체적, 정신적, 그리고 사회적으로 약자가 되어가는 여성 노인에 대한 체계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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