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2층 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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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주(mukhyangr)등록 2024.05.23 14:03

어렸을적 부터 난 그토록 2층 침대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 부터 시작된건지 잘 모르겠다. 아니, 아마 <나홀로집에>에서 스쳐 지나가면서 나온 것을 보고 반했던 것 같다.

침대를 계단을 타고 올라간다고? 이건 너무나 멋지잖아. 마치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것 같은 느낌일꺼야. 저기 누워서 한껏 가까워진 천장과 마주 보며 잠을 자면 무슨 느낌일까. <알라딘>에서 마법의 양탄자를 탄 것 같을까?

꿈은 이루어 진다, 라는 말은 월드컵 4강을 통해 증명 되었지만, 내 현실은 아니었다. 2층 침대는 커녕 나는 침대와는 전혀 먼 초등학창 시절을 보냈다. 요즘은 소위 '매트'라고 불리는 '요'를 알까. 나는 그것을 깔고 잤다. 거기에 초등학교 내내 할머니와 함께.

침대가 있는 집이 부러웠다. 고맙게도 중학교 2학년때 처음 침대가 생겼다. 작기는 했지만 아늑했고, 거기에 누워있으면 도도하게 바다를 항해 하는 돛단배 위에 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내 마음 한켠에는 늘 2층 침대가 있었다. 한번은 친구네 집에 놀러갔는데 형이랑 함께 실제로 1,2층을 나눠서 2층 침대를 쓰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와 너 진짜 행복하겠다 를 외쳐 버렸다.

뭐가 행복하냐고 물으니, 2층 침대가 있잖아. 그리고 거기서 형 동생이 위 아래로 자다니 이거 보다 멋진 일이 또 있어? 친구는 도대체 뭐가? 라는 눈으로 쳐다볼 뿐했다. 남의 떡은 원래 크기랑 상관없이 모조리 커보이는 걸까. 2층 침대 앓이는 멈출줄 몰랐다.

그러다 대학생이 되어 기숙사 라는 곳을 처음 가보게 되었다. 맙소사, 여기도 2층 침대가 있었다. 거기에 아래는 독서실 책상 처럼 움푹 들어가서 꽤 멋진 공부 환경이 조성 되어있었고, 천장이 제법 높은데 2층에 침대가 있어서 보기만 해도 저건 완벽해 라는 말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 후로 나는 기숙사를 지나치게 왔다 갔다 했다. 친한 동기들, 후배들이 있는 방에 틈만 나면 방문해서 아무것도 안하고 2층 침대에 올라가 누워있었다.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몇해전 아내가 아이에게 2층 침대를 사주고 싶다고 했다. 솔직히 그게 필요한지 안 필요 한지 따위를 묻고 따지고 싶은 마음이 1도 들지 않았다. 무조건 그건 필요해야만 한 것이라고 말하고 사자고 했다.

왜? 2층 침대가 드디어 우리집에 생긴다는데 내가 왜 그걸 막어? 세음이가 안 자면? 내가 자면 되지. 무조건 사주라고 했고, 어느 여름과 가을이 바통 터치를 하던 계절에 2층 침대가 우리집에 들어왔다. 마침내.

바라만 봐도 행복하다는 말이 이런 거였을까. 혼자 있을 때 몇번을 오르락 내리락 거려보고, 누워도 보고, 알라딘 OST 'a whole new world'도 틀어놓고 부르고, 어릴적 했던 그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펼쳐 보았다. 그 이후로 낮잠을 잘 일이 있꺼나, 쉬어야 할 때는 무조건 2층 침대 위에서 잤다. 모르긴 몰라도, 그 시간들을 다 합치면 세음이 보다 내가 더 많이 사용했을 것이다.

도대체 2층 침대가 왜 이렇게 좋았을까를, 2층 침대에 누워서 생각해봤다. 일단 나는 극 I 성향이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다 못해 사랑한다. 고립과 분리는 나의 힘이다.

일반 침대는 이것은 만족시키지 못한다. 아무리 방문을 닫아도 아쉽다. 왜? 같은 눈높이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문만 열면 언제라도 침범 될 수 있는 뚫려있는 성벽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2층 침대는 어떠한가. 공간적으로 보면 지면에서 몇칸을 올라가 버리기 때문에 방문을 열어도, 심지어 누가 들어와도 2차 보완이 되어있는, 업그레이드 된 오직 나만의 공간을 허락해주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I 이자, 아이인 내가 사랑에 빠질 수 밖에.

내 사랑 2층 침대야, 여전히 사랑해 -

 

내 사랑 2층 침대 ⓒ 김정주(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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