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식대학, 당신들도 나락에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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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주(mukhyangr)등록 2024.05.21 10:25
피식대학은 왜 그랬을까. 지난주에 300만 구독자를 가진 유투버 피식대학은 '메이드 인 경상도'시리즈로 '경상도에서 가장 작은 도시 영양에 왔쓰유예'란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평소 그들의 컨텐츠를 꽤 즐겨 소비하던 터였고, 요즘 폼이 한껏 올랐다고 생각해서 믿고 클릭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서 이 사람들 단체로 뭐에 홀렸나 하는 생각을 했다. 보는 내내, 5분에 한 번씩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영상은 오랜만이었다. 혹시 어떤 큰 그림을 그려놓고 거기에 도달하기 전 마지막 반전이 있는 기획일까 했지만, 반전은 존재하지 않았다.

피식대학의 컨텐츠 중엔 <나락 퀴즈쇼>가 있다. 유명한 셀럽을 초청해서 'OOO 당신도 나락에 갈 수 있다'라는 썸네일이 붙는 컨텐츠다. 내용은 간단하다. 보통 퀴즈쇼처럼 사지선다, 주관식의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질문들은 어떤 것을 선택해도 '나락'에 갈 수밖에 없는 적절함을 가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고, 결국 설정된 나락으로 빠지는 셀럽들을 보면서 웃음을 참는 일은 쉽지 않다.
 

나락 퀴즈쇼 ⓒ 피식쇼

 

이 컨텐츠는 영민했다. 전반적인 사회적, 정치적, 역사적 맥락, 출연한 셀렙의 존재와 컨텐츠 그리고 대중들에 대한 이해도가 낮으면 기획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 나는 궁금했다. 아니, 이렇게 '나락'에 대한 조예가 있는 사람들이 왜 본인들이 이 영상을 올렸을 때 나락에 갈 것이라는 메타인지를 갖지 못했는지 말이다.

두 가지로 설명해보고 싶다. 첫 번째는 자의식 과잉이다. 최근에 나온 차들은 주행 중에 차선을 이탈하면 시끄럽게 삑삑삑거리는 옵션이 있다. 운전을 할 때 조금이라도 차선을 밟으면 이 소리가 나는데 클락션 소리보다 더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정도의 경고음을 보낸다는 것은 그만큼 도로에서 '선'을 넘는다는 것이 위험한 일이라는 뜻이 된다.

피식대학의 이번 영상은 라이브가 아니었다. 편집을 걸쳐서 나온 영상이다. 몇 번이고 선을 넘는 장면들을 보며 충분한 경고음이 울렸을 텐데 이것을 필터링하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 그들의 '자의식 과잉'이 개입되었을 확률이 높다.

자의식이 과잉된 사람들이 가지는 대표적인 마인드가 '나는 뭘 해도 돼'라는 것이다. 여기에 빠져들게 되면 선을 잃어버리고 정말 본인이 뭘 해도 되는 줄 안다. 주로 연예인들이나, 셀럽들이 이런 실수를 자주 한다. 인기는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이들의 본질이 찐따이기 때문이다. 유투버 '흑자헬스'는 '피식대학 회생방안'이라는 영상에서 이렇게 말한다(이들에게 찐따라고 하는 것은 비난이 아니다. 본인들이 '찐다'임을 이미 인정하고 그것에 대해 특강까지 했으니 말이다).
 

흑자헬스 <피식대학 회생방안> ⓒ 흑자헬스

 

"이분들은 300만 구독자임에도 불구하고 찐따라는 본질을 벗을 수는 없어서 그랬다고 보여진다. 막상 영양에 가서 컨텐츠를 하려고 갔는데 자신들을 응원해줄 구독자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누구도 자신들을 알아봐 주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굉장히 위축되어 있는 상태이고 무엇을 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으니 본연의 찐따의 모습이 등장한 것이다.

그래서 정신없는 드립들을 날리고, 선을 넘고 했는데 문제는 이것이 하나도 웃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코미디의 본질이 무엇인가. 웃긴 것이다. 만약에 웃겼다면 그것은 어느 정도는 편이 갈리고 용납될 수 있었을 텐데, 전혀 웃기지 않고 혐오만 있었다는 게 문제다. 만약에 유재석씨나 강호동씨 같은 인싸 계열에 있는 사람들이 영양에 갔다면 당장에 눈에 보이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섭외해서 이야기를 건넸을 것이다. 음식점에 가서도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고 분명 과한 리액션과 반응을 하면서 음식을 칭찬하고, 사장님과 대화하면서 살렸을 것이다. 왜냐, 이들은 인싸이기 때문에 자신들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다가가서 뭐든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식대학은 다르다. 찐따의 특은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면 급속도로 약해진다는 것이다. 이분들도 자신들의 스튜디오에서는 날아다닌다. 다만, 그 영역을 벗어나니 300만 구독자가 있고, 500만이 있든, 본질은 바뀌지 않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즉 그들은 리얼 찐따인 것을 증명한 것이다."

정확한 워딩을 다 딴 건 아니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고 크게 동의했다. 본질이 찐따인 사람들이 자의식 과잉이 되었다면 선 따위가 보일 리가 없다. 그동안 받지 못했던 관심과 사랑이 더해져 인기로 나타나니 얼마나 흥분하고 신이 났겠는가. 이걸 마치 평소 인싸들이 듣던 '너 하고 싶은 거 다해!'로 해석해버린 것이다. (나도 본질이 찐따이기 때문에 너무나 이해된다)

분명 선을 수도 없이 넘기는 했지만, 이들이 넘은 선은 분명 적절하고 진실된 후속조치가 뒤따른다면 조금은 너그럽게 대해줄 수 있지 않나 싶다. 최근 연일 화제가 되고 있는 트롯 가수 김모 씨가 넘은 선과 비교해볼 때 확연한 온도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법의 처벌을 받아야 할 정도로 선넘음 아니라면, 우리 사회가 나락에 대해서 조금은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서, 지극히 내 주관적인 의견으로는 난 모든 사람들이 선넘음의 '내용'자체에 순수 분노한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본다. 이 중 어떤 사람들은 그저 잘나가는 사람들 하나 이렇게 곤두박질치는걸 원하는 분노가 평소에 잠재되어 있었고, 이에 대한 깨소금 심리'가 1도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하기 힘들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번 일을 통해서 이들이 진정 '피식'하고 웃을 수 있는 그 웃음이 무엇일지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고, 자의식 과잉을 쫙 빼고, 소위 말하는 겸손하되 당당한 모습으로 계속 웃겨줬으면 하는 마음이 많다. 가뜩이나 웃을 일이 점점 소멸되어 가는 시대에, 이들처럼 웃음을 줄 수 있다는 건 언제까지나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이것만 마음에 고이 새기면 되지 않을까. 피식대학, 당신들도 나락에 갈 수 있다.

 

나락퀴즈쇼 ⓒ 피식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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