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과학기술계를 키우겠다", "과학기술로 국가를 발전시킨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다"라던 윤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대통령실 과기보좌관을 폐지했다. 2022년 말 정부는 과기부 소속의 4대 과학기술원 예산을 교육부로 이관하겠다는 황당한 계획을 발표하였으나, 다행히 과기계의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또한 윤 대통령은 2023년 6월 연구개발예산을 대폭 삭감하라고 지시하였고, 단 2주 만에 2024년 연구개발예산이 16.6% 줄어드는 사태가 발생하였다(국회에서의 논의 후 14.8% 삭감).
발칵 뒤집힌 연구현장
정부 연구개발예산 삭감은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에도 없었던 초유의 사태였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은 사업비가 20~30%나 깎였다. 한국연구재단은 신규 개인 기초연구 사업을 일부 중단하고, 다년간 진행되는 계속과제 예산도 일괄 삭감하였다. 각 부처의 국책 연구사업 예산은 일괄 삭감됐고 신규 사업은 중단되었다. 4대 과학기술원의 사업비는 10~15% 삭감되었으며, 이는 학생연구원에 대한 예산 삭감으로 이어졌다.
급작스러운 예산 삭감은 중장기 연구의 질적 저하를 낳고, 그간 정부가 구축해 온 전 주기적 연구자 지원체계에 균열로 일으키고 있다. 대학연구실의 인건비 삭감은 대학원생과 비전임연구원의 고용축소로 이어졌고, 이공계 젊은 연구자들의 사기가 떨어지면서 이공계 이탈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깎인 예산은 다시 복구할 수 있지만, 한 번 떠난 연구자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윤 정부는 잊은 모양이다.
윤 정부 과학기술정책의 역사적 퇴행
연구개발예산 삭감이 가져온 막대한 직접적 폐해와 더불어, 과학기술정책의 역사적 퇴행도 반드시 짚어야 한다.
첫째, 윤 정부는 연구개발예산 편성의 법적 절차를 위배하고 법치 구조를 붕괴시켰다. 연구개발예산은 국가과학기술심의회의가 세부안을 마련하고, 이를 최종 정부안으로 제출하는 과정이 법제화되어 있다. 그런데 윤 정부는 국가과학기술심의회가 마련한 세부안을 백지화해버렸다. 그것도 최종안 승인기일을 일주일 남겨놓은 시점에서 급작스레 폐기한 것이다. 이후 윤 정부는 2주 만에 '대폭 삭감안'을 뚝딱 만들었지만, 삭감 근거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 부실 예산안 그 자체였다.
둘째, 윤 정부는 국가과학기술 예산편성 거버넌스를 파괴하였다. 장기에 걸쳐 힘겹게 구축한 국가과학기술심의회의의 예산 편성기능을 대통령실이 주도하여 박탈해버린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무부서인 과학기술혁신본부와 과학기술부 장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했다. 정부 삭감안에 반대하는 과학기술계의 목소리는 무시되었고, 정부와 과학기술계가 오랫동안 구축해 온 상호존중과 소통의 틀은 무너졌다.
셋째, 윤 정부는 국가 과학기술정책의 법적 계획주의를 붕괴시켰다. 정부의 연구개발 정책은 법정계획인 과학기술기본5개년계획을 통하여 5년 단위의 계획하에 시행되고 있다. 그만큼 중장기 계획이 과학기술 분야에서 중요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윤 정부는 이를 무시한 채 연구개발예산을 삭감함으로써 과학기술기본법의 입법 취지를 무시하였다.
꺼져버린 제2벤처붐
2000년 벤처버블 붕괴 이후, 문재인정부는 침체한 창업과 벤처투자 열기를 되살려내 제2벤처붐을 조성하였다. 창업지원 예산을 2016년 5764억 원에서 2021년 3조 5578억 원으로 7배 가까이 늘렸고, 정부 모태펀드에 5조 원을 출자함으로써 벤처 투자자금을 세 배 이상 확대했다.
그런데 윤 정부는 정부의 모태펀드 출연 예산을 절반 이하로 줄여버렸다. 그 결과 2022년 상반기까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던 벤처펀드 결성 금액과 벤처투자 금액이 2022년 하반기부터 급감하기 시작하였으며, 2021~2023년 2년 만에 30% 이상 급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