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굴레꽃이 피었습니다

나는 자영업 17년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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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화(kyunghwa65)등록 2024.05.07 11:02
 

엄마 산소 주변에 피어난 둥굴레꽃 ⓒ 임경화

 어느덧 자영업 17년차이다.
도시락을 만들어 파는 일을 시작하면서 내가 제일 힘든 것은  남들 쉴때 일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평일에는 내 직업이니 열심히 일하고 고단해도 꽤 만족도가 높았는데, 한달에 한두번 들어있는 공휴일은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드는걸 보니 아직 프로는 아닌가보다. 요즘처럼 경기가 안좋을때는 하루 가게문을 열고 안열고의 차이가 클경우는 내면의 갈등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그것이 싫어서 자영업을 시작할때 남편과 합의해 우선 무조건 일요일은 쉬기로 했다. 그래야 일주일에 하루라도 온전히 나를 위해 시간을  보낼수 있을것 같았다. 교회에도 가고,  친구도 만나고, 얼른 집안일 마치고 책도 볼수 있는 그 시간이 정말 꿀맛이었다.

   자영업을 시작할때 가까이 계신 친정엄마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 바쁜시간에는 오셔서 나물도 다듬어 주시고 방과후 아이들도 친정엄마께서 많이 챙겨 주셔서 힘든시간을 잘 감당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 5년전 쯤이이었나 엄마의 치매진단은 한동안 내가 정신을 차릴수 없을정도로 충격이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하루하루여서 엄마를 아침저녁으로 돌봐드리고 싶었지만 사정이 그리 녹록지않다보니 주간보호센타를 이용할수 밖에 없게되었었다.

   결단을 해야했다. 엄마를 위한 하루가 더 필요했고, 이번엔 남편이 흥쾌히 동의해주어 토요일에도 가게 문을 닫았다. 토요일 마다 친정엄마를 모시고 맛있는 음식도 사드리고 산으로 바다로 엄마가  좋아하시는  꽃과 나무를 보여드렸다. 엄마를 위한답시고 시작했지만 사실은 내가 더 좋았다.
엄마의 따스한 손을 더 많이 잡을 수 있었고, 수없이 반복되는 이야기일지라도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게 좋았다. 얼마남지 않았다고 생각할수록 엄마와의 시간은 더욱 간절했다.

    그렇게 엄마께서 천국으로 이사가신지도 일년이 넘었다. 그리고 5월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은 공휴일(어린이날 대체공휴일), 다음주 수요일도 빨간날! 올해 5월은 기분이 묘하다. 공휴일이 두번이나 있는데도 아무런 갈등없이 가게문을 열기로했다. 어린이날인데 내주위에 어린이가 없다. 두자녀가 성인이고 아직 결혼전이니 어린이를 보려면 몇년은 더 기다려야 할듯싶다. 내일 모레면 어버이날 인데 올해는 꽃달아드릴 부모님도 안계시다. 예전같으면 무슨선물을 살지 어디에서 외식을 할지 고르느라 바빴을텐데 나는 지금 그런 할일이 없다.

   공휴일인 오늘은 평소보다 한가했다. 도시락 고객들이 주로 회사 병원 약국이다보니 쉬는곳이 많아 오후가 한가했다.  멍하니 봄비 내리는 창문을 바라보고 있는 내게 남편이 내게 말했다.
"우리 얼른 어머니한테 다녀올까?
어버이날도 있고 오늘 덕분에 둘이 데이트도 하자"
맞아~ 작년 5월 5일 납골당에 모셨던 엄마를 아버지 산소로 합장한 날도 오늘처럼 봄비가 내렸었는데.. 갑자기 그날 산소 주위로 하앟게 피어난 둥굴네 꽃들이 생각났다. 누가 일부러 씨를 뿌린것도 아닌데 엄마가 이사하던날 산소주변에는 난데없이 둥굴레꽃이 만발해서 오히려 내게는 위로가되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남편이 운전하는 조수석에서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파주에 있는 공원묘지에 도착했다. 나처럼 엄마 생각이 나서 온것일까? 한가한 공원에 몇몇분들이 보였다.  큰 우산을 같이 받쳐쓰고 부모님 산소에 닿았을때 내눈에 먼저들어온 하얗고 뽀얀 꽃방울~
꽃 좋아하셨던 엄마가 둥굴레꽃으로 산소 뒷마당을 가꾸신듯 그렇게 예쁘게 피어난 둥굴레꽃  모습에, 엄마를 본듯 그렇게 반가울수가 없었다.
잠깐이지만 엄마도 불러보고 산소 주위에 잠시 머물다 돌아왔다.

   그렇게 오늘 엄마와 아버지를 뵙고왔다.
자영업의 좋은점이라면 일하는 날이라도 맘만 먹으면 가게 문을 닫을수 있다는 것이란걸 오늘 알았다. 누구의 결재도 필요없는 나는 17년차 자영업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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