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5월 29일 자 <조선일보> 기사 "담배가루 섞어 커피 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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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식을 전한 <조선일보>는 그동안 사라졌다던 여우가 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변신한 채 우리 둘레에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라는 질문 아닌 질문을 던졌다. 사람됨이 음흉하고 옹졸하며 남을 속이는 데 이골이 난 자를 '좁쌀여우'라고 부른다는 옛말을 들어, 당시 신문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이런저런 '좁쌀여우'들을 열거하였다.
염색 고춧가루, 중금속 콩나물, 밀가루 항생제, 양잿물 햄버거, 물감 도미, 카바이드 홍시와 함께 소개한 것이 '꽁초 커피'였다. 한국 산야에서 여우가 멸종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둔갑해서 도시로 내려오는 바람에 '좁쌀여우'가 우글우글한 세상이 되었다는 한탄이었다.
때마침 풍문으로 떠돌던 꽁초 커피가 사실이었다는 뉴스가 전해져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1976년 5월 29일 자 <조선일보>는 사회면 머리기사로 '담배가루 섞어 커피 양산' 소식을 전했다.
서울지방검찰청은 5월 28일 서울 시내 일부 다방이 양을 늘리기 위해 커피에 담배 가루를 섞어 끓이고 있다는 정보에 따라 수사에 나서, 종로 장안다방 주방장 박모(18)군, 중구 유리다방 주방장 김창식(23)씨 등 2명을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종로 6가 동궁다방 주방장 손철호(28)씨와 중구 귀부인다방 주방장 이희익(33)씨를 검거하여 조사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이와 함께 장안다방 주인과 유리다방 주인도 입건하여 주방장들과 공모하였는지 여부를 캐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검찰에 따르면 장안다방 박군은 커피 1파운드에 보통 100잔 정도 나오는 것을 담배 가루와 소금을 넣어 250 내지 300잔을 만들어 하루 600여 잔씩, 유리다방 김씨는 하루 700잔씩 팔아왔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손님들이 피다 남긴 담배꽁초를 연탄 화덕에 올려 말린 후 가루로 만들어서 커피에 섞는 수법을 썼다. 니코틴 맛이 느껴지지 않도록 계란 껍데기와 소금을 함께 타기도 했고, 손님들이 맛에 둔감한 시각인 오후 늦은 시간에만 꽁초 커피를 내놓는 주도면밀함도 보였다고 한다.
이들이 진술한 바에 따르면 커피 10잔을 만들 커피 가루에 담배 1/3개비 정도의 꽁초를 비벼 넣어서 보통 25 내지 30잔의 커피를 만들었다. 커피 가루 4파운드를 사면 2파운드로 4파운드 분량의 커피를 만들고, 나머지를 빼돌리는 수법을 쓴 것이다.
그런 일을 벌인 이유는 부족한 월급 때문이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이들은 "커피에 담배를 섞는 것은 다방 주방에선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시내 다방에서 비싼 돈을 내고 커피를 즐겨오던 애호가들의 분통을 터뜨리게 했다.
당시 보도를 보면 꽁초 커피 소문은 거의 1년 전부터 퍼져있었지만, 관계 당국에서는 '설마 그럴 리야'라고 무시해 왔다는 것이다. 1년 동안 허송세월을 하던 검찰이 결국 정보를 입수한 후에야 서울 시내 15개 다방의 커피를 수거해서 서울시보건연구소와 전매청 기술연구소에 감정을 의뢰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4개 다방의 커피에서 니코틴과 담배 찌꺼기가 검출되었다는 것을 통보받고 수사에 착수한 것이었다.
당시 언론들은 이를 "천인공노할 범죄" "가증, 개탄스런 악덕 상혼" "악질 상업주의"라고 비판하는 동시에 국민의 건강권을 도외시해 온 "무위, 무능한 정부"를 질타하였다. 그리고 정부가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더 이상 허물어뜨리지 말 것을 요청하였다. 돈을 벌기 위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민의 건강권을 수단화하려는 모든 인간들에 대한 울분이 꽁초 커피를 통해 폭발한 것이다.
고물가에 대한 다방 업자들의 대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