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보다 좋은 사모 글쓰기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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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주(mukhyangr)등록 2024.04.29 16:20


글쓰기 모임을 하다 보면 한 기수에 꼭 한명씩 사모님들이 오신다. 여기서 말하는 사모님은 사전적 의미의 그 사모님이 아니다. '사모님'을 검색하면 크게 3가지의 뜻이 나온다. 

1) 스승의 부인을 높여 부르거나 이르는 말.
2) 남의 부인을 높여 부르거나 이르는 말.
3) 윗사람의 부인을 높여 부르거나 이르는 말.

   이 의미들이 일반론적인 정의라면 개신교 문화권 아래에서의 '사모님'이라 부르는 호칭도 '목회자의 아내를 부르는 말'이기에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 함의에 부정적인 면모들은 가히 어마어마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인지 이 사모님들이 글쓰기 모임에 오셔서 글을 쓰다 보면 많은 치유와 해방을 맛보시곤 한다. 기독교 문화권 안에서, 교회라는 구조 안에서, 힘껏 소멸 되어버린 '나 자신'을 찾기 때문인 것 같다. 

   이 분들이 공통적으로 쓰는 말이 있다. '제가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이라는 말이다. 기수마다 차이는 있지만 주로 2주차에 안전한 공동체의 연대를 확인하게 되고, 동기들이 약함을 드러내다 보면 어김없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같은 우렁찬 외침이 터져 나오곤 한다. 

   얼마나 그 부푼 배를 끌어안고, 마음 둘 곳, 말할 곳이 없이 외로웠을까. 밤 마다 삼킨 눈물을 수치화 할 수 있다면 몇리터 정도 될까. 이건 분명 '교회 안에 갇힌 하나님'은 모를 속사정이지 않나,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특별히 이번 기수 오전반에는 무려 3분의 사모님이 계셨다. 그들의 연대는 단단하고 든든했다. 전혀 그동안 알고 지낸 사이가 아니었음에도, 마치 오랜 시간을 걸쳐서 오케스트라 준비라도 한 듯, 한편 한편의 글이 씨줄과 날줄로 얽히고 설켜서 아름다운 심포니가 되었다. 

   언제 한번 사모님들만을 위한 기수를 열어볼까 잠시 고민을 해본적도 있었다. 그렇게 한다면 과연 그들만의 이야기와 아픔들이 더 잘 공유되며 새로운 연대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안에서 또 다른 고립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그냥 하던대로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것이 낫지 않나.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지만, 진지하게 고민 중이긴 하다. 

   바라기는 꼭 그들의 삶에 글쓰기가 끝내 머물렀으면 한다. 어디에도 토설할 수 없는 그 언어들을 받아줄 수 있는 글쓰기가 교회이길 바란다. 그리하여 부디 좁은길이니 어쩔수 없다고 나는 신앙을 따라 함께 홀연히 소멸 되는 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이지 않고, 끝내 나를 잃어버리지 않길, 나는 투명인간이 아니라고, 나로 살아가길 포기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다만 그 일을 사모(思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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