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파트보다 빌라가 좋다

상추는 공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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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화(kyunghwa65)등록 2024.04.22 15:16
부천에 신도시가 막 들어서기 시작한 30년 전. 신혼초에 나는 아파트는 꿈도 꾸지 못했다. 누구도 마다하는 홀시어머니의 막내아들과 결혼하게 된 죄(?)로 어머니 돌아기실 때까지 소위 시집살이를 해야했었다. 막상 어머니께서 소천하신후 살던집을 정리하고 이사를 해야할때는 큰아이 초등학교 입학전이었다. 이사할 집을 생각하며 집을 고르는데 남편은 아파트에는 관심이 일도 없었다. 닭장같아서 싫다고 손사래를 쳤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등교할때 큰도로를 건너지 않는 곳이 1순위였다. 그리고 우리동네의 자랑거리인 재래시장과 인접한곳. 맞벌이 부부여서 아이들을 방과후 돌봐주실 친정 가까운곳이면 충분했다. 마침 지금 살고있는 우리집이 필요충분조건에 꼭 부합했고, 망설임없이 계약하고 이집에서 20년이 넘게 살고있는 중이다. 가끔 20년전에 중동이나 상동의 아파트를 선택했다면 지금의 삶이 조금 달라졌을까도 생각해본다.

그러나 돌아보면 후회는 없다. 두아이들 모두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도보로 등하교를 했다. 동네 재래시장은 아이들의 훌륭한 체험학습 놀이터가 되 주었다. 주말마다 현금 만원쯤 쥐고시장 한바퀴 돌면서 온갖 야채며 생선, 과일까지 실컷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이들에겐 호기심천국인 셈, 무료로 체험학습이 가능했다. 그리고 시장투어의 백미인 군것질~ 아이들은 엄마랑 어묵이며 떡꼬치 호떡 사먹는 즐거움에 한 삼천보는 거뜬히 걸었고 덕분에 대화도 많이 할수 있었다.

우리집은 10세대가 모여사는 빌라이다. 우리는2층에 살다보니 우리 아이들은 오며가며 이웃에게 인사를 하며 사랑을 독차지했다. 1층에 사시는 할머니집앞엔 작은 텃밭도 꾸며놓으셨다. 빌라 현관에 들어서면서 보이는 상추며 고추가 초록초록 자라고 있다. 모두 젊은세대인데 1층에 연세드신분이 사시니 우리빌라 앞은 늘 깨끗하다.부지런하고 깔끔하신 덕분에 마당도,음식물 쓰레기통도 언제나 할머니 손으로 정리가 된다.    

어제 1층마당앞에서 텃밭에 물을 주고 계시길래 인사도 드리고 상추 너무 좋아한다고 하니 맘대로 따먹으라고 하신다. 말씀 만으로 감사하다고 웃으며 2층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오늘 교회에 다녀오니 우리집 현관에 검은 비닐봉지가 걸려있었다.

봉지안에 청상추 꽃상추가 손으로 잘린 모양새로 가지런하게 누워있다. 1층 할머니께서 상추모종 솎아 내면서 나를 떠올린것이다. 오늘 저녁메뉴는 흰쌀밥에 스팸굽고 할머니표 상추쌈으로 맛있게 남편과 포식을 했다. 비닐하우스에서 얌전히 자란 상추맛이 아니다.    

이러니 내가 아직도 여기를 못 떠난다. 가족 같은 이웃과 사람냄새 폴폴 나는 재래시장,그리고 얼마전 우리 집 근처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도서관과 공원이 생겼다. 아파트값이 억소리나게 뛰어서 돈좀 벌었다는 동창의 너스레에는 배가 좀 아프지만 당분간은 이사할 생각이 없다. 내가 운영하는 도시락가게도 집에서 5분거리에 있다. 1학년 큰아이와 유치원생 딸래미가 벌써 20대후반이니 둘다 결혼해서 분가하면 남편과 오순도순 좀더 재미지게 살 생각이다.  

빌라 1층 앞마당의 텃밭 ⓒ 임경화

   

문고리에 걸려있던 상추 봉다리 ⓒ 임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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