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아플 수 있음 허락해주는 사회가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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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주(mukhyangr)등록 2024.04.21 18:59

 
전쟁 중에는 몸이 아프지 못한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다. 지금 아프면 죽으니까, 라는 팽팽하게 날이 선 긴장감이 아플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영화 같은 곳에서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군인들이 몇 날 며칠 잠만 자는 모습은 그야말로 실화겠거니 생각이 든다.
 
삶은 전쟁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다. 아플 때 마음껏 아플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프면 삶의 어떤 영역에서 '죽는다'는 의식 위를 작두 타듯 걷고 있지 않나싶다.
 
나도 내 생활의 패턴을 보면 월 – 목까지는 아픈 적이 거의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프지 못하는 것이다. 그 구간에 내가 아프게 되면 내 삶은 주최할 수 없는 붕괴로 이어지기에 아픔이 깃들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꼭 금요일에 아프다. 주말은 앞둔 그 날이 그나마 아프기 딱 좋은 날이기 때문이다. 무리를 한 주간에는 어김없이 금요일에 아프다. 과학 수준이다. 몸은 알고 있는 것이다. 이 날이 그 날이라는 것을.
 
아프다고 해서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그저 오전 일정을 다 캔슬하고 아이들을 등교, 등원 시킨 후에 몇시간만 푹 자면 제법 괜찮아진다. 너무 뻔한 말이지만, 아픔의 해법은 언제나 잘 아프는 것이니까 말이다.
 
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라는 책이 나온지 12년이 지났건만, 현대 사회는 여전히 피로사회다. 켜켜히 누적되는 피로는 적절히 아플 수 있는 권리가 상실시키고, 이로 말미암아 인간성을 위협한다.
 
아파야 할 때 아프지 못하니까 망가지는 것이다. 무리 했을 때 많이들 사용하는 '몸살 났다'라는 표현에서 몸살은 어쩌면 '몸이 살고 싶다고 보내는 절규'라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줌의 몸살 날 여유도 허락하지 않고, 아프면 뒤처지고, 뒤처지면 낙오 되고, 낙오되면 곧 사회적 죽음으로 까지 이어지게 만드는 이 사회의 공기는 인간다움을 유지하기엔 너무 희박하다.
 
육체는 시간이 흐를수록 5년 사용한 휴대폰 같아진다. 분명 완충을 해도 배터리가 순삭 되는 것처럼 빨리 단다. 같은 일을 처리해도 버벅거리고 느려진다.
 
서글프지만 앞으로 매년 이런 증상들은 가속될 것이다. 그러니 이런 구조속에서 성실함 이라는 이름으로, 적극적이라는 태도로 배워야 할 것은, 또한 사회적으로, 시스템적으로 권장 되야 할 것은 아프지 않는 방법이 아니라, 잘 아프고야 마는 방법일 것이다.
 
하루라도 좋으니 소박하게 나마 아플 수 있는 시간이 허락 되었다는 것이 요즘 삶에 고마운 일 중 하나다. 달이 기울 듯 어느덧 삶이 기운다. 모두에게 마음껏 아플 수 있는 날 하루쯤을 허락하는, 살기 좋은 세상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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