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이지만 그랩 운전사로 살아가는 그의 철학

말레이시아의 최대도시, 쿠알라룸푸르에서 만난 로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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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진(shin005452)등록 2024.04.03 13:57
말레이시아에 발을 디딘 여행자를 환영한다는 듯, 세찬 천둥소리와 함께 비가 굵게 내린다.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와 육로로 연결 되어있다. 싱가포르 여행을 마치고 버스로 금방 말레이시아에 넘어오니, 언제 또 비가 왔냐는 듯 해가 구름을 비집고 나온다. 적도 가까이 위치한 말레이시아는 4월에도 어김없이 고온 다습한 아열대 기후를 보인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정글과 도시의 조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Taman Tugu 공원. 정글 나무 사이로 트윈빌딩이 보인다. 말레이시아 수도 한가운데에서 정글 트레킹을 할 수 있다. ⓒ 신예진

 
버스 창가 너머로 말레이시아 랜드마크인 페트로나스 트윈타워가 눈에 먼저 들어온다. 88층의 쌍둥이 빌딩은 멀리서도 위엄한 자태를 뽐낸다. 인도네시아에서 만난 나빌라가 말레이시아 친구, Roger(아래 로저)를 소개해 주었는데, 옳다, 로저와 함께 트윈빌딩에 가야겠다.

말레이시아는 여러 인종이 섞여 있는 만큼, 거리 곳곳에 이슬람, 불교, 인도 다신교 등의 문화가 어우러져 있다. 로저는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으로 마른 체형에 야자수 모양의 반팔을 입고 내 앞에 나타났다. 바투 동굴, 칸칭 폭포 등 쿠알라룸푸 일대를 구경하다 보니 어느덧 날은 저물어 서둘러 쌍둥이 빌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밤이 되니, 조명과 함께 드러난 쌍둥이 빌딩은 화려함을 더했다. 화려함에 힘입어 낮 동안 질문하지 못했던 로저의 삶에 관해 묻는다. 로저는 짧은 웃음을 끝으로 이야기를 꺼낸다.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앞에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랜드마크인 트윈타워는 밤이면 더욱 밝게 빛나는 모습이다. ⓒ 신예진

 
본업은 그랩 운전사이고 부업은 변호사라며 그는 장난스레 자신을 소개한다. 변호사라고 말하기 전에는 알 수 없을 만큼 투박하고 장난기 있는 그는 어렸을 적에도 언제나 선생님에게 불리는 문제아였다. 수필 과제가 주어지면 선생님께 다가가 '제가 왜 수필을 써야 하죠?'라고 되묻는 학생 말이다. 그러나 어린 로저는 행복한 아이였다. 사춘기가 들이닥쳤는지, 활기찬 로저는 사라지고 내성적이며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고등학생 로저가 남았다.
 
낙타 단계에서 그가 깨달은 것

중간에 그는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세 단계 정신변화설을 언급한다. 니체는 삶에서 단계적 변화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낙타, 사자, 아이이다. 낙타 단계는 지방 덩어리를 지고 사막을 수동적으로 건너는 단계이다. 사자 단계에서는 기존 가치를 부정하며 자유에 기대어 살아간다. 마지막 단계인 아이는 작은 것에도 기뻐하는 어린아이와 같이 삶을 살아가는 단계이다. 
 

로저와 데이지 힌두교 주요 성지이자 세계적으로 알려진 종유석 동굴, 바투동굴에서 로저와 데이지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신예진

 
 
로저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아이 단계로 표현했다. 한 순간에 세상을 차단한 고등학생의 그는 낙타 단계로 돌아간 것이다. 소극적이며 회색 잿빛의 시기를 보내온 그는 대학생이 되어 명상과 철학 공부를 시작했다. 철학은 영적 공부로 이어지고, 쌓이는 책과 함께 그는 스스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공부를 하면서 나는 내 자신이 되었어. 내가 알고있던 초등학교 때의 내 자신이 된 거야. 나에게 영향을 준 사람은 알려지지 않은 내 자신이었어."
 
그 순간은 니체가 말한 아이의 단계를 다시 마주한 순간이다. 그는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이기에 대통령은 될 수 없다며 씁쓸한 농담을 지으면서도 그의 눈동자에는 법에 관한 관심이 가득했던 어린 시절의 아이 모습이 보였다. 말레이시아는 '부미푸트라' 정책을 펼쳐 중국계와 인도계보다 말레이계에 특권을 준다. 다양한 인종의 국가라지만, 뚜렷이 인종 간 차별이 보인다. 그 속에서 로저는 모두에게 존경받을 수 있으며 한때 정치인이 되기를 꿈꾸며 로스쿨의 교정을 밟았다.
 
2017년, 졸업장을 받고 그는 변호사 시험에 도전했다. 온전한 힘을 쏟지 않았던 첫해는 낙제했지만, 이후 그는 매일 도서관에 가서 미친 듯이 공부했다. 쉬는 시간을 빌려 담배를 필 때에도 그는 변호사가 된 자기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합격할 수 있던 이유로 그는 자신이 무언가를 원하면 그걸 얻을 수 있다는 믿음 덕분이라 말한다.
 
그러나, 2년도 채 안 되어 다니던 법무법인을 그만두었다. 더 많은 기회를 찾아서 그만둔 것이다. 실제 말레이시아에서는 변호사보다 그랩 운전사로 일하는 것이 수익이 더 높다며 농담도 던진다. 농담에 가볍게 웃는 그는 곧바로 말을 덧붙인다.
 
"여전히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찾고 있어. 나는 이기적이어야 해. 아직도 나는 공부하고 배워야 할 게 많아."
 
당신의 삶의 이유, 당신의 데이지는 무엇인가요?"
 
낙타의 단계에서 다시 아이 단계로, 이후 자유를 포효하는 사자의 단계로 나가는 로저. 그는 삶이라는 무대에서 여러 단계를 오가며 자신을 찾아간다. 그가 얻은 깨달음은 어떤 삶의 이유를 가져왔을까. 그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내 삶의 이유는 서로에게 상기되는 거야. 서로의 삶을 상기해 주기 위해 나는 여기에 있어. 우리는 하나의 선이야. 연결되어 있지. 그러니 너의 희망은 나의 희망인 거고, 네 삶의 이유는 내 삶의 이유야."
 
그는 낙타의 단계에서 명상과 영적 공부를 통해 자신의 어린 모습을 되찾았다. 인생의 깊은 진리를 깨달은 활기찬 어린아이의 모습과도 같다. 울지 않는 용맹한 아이가 아닌, 눈물을 흘리고 일어서는 용감한 어린아이 말이다.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아이의 단계에 이르러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덧붙이는 로저. 아이의 단계에서 인생의 연결성을 통달한 로저를 보며, 황량한 사막 속에서도 아이로 주어진 상황을 마주할 수 있을지 질문한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데이지가 핀다. 다음 목적지는 태국 방콕이다.
덧붙이는 글 해당 기사의 원본 대화는 기사 발행 일주일 후 아래 기자의 블로그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daisy_p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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