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열흘 앞둔 3월 31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 아파트 우편함에 투표 안내문·선거 공보물이 꽂혀 있다.
연합뉴스
선거철이 다가오면 아무것도 하지 말고, 침묵해야 하는 존재들이 있다. 교원과 공무원이다. 정치적 중립성 의무를 각종 법률에서 강하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좋아요'도 누르지 못하고 선거 관련 기사도 공유하기 어렵다. 일부 정당에서 비례대표 후보자 순위를 정할 때 당원이 아닌 일반 국민도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데, 이 경우에도 교사와 공무원은 참여하지 못한다.
정당 가입과 정치인 후원은 당연히 안 되고, 특정 정당과 정치인에 대해 어떤 의사 표현도 하면 안 된다. 교원과 공무원이 시도의원이나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려면, 휴직이 아닌 퇴직을 해야 한다. 가히, '정치적 금치산자', '정치 천민'으로 볼 수 있는 수준이다. 교원과 공무원에게 선거일에 투표권을 주는 것에도 감지덕지 고마워해야 하는 것인가?
헌법 제31조 4항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보장한다는 취지는 규제보다는 장려를, 의무보다는 권리 차원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실상은 헌법과 법률 간 간극이 매우 크다.
교육공무원법, 정당법, 공직선거법, 정치자금법 등 각종 법률에서는 교원과 공무원은 정치에 참여할 수는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학생들은 16세부터 정당에 가입할 수 있고, 선거운동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교원과 공무원은 불가능하다.
역사적 맥락이 있다. 과거 자유당 정권에 의해 자행된 3·15 부정선거에서 교원과 공무원이 동원된 관권 선거 경험이 있다 보니, 이들에게 정치적 중립성을 강하게 요구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본래의 헌법 취지를 잘 생각해 보면, 권력의 부당한 지시에 대해서 공무원과 교사들을 보호하고, 이들에게 휘둘리지 말라는 취지에서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자율성 보장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권력의 부당한 지시로부터의 보호"보다는 교원과 공무원에 대한 "정치 참여의 금지"로 해석과 적용이 이루어지고 있다.
'교원과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지'라고 우리는 생각할 수 있는데, 보다 정확히는 직무와 관련하여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하는 것이고, 그것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치적 기본권 보장을 모색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사례와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만큼 엄격하게 정치적 기본권을 교원과 공무원에게 엄격히 적용하는 사례가 없다. 우리에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실이,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교원과 공무원의 정치기본권 보장해야 하는 이유
그렇다면, 교원과 공무원의 정치적 권리를 왜 보장해야 하는가에 관한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정치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먼저 살펴보자. 통상적으로 '정치'하면 우리에게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여야 간에 서로 싸우고 갈등하는 장면이라든지, 당권을 둘러싼 권력투쟁이라든지, 소신과 철학을 버리고 권력만 좇는 정치인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정치 이미지는 우리로 하여금 정치를 환멸하게 만들고, 멀어지게 한다. 집안 식구 중에 누군가가 정치를 한다고 하면, 대부분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말릴 것이다.
하지만 한정된 예산을 가지고 그 예산을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고 쓸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도, 여러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물린 문제를 조정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것도 정치를 거쳐 이루어진다. 정치가 잘못되면, 경제, 교육, 의료, 복지, 국방, 환경 등 우리의 일상 자체의 곤경으로 이어진다.
교원과 공무원들은 특정 분야의 정책과 사업을 일선에서 실행하는 전문가로서, 특정 정책과 사업이 어떤 문제를 갖고 있는가를 잘 알고 있다. 이들이 각종 정책과 사업을 모니터링하고, 제안해야 변화와 혁신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정치 구조에서는 국회나 시도의회에 이들이 입성하기는 매우 어렵다. 퇴직해야 하기 때문이다. 핀란드, 독일, 프랑스 등에 비해 우리나라는 공무원이나 교원의 의원 비율이 현저하게 낮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정치 공간을 비전문가들이 참여하기도 하면서, 심지어는 이해관계에 포획된 이들이 관여하면서 의미 있는 정책을 생성하지도 못하고, 문제 있는 정책에 제동을 걸지도 못한다. 이러한 고질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의 인력풀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국회의원을 보면, 기존 국회의원이나 정치인들을 제외하면 변호사, 판사, 검사와 같은 법조인이 가장 많다. 그 외에는 교수와 의사, 기업인들이 비중을 차지한다. 국회의원들은 더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져야 하며, 특히 특정 정책과 사업을 다루어 본 경험이 있는 공무원과 교원들이 각 위원회에 보다 많이 포진될 필요가 있다. 이는 유권자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히면서, 정치인 간 경쟁을 촉발시켜 좋은 정치를 구현할 수 있게 만들 것이다.
한편, 교원들의 정치 기본권 보장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정치적 중립성을 워낙 강하게 요구하다보니, 학교 현장에서는 토의와 토론 수업이 쉽지 않다. 교과서부터 쟁점 토론을 할 때 시사 문제를 활용하기보다는 해외 사례 내지는 먼 역사적 사실을 끌어온다. 그래야 시비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민주시민 양성은 교육기본법과 교육과정 총론에서 강조하고 있는 우리 교육의 핵심 목표이지만, 정치를 제외한 진공상태에서 그러한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는가? 교사가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가치를 주입하고 교화시키지 않는다는 원칙만 확인하면 충분하다.
또한, 선거를 앞두고 청소년들과 학생들 스스로 공약을 제안하거나 평가할 수도 있고, 그들이 좋게 생각하는 공약에 대해서 발표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청소년들의 '정치 리터러시' 능력을 기를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감히 시도할 수 없다. 당장,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제동이 걸릴 확률과 민원으로부터 시달릴 확률이 100%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정치판을 한 번 더 흔들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