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식품의 커피와 커피 관련 품목들
연합뉴스
1972년 9월에는 우리나라 커피의 역사에서도 주목할 만한, 매우 의미 있는 책이 출간되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커피에 관한 최초의 단행본일 것이다. <커피>라는 제목의 106쪽 분량의 책이다. 이 책을 기획하고 원고를 준비한 것은 맥스웰 커피를 생산하는 '동서식품'이었고, 편집과 발행을 맡은 것은 '합동통신사' 광고기획실이었다. 인쇄는 서울 을지로에 있던 '웅선문화사'가 맡았다.
이 책의 서문에 해당하는 '발간에 즈음하여'에서 동서식품 대표이사 신원희는 18세기 프랑스의 외교관 탈레랑의 커피 예찬, 즉 "커피는 악마와 같이 검고, 지옥처럼 뜨겁고, 천사같이 아름답고, 사랑처럼 달콤하다"란 표현을 인용하였다. 책의 서문은 커피가 우리나라에 상륙한 지 백년, 이젠 현대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기호 음료로서 "우리 국민의 절대적인 총애를 받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런 때를 맞아 커피에 관한 올바를 지식을 제공하기 위해서 이 책을 내놓게 되었음을 밝혔다.
이 책은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 '커피의 역사'로 시작하여, 커피재배와 관리, 커피생산국과 소비국, 커피의 종류, 인스탄트 커피, 커피의 성분과 영향, 커피의 조리법, 전설과 일화, 그리고 마지막 장 '커피년표' 순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반세기 전 커피에 관한 모든 정보를 수록한 커피 교과서 내지는 백과사전이다.
참고문헌이 나와 있지 않아서 정확하게 어떤 자료를 활용하여 썼는지를 알 수는 없다. 내용에 일본 커피 이야기가 몇 군데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일본 서적을 참고했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동서식품 임원에 미국 맥스웰하우스 일본법인 소속 일본인들이 다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책에는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다. 커피에 관한 세계 최초의 기록과 관련해서는 10세기의 이라크 의학자 라제스, 11세기 아라비아의 의학자 아비센나 이야기를 소개하였고, 커피에 관한 유럽 최초의 기록은 사학자이며 식물학자였던 찰스 구루시아스라는 인물이 1574년에 쓴 커피의 성분에 관한 글이라고 썼다. 아쉽게도 찰스 구루시아스라는 인물에 대해 혹은 그의 커피 글에 대해서는 더 이상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없다.
1582년에 독일의 여행가 레온 라우볼프('레온 하드로 월프'로 표기)가 쓴 시리아여행기 속에서의 커피 음용 기록과 이탈리아의 식물학자 프로스페로 알피노의 커피 기록도 언급하였다. 라우볼프의 기록은 현재 유럽인 최초의 커피 관련 기록으로 거의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책은 인류 최초의 커피가 10세기 전후 에티오피아에서 음용되기 시작하였고, 이것이 아라비아로 건너가 이슬람음료로 정착하게 되었다고 서술하였다. 최초의 카페는 15세기 메카에 생겼고, 이후 16세기에 이집트 카이로와 오스만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에도 커피하우스가 문을 열었다는 내용도 나온다. 이후 커피에 대한 탄압이 예멘과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일화와 18세기 영국에서 벌어졌던 커피하우스 폐쇄령 등이 서술되었다.
흥미로운 내용 중 하나는 당시 지구상에서 생산되는 커피를 두 종류로 구분했다는 점이다. 이는 미국을 중심으로 당시 유행하고 있던 구분법이었다. 커피는 브라질 커피와 마일드 커피로 구분하였다. 브라질에서 생산되는 커피는 향기나 맛에 있어서 부족함이 많지만 값이 싸다는 장점이 있고, 브라질 이외의 지역에서 생산되는 마일드 커피는 향미와 산미가 강하며 모양도 예쁜 특징이 있다. 물론 브라질 커피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 이런 특징으로 인해 브라질 커피는 가격의 커피, 마일드 커피는 질의 커피라고 부른다는 내용도 서술되어 있다.
이 책에는 1946년 기준 세계의 국가별 커피 소비량이 소개되어 있다. 미국이 전 세계 소비량의 무려 63%, 유럽이 19%, 기타 18%를 차지할 정도로 20세기 중반 미국이 커피 소비의 왕국이었던 모습을 보여준다. 당시 미국인들은 하루에 평균 2.5잔을 마시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아시아 제1의 커피 소비국 일본의 모습이다. 일본은 1년에 1인당 0.1파운드(45그램)의 커피를 소비하고 있는데 이는 미국의 120분의 1 수준이었다.
커피 전문가들이 지금도 마음에 담아야 할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