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3일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표석을 찾은 유족들이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족의 자주독립에 인생을 건 강문석
18세 때인 1924년에 대정공립보통학교를 나온 뒤 경성공립중학교를 졸업한 강문석은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가 인정하는 능력자였다. 이 신문의 1933년 2월 26일자 7면 우중단은 "재사(才士)로, 또한 리론과 책동에 잇서 총애를" 받는 인물로 평가했다. 이론과 기획 및 실행 등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재사로 호평했던 것이다. "경성공립중학교에서 1호의 성적으로 졸업"했다는 기사 내용에서도 그에 대한 높은 평가를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 기사는 "○○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그를 범법자로 취급했다. ○ 2개에 들어갈 단어는 '독립'이나 '항일'로 보인다. 이 시절에는 기사에 이런 기호가 많았다. 이 기사는 강문석을 범법자로 취급하면서도 위와 같이 높이 평가했다. 탁월한 인재가 항일진영에 가세한 것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강문석은 19세 때인 1925년에 모슬포에서 한남의숙을 설립하고 모슬포청년회를 무대로 계몽운동에도 참여했다. 그런 활동을 하면서도 경성중학교(경성고등보통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던 것이다.
22세 때인 1928년에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도쿄의 고등학교를 거쳐 와세다대학에 들어갔다. 여기서도 천재적 기질을 발휘해 여러 가지를 병행했다. 학업을 하는 와중에도 노동운동가로 활동하며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전협)에 가입했다.
이 조직의 간부가 된 그는 대담한 거사에 참여했다. 김관후 칼럼에 따르면, 오사카의 한국인 노동자 3백여 명과 함께 현지의 공장을 습격하는 거사에 가담했다. 일반적인 노동운동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던 것이다.
위 <매일신보> 기사는 "빈한한지라 항상 세상의 불공평을 늑기는 가운데에서" 강문석이 그런 일들을 벌였다고 평했다. 이 기사의 표현대로 그 자신이 가난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일본에서 억압과 착취를 당하는 동포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기에 그들과 행동을 함께했으리라 볼 수 있다.
위 <매일신보> 기사의 제목은 '도쿄·오사카에서 노동운동 계속'이고 부제목은 '상해 가서 중국공산당에 가담, 강문석의 범행 내용'이다. 일본제국주의에 대항하고자 제국주의의 반대편인 공산주의에 가담하기는 했지만, 공장 습격으로 체포됐다가 석방된 그가 상하이에 넘어간 것은 무엇보다도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조봉암과 함께 국내로 송환된 것은 그가 독립운동을 했기 때문이다. 위 부제목은 '상해 가서 ○○운동에 가담, 강문석의 범행 내용'으로 수정해서 읽어야 한다.
강문석은 일본에 건너가 와세다대학을 다니다가 한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공장 습격을 벌이고 이 때문에 체포됐다가 풀려나자 상하이로 건너가 항일운동을 벌였다. 이런 이력에서 느낄 수 있듯이, 그는 민족의 자주독립에 인생을 건 사람이었다. 국가보훈부는 그의 항일투쟁을 인정하지 않지만, 그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항일 독립투사였다.
그런 강문석의 영향을 크게 받은 인물이 제주 4·3의 주역인 김달삼(이승진)이다. 이 가명은 전직 항일투사가 쓰던 것이었다. 이승진은 항일투사인 장인어른을 생각하면서 이 가명을 썼다. 그리고 이 가명을 쓰고 4·3항쟁을 벌였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 4·3의 성격이 규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4·3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은 부정하기 힘들다. 이는 4·3이 소련과 김일성의 조종을 받은 꼭두각시들의 행동인지, 아니면 해방과 독립을 완성하기 위한 민족주의자들의 의거인지에 대한 이해를 돕는 단서 중 하나다.
조봉암과 함께 끌려왔다가 징역 5년 형을 받은 강문석은 일제 침략전쟁 와중인 1941년에도 예방구금 차원에서 청주형무소에 수감됐다. 1945년에 해방을 맞은 그는 항일투사들이 주축이 된 조선공산당에 가담했다가 남로당 중앙위원이 되어 친일청산과 분단반대를 위해 싸웠다.
이 싸움에서 그와 그의 동료들은 미군정과 친일세력에 밀렸다. 이는 그가 1948년에 38도선 이북으로 밀려나 북한에 가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되고 조선노동당 상무위원이 되는 계기가 됐다. 그는 그곳에서 김일성 진영과의 권력투쟁에 패해 1955년에 숙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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