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입임대 거주기간 확대 요구 기자회견2023년 10월 12일, <오래살자 임대주택 주민모임>이 매입임대주택 거주기간 확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김윤영
'집'은 인류의 재생산을 위한 필수재이지만 물려받거나 은행에 저당 잡히지 않는 한 노동 소득으로 범접할 수 없는 상품이 돼 버렸습니다. 거리와 쪽방, 고시원 같은 한계 거처에서 사람이 살고, 전세사기 피해자는 피해 인정자 수만으로도 1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이제 '집'은 보금자리가 아니라 불안의 씨앗이라고 재정의되어야 할 지경입니다.
집에서 파생된 여러 문제를 해결하려면 시장에 내던져진 집을 공공의 영역으로 가져와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가장 핵심적인 정책은 공공임대주택입니다. 주택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주거로서만 역할 할 뿐 부동산 시장에 상품으로 팔려나가지 않는 공공임대주택의 확대가 관건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장기 공공임대주택은 전체 주택의 4%, 영구임대주택은 1%에 불과합니다. 주거 문제에 극히 선별적으로 대응할 수준에 불과하여 전체 주거 문제의 해법으로 제시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현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오히려 삭감시켜 빈약한 공공임대주택 정책을 더욱 후퇴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을 멈추고 공공임대주택 확대로 정책 방향을 재설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공공임대주택은 기본적으로 영구 거주할 수 있도록 재계약 횟수의 제한을 폐지해 입주자의 주거 안정을 보장해야 합니다. 이미 '공공주택 특별법'은 임대주택 유형마다 재계약 소득·자산요건을 심사하도록 하고 있어 일률적인 거주기간 제한 없이도 우선순위 필요에 따른 배분이 이뤄지도록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는 매입임대주택 도입 만 20년이 되는 해로 만기퇴거자에 대한 대책이 시급합니다. 조사에 따르면, 매입임대주택 거주 가구 중 저축을 전혀 하고 있지 못하는 가구는 81.4%, 92.4%의 가구는 이사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매입임대주택의 거주기간을 영구화하거나 최소한 확대하는 정책을 속히 시행해야 합니다.
주거를 중심으로 한 홈리스 정책 필요
주거취약계층 중에서도 거리, 쪽방, 고시원, 찜질방 등 홈리스 상태에 처한 이들의 상황은 더욱 절박합니다. 그러나 정당들의 총선 공약에 이들에 대한 정책은 단 한 줄의 언급도 없습니다. 아마 그 수가 적고, 지원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 수준이 낮다 판단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홈리스의 숫자가 적다는 것은 조작된 통념입니다. 앞서 제시한 국토교통부의 '주택총조사', '주택 이외의 거처 주거실태조사'는 주거취약계층의 규모가 광대하고, 증가추세에 있음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노숙인복지법'을 근거로 '노숙인 등'을 거리, 노숙인 시설, 쪽방에서 사는 사람으로만 제한하여 파악합니다.
전국 실태조사도 5년 단위로밖에 진행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노숙인 등'의 수는 2017년 1만7532명, 2021년 1만4404명에 불과하며 그 수도 줄어드는 추세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이런 실태 파악은 '노숙인복지법'과도 맞지 않는 것으로, 법률은 '노숙인 등'의 범위를 "상당한 기간 동안 주거로서의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을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보건복지부는 '노숙인 등'의 규모를 파악할 때 국토교통부와 같이 주택 이외의 취약 거처인 비숙박용 다중이용업소, 고시원, 컨테이너, 창고, 움막 등의 거주자를 파악했어야 합니다. 조사 범위를 제약하여 문제의 크기를 줄이는 부정한 수법은 이제 멈춰야 합니다.
거리 홈리스는 임대주택을 신청할 수 없도록 운영되는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 거리 홈리스에게 일시적으로 월세를 지원하는 임시주거지원 사업이 고시원비 상승 등 빈곤비즈니스를 부추기는 문제, 장애와 질병 등을 이유로 홀로 거주하기 힘든 이들에게 주거유지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원주택의 공급 부족 등 홈리스와 관련된 주거정책들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개선할 점이 무척 많습니다.
3월 8일, 서울특별시의회가 '서울특별시 서울역광장의 건전한 이용 환경 조성을 위한 지원 조례'를 제정하며 거리 홈리스의 존재를 도덕의 문제로 왜곡하여 통제하려 하듯, 홈리스에 대한 혐오와 형벌화 조치들 역시 우리 사회가 주목하고 대응해야 할 주제입니다.
꼭 한 달이면 입법 권력을 재구성할 총선이 열립니다. 늘 보수 여야의 자리바뀜으로 끝났고 올해 역시 다를 바 없을 듯합니다. '투표'는 그런 결말을 맺더라도, 우리는 총선이라는 정치의 장을 그동안 소거됐던 목소리를 내고 그런 소리에 민감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고자 합니다.
3월 19일, 쪽방 주민 등 홈리스들은 동자동 쪽방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요구안을 발표할 계획입니다. 쪽방 주민들의 요구를 공약에 담지 않는다면 동네에 한 발짝도 들일 수 없다고, 더 이상 선거철 배경으로 주민들을 소비하게 두지 않겠다고 선언할 예정입니다. 이런 목소리를 귀담는 후보가 있다면 반갑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