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에 대해서 잘못된 설명을 해서 논란을 불러 일으킨 행정안전부의 SNS 홍보물
행정안전부
공동체의 역사인식을 형성하고 이를 통합하는 데 기여하는 상징적 기호들이 있다. 가정에서는 결혼기념일이나 생일 또는 추억의 장소들이 그런 기능을 하고, 사회나 국가에서는 역사적 사건이나 유적들이 그런 기능을 한다.
한국에서 을미사변, 3·1운동, 8·15 광복, 독립운동, 상하이 임시정부, 독도, 을사늑약(을사보호조약), 경술국치, 토지조사사업, 산미증식계획, 일본제국주의, 기미가요, 일왕(천황), 자위대, 친일파 등의 숫자나 단어는 사회나 국가의 역사인식 혹은 일본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는 상징적 기호로 작용한다. 동북공정이란 단어가 중국에 대한 인식이나 감정을 일으키듯이, 위 단어들은 일본에 대한 인식·감정을 일으키고 한국 국민들을 단결시키는 기능을 한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하에서는 일본과 관련된 그런 기호들을 흔들어대거나 뭉개는 듯한 일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시마네현의 독도 강탈 118주년을 기념하는 지난해 2월 22일 '다케시마의 날'에는 국군이 자위대와 함께 독도 인근에서 한미일 미사일 방어훈련을 실시했다.
경술국치 113주년인 지난해 8월 29일에는 국군이 자위대와 더불어 제주 남방에서 동일한 훈련을 벌였다. 을사늑약 118주년인 지난해 11월 17일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스탠퍼드대학에서 공동 좌담회를 열었다.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부정적 기억이 떠오르는 날마다 한·일 협력의 이미지가 연거푸 연출됐던 것이다.
또 한국인들이 싫어하는 대상이 한국에 가까이 다가오고, 한국인들이 싫어하는 주장이 갑자기 귀에 박히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2월 16일에 이어 올해 2월 14일에도 일왕의 생일파티가 서울에서 열리고 여기서 기미가요가 연주됐다.
지난해 12월에는 '독도는 분쟁 중'이라는 일본 주장을 담은 국방부의 <정신전력 기본교재>가 배포됐다가 회수됐다. 배포하는 과정보다 회수하는 과정에서 '독도는 분쟁 중'이라는 메시지가 훨씬 강하게 각인됐다.
이번 3·1절을 전후해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윤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은 파트너' 발언을 작년에 이어 2년 연속으로 했다. 또 자위대를 연상시키는 글자 배열을 등 뒤에 두고 기념사를 낭독하면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행정안전부의 황당한 역사 왜곡 홍보물
3·1절 전날에는 더 황당한 일이 있었다. 행정안전부가 상하이 임시정부가 아닌 하얼빈 임시정부를 운운하는 3·1절 홍보물을 업로드했다가 삭제한 일이다.
'3·1운동'이라는 제목하에 카드뉴스 형식으로 작성된 이 홍보물은 "1919년 3월 1일, 만주 하얼빈에서 시작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선언과 동시에 만주, 한국, 일본 등에서 일어난 대규모 항일 독립운동입니다"이라는 설명문을 담았다. 임시정부 수립 이전에 민족대표 33인의 주도로 서울에서 독립선언문이 발표된 사실과 동떨어진 홍보물이다. 또 임시정부의 거점을 상하이가 아닌 만주 하얼빈으로 잘못 설명하기까지 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라는 정식 명칭 대신에 상하이 임시정부라는 편의상의 명칭을 사용하는 한국인이 훨씬 많다. 그 정도로 대다수 한국인들은 '임시정부' 하면 '상하이'를 떠올린다. 그런데도 하얼빈 임시정부를 운운하는 홍보물을 제작했던 것이다.
'임시정부' 하면 상하이 외에 한성과 블라디보스토크도 떠올리는 한국인들이 상당수 있다. 하지만 '임시정부'와 함께 '하얼빈'을 연상하는 한국인은 전혀 없다.
이런 일들은 한국인들이 뇌리에 각인된 상징적 기호들에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아무리 확고하게 각인된 기호일지라도, 이런 일들이 되풀이되면 기호가 흐릿해지거나 지워질 수도 있다. 을미사변, 3·1, 8·15 같은 위의 기호들을 중심으로 한 한국인들의 대일 역사인식에 영향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실패한 중국 군벌의 '하얼빈 임시정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