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거리와 짜장면

기억들

검토 완료

홍윤정(arete)등록 2024.03.02 16:54
"시를 남북으로 나누며 달리는 철길은 항만의 끝에 이르러서야 잘려졌다."
(중국인 거리, 오정희) 

 
오정희의 단편 <중국인 거리>는 유년시절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전쟁 직후 인천의 차이나타운으로 이사 온 초등학교 2학년 여자아이는 5학년이 될 때까지의 기억들을 하나씩 나열한다. 그 공간에 살던 친구 치옥이는 12살에 미용실에 취직하고 치옥이 언니인 매기언니는 같이 살던 미군 병사에게 살해당하는 등 비참하고 슬픈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주인공 여자아이는 그런 비참함에 맞서려는 듯 씩씩하고 당차기만 하다. 자기머리를 성의없이 깎아놓은 이발소 아저씨를 향해 '평생 가위질이나 하며 살라'고 매섭게 쏘아부칠 정도로. 이발사는 '참 되바라진 아이'라고 혀를 차지만 이발소내 손님들은 와하하 웃음을 터뜨리며 암묵적으로 아이 편을 들어준다. 
 
내 어릴 적 기억속에는 철길이 있다. 철길에서 놀다 '땡땡땡' 경고음이 울리면 내또래 조무래기들은 후다닥 철로 바깥으로 도망쳐 기차가 지나갈 때까지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멀리서 기차가 우렁찬 기적소리를 내며 돌진해오는 모습은 얼마나 무섭던지 나는 기차와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는 꿈을 종종 꾸곤 했는데 그때마다 이불에 오줌을 지려 엄마한테 야단맞기 일쑤였다. 인천은 그런 곳이었다. 철길이 동네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나는 인천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인천에서 살았다. 오정희 작가가 묘사한 중국인 거리는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곳이라, 서로의 시간대는 다르지만 공간적으로 가깝게 있었다는 사실이 반갑게 다가왔다. 작가의 시간이 저장된 공간과 나의 시간이 저장된 공간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고 싶었달까. 
 
토요일 오전, 남편과 인천행 지하철을 탔다. 서울 왕십리에서 출발한 수인분당선은 죽전, 수원, 안산, 소래포구, 송도 등을 거쳐 종점인 인천역까지 갔다. 내가 탄 정자역에서 인천역까지 가는데에는 꼬박 두 시간이 걸렸다. 전철이 지상으로 지나갈 때면 차창 밖으로 늘 비슷한 풍경이 보였다. 유사한 형태의 아파트 군락들이 반복해서 나타나 어디가 어딘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였다. 인천역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광장에 세워진 작은 석조물이다. 기차모양을 한 그 석조물에는 '한국철도 탄생역'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철도 부설로 시작된 우리나라 근대사를 떠올렸다. 1883년 제물포항이 개항되고 인천과 경성을 잇는 경인선이 1899년 개통되었다. 인천역은 경성에서 출발한 기차가 닿는 종점이었다. 내 어릴 적 공간을 떠올릴 때 철길이 연상되는 건 이 때문이리라. 
 

인천역 ⓒ 홍윤정

  
 
인천역 광장 건너편 언덕에 형성된 차이나타운은 오전인데도 나들이나온 사람들로 북적댔다. 1884년 배를 타고 온 청나라 사람들이 이곳 응봉산 서쪽언덕에 자리를 잡고 지금의 차이나타운을 형성했다고 한다. 차이나타운 바로 옆은 일본조계지다. 해가 잘드는 남향인데다 땅이 편평하고 배를 대는 항만과도 가까워 1883년에 온 일본 사람들이 더 좋은 자리를 선점한 게 분명하다. 인천항이 이곳을 중심으로 발달했음은 누구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인천시청(지금은 중구청) 건물과 일본식 적산가옥들이 즐비한 이 거리에는 여관이나 술집 등이 많았는데 지금은 기념품가게나 커피숍, 또는 식당으로 말끔하게 변신해 젊은 남녀들이 많이 보였다. 그곳에서 도보로 오분 거리에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가 있다.
  

인천 개항 ⓒ 홍윤정

 
학교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정문앞에 서니 옛날 기억들이 퇴색한 사진처럼 희뿌옇게 되살아났다. 점심시간이면 학교 건너편에 있는 체육관에 가서 탁구를 치곤 했었는데.... 그때는 거대해보였던 체육관 위용이 지금은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살면서 거대한 빌딩들이 눈에 익은 탓이리라. 갑자기 고등학교 1학년 때의 교실풍경이 떠올랐다. 68명의 여학생이 앉아있는 콩나물 교실. 청소도구들과 쓰레기통이 놓인 교실 뒤쪽의 유리벽. 그 투명한 유리창을 통해 우리는 크고 작은 배들, 육중한 외국 화물선들이 정박해 있는 하늘색 바다를 보곤 했다. 창문을 열면 바닷바람이 교실안으로 스멀스멀 들어와 초여름 날의 우리를 한없이 나른하게 만들곤 했지. 갑자기 옛 친구들이 교실에서 튀어나와 내옆으로 달려올 것만 같았다. 혹시라도 낯익은 얼굴이 보일까 찬찬히 살폈다. 있을 리가. 40년 만에 찾은  학교다. 
 
학교 정문 왼편에 문방구겸 구멍가게가 있었는데 지금 그 자리엔 4층 빌라 건물이 무심히 서 있었다. 건물이 나를 향해 '누구세요?' 라고 묻는 듯 했다. 나는 대답을 못하고 망연히 건물만 바라보았다. 
 
배가 고팠다. 무얼 먹을까 둘러보다 차이나타운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메뉴에 '하얀 짜장면'이란 게 있길래 맛이 어떨지 궁금해서 주문했다. 소스를 섞어 한 젓가락 집어올렸다. 옆 테이블에는 남학생 네 명이 머리를 맞대고 짜장면과 탕수육을 우걱우걱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릇위로 아버지 모습이 스쳐지났다. 졸업식날 아버지와 같이 먹던 짜장면이 떠오른 것이다. 그땐 외식이 흔치않던 시절이라 졸업식이나 입학식 같은 날이라야 짜장면을 먹었다. 짜장면은 정말 맛있는 음식이었다.
 

하얀 짜장면 ⓒ 홍윤정

 

짜장면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나니 비로소 고향에 온 듯 푸근해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40년 만에 찾은 거리는 옛날보다 훨씬 더 깨끗하고 부유해진 모습이지만, 허망하게도, 문방구가 있던 길이나 건물들, 옛날에 먹던 짜장면, 그리고 부모님은 흘러간 세월만큼이나 멀리 달아나버렸다는 것을. 기억속의 실체가 더 이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체감한 것이다.
 
귀가길 지하철에 앉아 수 년 전에 읽은 루쉰의 문장들을 어렴풋이 떠올렸는데 몽롱한 중이라 단어 몇 개가 머리속에서 맴돌다 사라질 뿐이었다. 그 문장이 뭐였더라…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오늘 도서관에 가서 루쉰의 책을 검색했다. 그리고 그 문장들을 찾아냈다. 현실에서 사라져버린 기억의 실체들을 루쉰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한때 나는 어린 시절에 고향에서 먹던 채소와 과일, 마름 열매, 잠두콩, 줄풀 줄기, 참외 같은 것들에 대해 자주 생각하곤 했다. 이런 것들은 모두 대단히 신선하고 감칠맛 있으며, 또한 모두 고향 생각을 자아내던 유혹이었다. 그후 오랜만에 다시 먹어 보았더니 예전 같지는 않았다. 기억 속에는 지금도 지난 날의 그 감칠맛이 남아 있다. 이런 것들은 아마도 한평생 나를 속여 가며 가끔 지나간 일을 돌이켜 보게 할 것이다."
<아침 꽃 저녁에 줍다> 루쉰 지음, 김하림 옮김, 그린비


루쉰은 또 이렇게 썼다. '사람이 해야 할 일 중에 오로지 추억만 남아있다면 아마도 그 생애는 무료해졌다고 해야 할' 것이라고. 이 말은 과거를 돌아보되 과거에 매몰되지 말 것과 과거를 스승삼아 진일보하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일 게다. 나는 그렇게 해석하고 싶다. 자기합리화같겠지만, 점점 나이들어 삶이 무료해질 때에는 지난 일을 돌이켜 보며 그때의 감각들을 글로 써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그렇게 함으로써 무료함을 피할 수도 있거니와 무엇보다 나를 성찰할 값진 시간이 되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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