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2023년 2월 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전국청년위원회 발대식에서 참석자들과 "청년의 힘으로 총선승리" 손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인생을 바칠 각오로 정치권에 진입한다고 해도 눈앞에 펼쳐지는 건 막막한 미래다. 모든 게 불확실하고 불투명하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정당은 늘 청년 인재 양성을 강조하지만 막상 이를 위한 노력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 정치학교는 간헐적으로 열리는 이벤트에 그친다. 그 내용도 당내 유명 정치인들의 대중 강연으로 채워진다. 실질적 역량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마다 존재하는 청년 조직은 별도로 배정된 인력과 예산이 없는 대외활동에 지나지 않는다. 청년들은 여기에 자기 돈을 써가며 참여하는데, 그럼에도 미래 정치의 파트너가 아닌 조직 동원의 객체로 취급당한다.
정치 활동을 하는 청년 중 적지 않은 수가 호구지책으로 국회 보좌진의 길을 걷는다. 청년들에게 정치 활동을 병행할 수 있는 밥벌이 수단이란 사실상 보좌진 정도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버티는 것도 녹록지 않다. 채용은 인맥으로 알음알음 이뤄지는 경우가 허다하고 근로 조건은 근로기준법의 치외법권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열악하다. 무엇보다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모든 게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인턴으로 들어갔다가 잘 풀리면 몇 개월 만에 9급 이상으로 승진하기도 하지만, 운이 나쁘면 30대가 되어서도 기약 없는 인턴만 하다가 계약 만료 기한인 22개월이 다 돼 국회를 떠나야 한다.
인생을 걸고 도전하는 일인데 그 결과를 좌우하는 게 노력이나 실력이 아닌 운이라면, 유능한 이들은 그 분야에 진입하길 꺼릴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선 정치만한 분야도 없다. 정당에서 활약하고 보좌진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건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누구 눈에 띄었는지가 입신양명을 결정한다. 정작 지난 선거들만 보더라도 당에서 오래 활동한 청년들보다 외부에서 급조한 '청년 인재'들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는가.
기껏 인생을 바쳐 도전했는데 자력으로 성취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면 그 분야에 도전할 '진짜 인재'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체성·스토리 중심의 설익은 인재 영입으로 이슈를 만들어 보고자 했던 정치권의 인사는 유감스럽다. 번번이 낙하산이 내려오는 회사는 임직원들의 의욕을 북돋을 수 없다. 노력과 능력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정당의 빈약한 인사 시스템,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청년 인재 영입 때문에 청년들은 실력을 키우기보다는 "줄을 잘 서야겠다"는 나쁜 교훈만 얻게 된다.
의원 한두 명보다 정치권 전반에 청년 많아져야
청년 표심을 잡기 위해 청년을 내세우겠다는 정치권의 전략은 일차원적이다. 청년들은 자신들을 대변해 줄 정치인을 찾고 있을 뿐, 정체성이 같다는 이유로 청년 정치인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과거 이력도 불분명하고 능력도 미덥지 않은 인물을 내세우면 "저 사람이 뭔데 우리를 대표하느냐"는 반감만 사게 된다.
지금보다 청년 국회의원 수가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제20대 국회에서 3명에 불과하던 2030 국회의원이 4년 뒤 13명으로 증가했지만 21대 국회가 그만큼 청년들의 지지를 받고 청년들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썼다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막말이나 코인 논란 등으로 각종 구설에 오르기만 했을 뿐이다. 현재 각 당 지도부에서 활동하는 청년 정치인들이 보편적인 청년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뽑아놨는데 진영의 스피커 노릇만 하고 있다면 그 숫자가 얼마든 청년들의 지지를 받긴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정치 전반에서 활약하는 청년들이 많아질 필요는 있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요구를 보다 효과적으로 반영하기 위해서다. 개인이 맞닥뜨리는 문제나 사안의 우선순위는 세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2030의 생활상을 잘 모르는 세대가 만드는 2030 세대 정책은 필연적으로 정책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를 가져온다.
예컨대 취업준비생이나 인턴에 대한 노동 착취는 2000년대에도 만연했던 일이지만 2010년대 중반 열정페이·헬조선 등의 용어가 대두되고서야 정치권에서 다뤄지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는 트위치(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가 한국 시장 철수를 발표하며 망 사용료가 청년들 사이에서 큰 논쟁거리로 부상했는데, 정치권에서 아무 대응이 없자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불만이 표출되기도 했다.
세대 간 엇갈리는 이해관계를 현명하게 조정하기 위해서도 청년의 대표자들은 필요하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갈등이 조정되는 과정에서는 특정 집단, 일부 연령대의 입장이 과다 대표되었던 게 사실이다. 지지부진한 연금 개혁이나 지역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지연되곤 했던 청년임대주택이 대표적 사례다. 최근 발표된 철도 지하화 공약처럼 수십조 원이 소요될 정책들을 정당들은 여야를 불문하고 아무 거리낌 없이 내놓고 있는데, 논의 과정에서 정작 그 청구서를 받아 들 미래 유권자를 대변할 사람이 없다는 건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청년의 대표자들을 어떻게 뽑아야 할까? 정체성과 화제성에 집착해 청년 당사자들도 공감하지 못하는 인물을 영입하고 내세우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40%를 넘나드는 2030 무당층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다. 경험·능력·인성을 두루 갖춘 청년 정치인을 등용할 때 비로소 청년들도 그 권위를 인정할 것이다. 그런 인물이 등장하려면 우선 유능한 인재들이 많이 유입될 만한 환경을 조성하는 게 급선무다. 특히 정치 참여에 따르는 진로 선택의 기회비용을 줄여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정치권에서 일하면서 생계를 영위하고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