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는 손도 못 대면서 생선은 괜찮다고?

노르웨이 고등어 앞에서 쩔쩔매다가 눈치챈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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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uyunish)등록 2024.02.20 14:10
노르웨이에서 온 등푸른 고등어의 눈과 한국에 사는 내 눈이 마주쳤다. 드넓은 바다에서 덜컥 잡히자마자 어리둥절한 틈을 타 순식간에 냉동된 상태로 수천 km를 날아온 뒤 우리집 도마 위에서 만난 순간. 호랑이나 얼룩말 사진에서 봤던 세로 줄무늬가 방금 붓으로 칠한 듯 짙은 남색으로 또렷했다. 깨지기 직전 유리 조각같은 위태롭고 동그란 눈을 차마 감지 못한 채 고등어는 조용히 멈춰 있었다.

맞은편에서 나도 숨 죽인 채 정지했다. 물고기 등에 그려진 줄무늬가 너무 생생해서, 은빛 몸통이 부드럽게 반짝거려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잠에서 깨어나 펄떡거리며 내 가슴팍으로 튀어 오를 것만 같아서. 나의 식욕과 생존을 위해 고등어의 머리와 꼬리와 지느러미를 손질해야 하는 원시적인 상황 앞에서 절대적으로 무력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맨 손으로는 몸통 근처에도 닿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허공에서만 허우적대는 손이 얼마나 얄미운지.
  

등의 선명한 줄무늬가 더 매섭게 느껴진다 ⓒ freepik


양 손바닥을 짝, 박수 치듯 부딪히며 모기를 잡아본 적이 살면서 단 한 번도 없다면 조금 유난스러워 보이려나. 피를 훔치려 달려드는 모기는 손부채질로 싱겁게 석방시킬 뿐. 팔에 납작 들러붙어 죽은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주먹 꽉 쥐어 몸의 떨림을 흘려보내야 했다. 그 흔하고 작은 개미도 어떻게든 밟지 않으려 땅만 내려다봤던 내 지난날. 전생에 불심 가득한 스님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생물과 접촉하는 순간 어지럽게 떠오르는 이미지와 감각들을 피하려 열심히 도망 다니다, 내 몫의 요리를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성인이 되어버렸다. 여러 동식물을 손으로 감각해 통제하고, '먹기 좋게' 형체를 바꾸는 일을 직접 해야 한다는 뜻이다.

소와 돼지는 괜찮았다. 우리는 본래 모습을 알 수 없는 낯선 덩어리로 마주했다. 닭도 부위별로 손질된 것만 구매했다. 새우는 머리 없는 냉동 칵테일 새우로. 가리비는 껍데기 위 하얗게 마른 자국들이 소름끼쳐 세척하지 못하고 그대로 찜기에 넣어버리곤 했다.

그리고 이것은 특별할 것 없는 고등어다. 외국에서 건너와 좀 더 우락부락하게 생겼을 뿐, 젓가락으로 꼼꼼히 가시를 발라가며 바삭한 껍질째 반찬으로 즐기던 고등어. 엄마가 늘 덤덤하게 했던 것처럼 손으로 고등어를 덥석 잡고 물에 헹궈야 하는데 도무지 팔이 움직이지 않는다. 죽은 생선과 인간의 무의미한 대결 구도에서 백기를 흔들고만 싶어진다. 아, 도망갈 구멍이 없다.

서랍 구석에서 커다랗고 튼튼한 스텐 집게를 꺼내온다. 고등어 머리에는 키친타월을 곱게 접어 덮어둔다. 양 손으로 집게를 벌린 뒤 조심스레 몸통에 끼워 잡아 올리자 뭉클, 묵직한 무게감이 전해진다. 힘이 빠져 놓치기 전에 서둘러 흐르는 물에 고등어를 씻고 이번엔 가위를 잡는다.

머리와 아가미 사이에 비장하게 갖다 댄다. 하얀 키친타월만 노려보며 자꾸만 떠오르는 고등어의 모습을 지우려 애쓴다. 날이 무뎌졌는지 엄지손가락이 아프도록 손잡이에 힘을 주자, 몇 초 뒤 가위 끝에서 가벼운 해방이 느껴진다. 툭, 싱크대로 떨어진 고등어 머리는 무심하게 나를 쳐다본다.
 

맛있게만 보이는 고등어 ⓒ freepik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한다. 머리와 꼬리와 지느러미를 잘라내 직사각형으로 만들자마자, 아까의 두려움과 팽팽한 긴장감은 온데간데없다. 네모난 덩이는 한번 더 헹구고 곧바로 에어프라이어로 들어가 180도에 15분 익혀진다. 담담한 엄마의 표정으로 생선 대가리를 집게로 들어 비닐봉지에 담아 치운다. 15분이 끝난 알람이 울리고 화장터 문을 열듯 기계를 열어 뜨거워진 살을 꺼내 접시에 얹는다.

"와, 잘 구워졌다!" 젓가락으로,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가시를 발라가며 고등어를 먹는 저녁. 오늘은 오메가-3가 풍부해서 정말 건강한 식사라며, 역시 손질된 냉동 고등어보다 훨씬 부드럽고 기름기가 풍부하다며 즐겁게 대화를 나눈다. 어느새 접시 위에는 빨대 정도 굵기의 노르스름한 뼈만 덩그러니 남아 손으로 쓱쓱 모아 종량제 봉투에 버린다. 생선 비린내를 날리려 창문을 열자 치열했던 사투의 기억도 함께 날아간다.

내가 만질 수 있는 고등어와 그렇지 못한 고등어. 어떤 부분을 잘라내야만 만질 수 있다면, 힘을 더해 형태를 바꿔야만 만질 수 있다면, 고유한 이야기를 지워내야만 만질 수 있다면. 그것은 여전히 본질에 닿는다고 할 수 있을까. 고등어를 바라볼 때의 태도와 다듬어진 생선을 볼 때의 마음이 이렇게나 다를 수 있을까.

노릇노릇한 삼겹살을 파채 위에 올리면서 지저분한 우리 속 돼지를 떠올리지 않고, 소고기 마블링에 감탄하면서 도살장에 끌려가는 거대한 소를 생각하지 못한다. 치킨을 뜯으며 빼곡한 닭장 속 닭을 모른체하고, 생선 구이를 먹으려다 진짜 고등어를 보는 순간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모습이 초라하다. '동물'과 '고기'라는 단어 사이에는 깊고 거대한 강이 흘러 그 위로 휩쓸려간 목소리가 얼마나 많은지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나는 일부러 본질을 놓아버리는 사람이 된 것 같아 갑자기 서글퍼진다. 모기도 못 잡는 주제에 고기는 한 팩 사서 아무렇지 않게 칼로 자르고 다지고.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지만, 결국엔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은 채 가공된 것들 속에서 안도하며 손을 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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