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Rove Expo 2020에서 열린 '넷제로 뉴클리어 이니셔티브 지지 선언식'에서 강경성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이 넷제로 뉴클리어 이니셔티브 지지 연설을 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이들 국가의 핵발전 산업과 전력 소비 현황을 보면 그 속내를 알 수 있다. 원전에 이해관계가 있는 국가들이기 때문이다. 먼저 국가별 핵 발전량(산업)이다. IAEA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단 13개 국가가 전 세계 핵 발전량의 91%를 차지한다. 1위는 미국(31.5%), 2위는 중국(16.1%), 3위는 프랑스(11.5%), 4위는 러시아(8.6%)다. 한국이 6.8%로 5위를 차지했다.
다음으로 국가별 전력 구성에서 핵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소비)이다. 1위 프랑스(62.6%), 12위 스웨덴(29.4%)을 포함해 유럽 국가들이 상위 15위 중 14곳을 차지한다. 유일한 비유럽 국가는 11위 한국(전체의 30.4%)이다. 미국(18.2%, 16위), 영국(14.2%, 18위), 아랍에미리트(12.4%, 20위)도 소비 전력의 상당량을 핵발전에 의존하고 있다.
에너지연구소(EI)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 전력 생산량에서 핵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9.18%로, 전체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반면 재생에너지는 전체의 29.55%를 차지한다. 2000년대 이래 핵발전은 내리막길을, 재생에너지는 오르막길을 걷고 있다. 전 세계 수백 개 국가 중 원전에 이해관계가 있는 국가는 한 줌이며, 이들이 기후위기를 핑계로 '원전 르네상스'를 노리고 있다.
이들 국가는 기후위기에 대한 역사적 책임이 가장 큰 국가이기도 하다. 작년 11월 영국의 기후단체 카본브리프는 영국·네덜란드·프랑스 등 과거 제국주의 열강의 온실가스 누적 배출량에 이들이 과거 지배했던 식민지에서의 배출량을 고려한 수치를 발표했다. 기후정의 관점을 보다 엄격히 적용한 것이다.
한때 대영제국의 일부였던 46개국(인도, 미얀마, 나이지리아 등)의 배출량을 고려하면 영국의 누적 배출량은 2배 증가하고,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배한 네덜란드는 3배, 베트남 등 인도차이나를 식민지배한 프랑스는 배출량이 1.5배 증가했다. 결과적으로 국가별 온실가스 누적 배출량 순위는 1위 미국(530기가톤), 2위 중국(308기가톤), 3위 러시아(239기가톤), 4위 영국(130기가톤) 순이었고, 1인당 누적 배출량으로 환산하면 네덜란드가 1위(2014톤), 영국이 2위를 차지했다(1922톤).
핵발전, 기후위기·에너지위기 대안 될 수 없다
이들 국가는 기후위기 대응 가속화 필요성과 더불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수급 위기로 인해 핵발전에 다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프랑스와 영국, 스웨덴은 최근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발표했다. 프랑스와 스웨덴은 기존의 원전 감축 방향을 뒤집은 것이다. 1986년 소련(현재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1990년 세계 최초로 탈원전을 실행한 이탈리아조차 원전 재개를 논의하고 있다. 스웨덴과 이탈리아에서는 극우 정부의 집권이 탈원전 폐기 도화선이 됐다.
사실관계만 본다면, 핵발전은 기후위기와 에너지 수급 위기의 대응 수단이 될 수 없음이 명백하다. 먼저 탄소배출 감축 잠재력이다. 2023년 3월 발간된 기후변화 정부 간 협의체(IPCC) 6차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까지 '지구온도 1.5℃ 상승 억제'를 달성하기 위한 에너지 공급 부문에서의 수단별 잠재력은 태양열 > 풍력 > 화석연료에서 메탄 감축 > 바이오 전력 > 지열 및 수력 > 핵발전 > 화석연료 탄소 포집 및 저장(CCS) 순이다.
한국 정부가 집중하는 양대 정책인 핵발전과 탄소 포집·저장은 효과가 가장 낮은 기술이라는 의미다. 기술의 전 주기 순 비용을 고려하면, 태양열이나 풍력에 비해 핵발전과 탄소 포집·저장은 감축량 대비 비용 역시 비쌌다. 효과는 물론 효율성도 떨어진다는 의미다.
다음으로 에너지 자급 가능성이다. 핵발전 연료는 농축 우라늄이다. 전 세계 농축 우라늄 생산의 40%를 러시아가 담당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은 러시아산 석탄·석유·가스 수입을 전면 금지하면서도, 러시아산 우라늄 수입은 금지하지 못했다. 핵발전을 위한 농축 우라늄의 23%를 러시아로부터 조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러시아산 비중이 더욱 높아 33%를 차지한다.
수요는 증가하고 공급은 달리면서 세계 우라늄 가격 역시 두 배 이상 급등했고 1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핵발전은 화석연료와 마찬가지로 공급망 위기에 취약하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선에 있는 유럽 최대규모 자포리자 원전이 처한 위험천만한 상황을 보더라도 핵발전을 통한 '에너지 안보 강화' 주장은 설득력이 전혀 없다. 전쟁 직후부터 러시아군 점령하에 있는 자포리자 원전은 그간 양측 교전 과정에서 8차례나 외부 전력 공급이 중단됐다. 냉각 펌프에 전력이 공급되지 못하면 노심용융으로 방사성 물질이 대량 누출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원전 포격의 책임을 서로에게 돌리고 있다. 핵발전은 자연재해는 물론 무력 충돌 위험에도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