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가 2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위안부를 매춘이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유성호
지난해 10월 26일 대법원이 <제국의 위안부> 저자인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를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다며 서울고등법원으로 사건을 환송한 데 이어, 지난 24일에는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4단독(재판장 정금영)이 '위안부는 매춘부' 발언을 한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를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2019년 9월 21일 <프레시안>에 공개된 연세대 사회학과 '발전사회학' 강의 녹취록에 따르면, 그달 19일 강의 때 류석춘 당시 교수는 "그 사람들이 살기 어려워 매춘하러 간 거다", "지금도 매춘 들어가는 과정이 딱 그렇다"라며 "궁금하면 한번 해볼래요?"라고 발언했다.
그는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등이 공저한 <반일종족주의>의 주요 내용 중 하나를 "위안부, 전부 거짓말이라는 거다"로 정리한 뒤, 일제 식민지배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을 비판했다. 그는 "온갖 거짓말이 만들어지고 퍼진다"라고 한 뒤 "실제 있지도 않은 일을 사실로 믿고 일본을 미워한다"고 주장했다. 이영훈 교수의 입을 빌려 위안부들의 증언을 거짓으로 규정한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법은 "피고인의 발언은 피해자 개개인을 향한 발언이라고 보기 어렵고,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전체를 향한 추상적 표현"이라면서 "검사 제출 증거만으로는 해당 발언이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류 전 교수의 주장이 위안부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사실관계를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2019년 강의 당시 류 교수는 정의기억연대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기획'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위안부 피해자 수십 명의 증언이 있었는데도 그런 증언들을 거짓으로 규정한 채 이영훈 교수의 주장을 믿느냐는 수강생의 질문에 대해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이른바 정대협이 끼어들어 와서 할머니들 모아다 교육하는 거다. 정대협 없었으면 그분들 흩어져서 각자 삶을 살았을 거다. 과거 삶을 떠벌리지 않았을 거다. 지금은 일종의 떠벌리는 거다. 텔레비전 나와서 떠들고 있잖아요. 일제가 끝난 직후에는 쥐 죽은 듯이 돌아와서 살던 분들이다. 그런데 정대협이 끼어서 '국가적으로 너희가 피해자'라고 해서 서로의 기억을 새로 포맷했다."
서울서부지법은 정대협을 비판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하고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이렇게 일부 무죄, 일부 유죄를 선고하면서 재판부는 "헌법이 대학에서의 학문의 자유와 교수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을 볼 때, 교수에 대한 제한은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역사를 부정하고 피해자들에게 깊은 상처
길거리에서 확성기를 들고 '위안부는 사기라며 혐한 시위하는 일본 극우세력의 목적이 학문 추구에 있지 않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피해 배상과 역사 청산을 훼방하고 일본 국민들의 의식을 옥죄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일본 극우를 움직이고 있다. 한국의 어느 재판부도 일본 극우가 정치적 목적으로 그런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류석춘 전 교수는 이영훈 전 교수나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교수 등과 더불어 일본 극우와 보조를 맞추고 있다. 이들의 연대가 순수한 학문적 목적을 위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이들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류 전 교수의 발언이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는 헌법 제22조 제1항의 보호를 받는 것은 보편적 상식에 비추 쉽게 이해되기 힘들다.
24일 정의기억연대는 입장문에서 학문의 자유와 관련해 "대학 교수는 역사적 진실을 추구하고 올바른 역사관을 지닌 미래세대를 길러야 할 엄중한 사회적 책임을 지고 있다"며 "그럼에도 류석춘 교수는 일본 우익의 전형적 표현과 유사한 발언으로 역사를 부정하고 피해자들에게 깊은 상처를 입혔다"고 비판했다.
류 전 교수의 주장이 학술적 발언으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그것이 일본 극우의 정치 활동과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유에도 기인한다. 위안부는 자발적인 매춘부였다는 그의 주장은 일본 극우의 주장을 모방한 것이다. 더 나아가, 과거의 일본제국과 일본군 가해자들의 주장을 본뜬 것이다.
태평양전쟁 당시의 일본군 위생병이었던 마쓰모토 마사요시가 위안부 강제동원의 실상을 증언하고 아베 신조 당시 총리의 사과를 촉구했다는 보도가 2013년에 있었다. 이런 전직 일본 군인도 있지만, 훨씬 많은 수의 전직 일본 군인들은 위안부들이 자발적이었다는 거짓 주장을 펴면서 가해 사실을 합리화하고 위안부 피해를 부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