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닐, <하틀리, 리처드와 함께 있는 앨리스 닐>1941~1943년, 종이에 흑연과 잉크, 앨리스 닐 재단
앨리스 닐
일본의 정신과 의사 오카다 다카시는 책 <나는 왜 형제가 불편할까?>에서 이렇게 설명한
다. "부모는 자기 손으로 직접 보살피며 아낌없이 사랑을 쏟아온 아이를 더욱 사랑스럽게 여기는 반면, 직접 보살필 기회가 별로 없었던 아이에게는 제대로 보살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죄책감은 있을지언정 사랑스럽다는 마음이 생기기는 어렵다."
즉 머리로는 좀 더 신경 써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이를 무심코 방치하는 일이 벌어지기 쉬우며, 그에 따라 마음은 더욱더 멀어지고 애정을 요구하는 아이들이 점점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아이가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 더더욱 그렇다. 결국 어린 시절 부모와 관계가 긴밀하지 못했던 아이는, 안타깝게도 잘못한 것 없이 억울하게 미움받는 '나쁜 아이'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앨리스 닐과 이사베타의 이 만남은 필연적으로 좋지 않게 마무리될 수밖에 없었다.
이사베타는 이후 미국으로 이주해 부동산 중개인으로 일했지만, 한 번도 엄마에게 연락하지 못했다. 닐도 딸이 어디에 있는지 묻지 않았다. 다만 이사베타는 1978년 닐의 강연회에 찾아간 적은 있었다. 하지만 이 시도도 비극으로 끝났다.
맨 앞줄에 앉아 엄마의 강연도 듣고, 강연 후 열린 리셉션에도 참석했지만 닐은 끝까지 딸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이사베타는 너무 속상한 나머지 자기가 딸이라는 말도 끝끝내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고, 4년 후 우울증으로 자살한다.
어쩌면 앨리스 닐은 이렇게 변명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땐 나도 엄마가 처음이어서 미숙했어" 실제로는 이사베타보다 먼저 태어난 딸이 있었지만, 첫돌도 되기 전에 죽었기에 사실상 이사베타가 닐의 첫아이였다.
그러나 이사베타는 이 말에 이렇게 대꾸할 것 같다. "엄마, 자식도 경력직이 아니야" 언제부터인가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야"라는 말이 변명처럼 쓰이는 경우가 많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었으니까'라는 말은 자식이 엄마를 위로하며 해야 하는 말이지, 엄마 스스로가 하는 건 솔직히 민망한 일이다.
각각 다른 방식으로 사랑해야
'이만하면 충분히 좋은 엄마(Good enough mother)'도 마찬가지다. 소아과 의사이자 정신과 의사 도널드 위니코트가 한 말인데, 정신과 의사 김건종에 따르면 사실 이 번역보다 '크게 나쁘지 않은 엄마'가 위니코트의 의도에 조금더 가깝다고 한다. 번역 과정에서 오해를 불러일으킨 말인 셈이다.
'크게 나쁘지 않은 엄마', '크게 나쁘지 않은 아빠'라는 타이틀은 보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사실 그냥 얻기 어려운 과제다. 아이가 어릴 적, 나는 틈만 나면 "엄마는 내가 좋아 언니가 좋아?"라는 질문을 받곤 했다. 이때 "너희 둘 다 좋아해"라고 하면, 아이들은 그 말에 절대 만족하지 못했다. 그다음부터는 아예 "엄마는 너희 둘 다 싫어해"라고 대답했다. 왁자하게 웃으며 넘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부모와 특별히 '케미'가 잘 맞는 아이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과 의심을 마음 한구석에 갖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같은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 부모는 매 순간 아이들을 '각각 다른 방식으로 사랑'할 수 있도록 치열하게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각자 지니고 있는 예민한 저울은 어느 순간 필요 없게 되지 않을까. 미세하게 균형을 잃은 사랑마저도 기어코 감지해내는 이 저울이 저절로 녹스는 상황을 만드는 것, 어쩌면 그것이 부모가 해내야 하는 필생의 사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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