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팀 방문'귀한 농부' 농장을 찾은 카페 회원들과 방송국 촬영팀이 만나 함께 어울리고 있다. 맨 오른쪽이 방송인 최주봉씨.
윤순자
가톨릭농민회와 야마기시 공동체 생활을 통해 농촌 현장과 유기농법을 체험한 윤순자 대표는 또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야마기시 공동체를 나온 후에는 명동성당에서 직원으로 근무하게 됐어요. 강우일 주교님이 주임신부로 계셨던 우리농촌 살리기 운동본부에서 조직과 교육을 담당했습니다. 그 후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로 가 에미서리(Emissaries) 영성 공동체로 들어갔지요. 에너지를 조율하고 영성을 채우며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으로, 개인의 수련에 초점을 두는 공동체였어요. 여기서 한 1년 6개월을 살았지요."
야마기시 공동체에서 유기농의 기본을 익혔다면 에미서리에서는 생태 영성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체화한 셈이다. 이러한 경험이 오늘날 '귀한 농부'의 길을 걷게 한 준비과정이었을까. 윤 대표는 미국에서 귀국 후 전혀 예상치 못한 일로 제주도로 와서 농부가 된다.
"에미서리 공동체에 있을 때인데, 비자가 잘못돼 체류 연장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돌아와야 했는데 마침 대학 때 지도교수님이 은퇴하시고 제주에 와 계셨어요. 그분이 집도 넓고 하니까 와서 있으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가방 2개만 달랑 들고 아이 둘을 데리고 제주로 오게 됐어요.
2003년 제주에 왔을 때 막 유기농이 태동하고 있었어요. 제주 유기농의 원조 격인 이영민 선생께서 유용한 미생물을 이용한 EM 농법을 시작하셨고, 친환경 농산물이 제도적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지요. 제주에 와서 처음엔 농사지을 생각이 없었죠. 땅도 없었고 아무런 인프라가 없었으니까요. 야마기시 공동체에서 나온 이래 한 5년 정도는 농사도 짓지 않았고요.
당시 아는 선배가 제주에서 유기농 영농조합법인을 하나 꾸렸는데, 저보고 사무국장을 맡아달라는 겁니다. 제가 우리농촌 살리기 운동본부 일을 하면서 유기농산물과 식자재 다루는 일을 했으니까요. 이렇게 영농조합 일을 밤낮없이 하다 보니까 언제부터인가 저도 직접 농사를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서귀포에서 1만 평의 땅을 빌려 2004년부터 감귤 농사를 처음 시작하게 됐습니다."
제주도에서 본격적인 농부의 길을 걷게 된 윤순자 대표는 유기농이 아닌 농사는 경험이 없었고, 농약을 칠 줄도 몰랐으니 당연히 유기농을 택했다. 당시의 각오는 어땠을까.
"야마기시 공동체나 가톨릭농민회에서 어떤 농법이 하느님의 뜻으로 보아도 좋고, 또 사람에게도 좋은 것인지에 관해 공부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한마디로 요약하면 생명농법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사람과 땅과 작물이 함께 공생하는, 서로가 살려주는 농법이죠. 이런 원리를 하나의 이치로 배워왔기 때문에 제가 농사를 짓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제대로 한번 구현해보고 싶었던 것이지요."
이제 귀한 농부의 유기농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들어볼 차례다. 윤 대표는 유기농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무농약과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유기농은 물론 '무농약'도 포괄해서 '친환경'이라고 하는데, 농가에선 유기농보다는 무농약을 훨씬 많이 하고 있죠. 그런데 이게 농법이 완전히 다릅니다. 무농약은 농약을 안 칠 뿐이지 화학비료는 칠 수가 있죠. 이건 엄청난 차이입니다.
유기농은 농약을 쓰지 않는 것은 물론, 화학비료나 항생제가 들어간 동물성 퇴비를 쓸 수가 없어요. 소나 닭을 기르는 축사에서 나오는 부산물에는 어마어마한 항생제들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동물성 퇴비를 줘서 기른 농산물을 먹으면 우리 인체에도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 무농약은 농약만 안 칠 뿐 이런 동물성 비료나 화학비료를 쓰거든요."
"점점 무농약 많아지고 유기농 쪼그라들어 유통체계 왜곡"
윤 대표의 말을 들으면 '유기농'과 '무농약'은 모두 '친환경'으로 분류하므로 비슷해 보이지만, 매우 큰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무농약이 유기농보다 더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농법에 어떤 관련성이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초창기에는 무농약은 유기농으로 가기 위한 농법이었어요. 지향점이 유기농이었고, 무농약은 그리로 가기 위한 중간 과정이었을 뿐입니다. 유기농 인증을 받으려면 5년간 검증을 통과해야 합니다. 첫해에 농약을 안 쓰고, 화학비료를 3분의 1만 사용하면 무농약 인증이 나옵니다. 이후 3년을 무농약, 무화학비료로 하면 5년째에 유기농 인증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런데 14~15년 전부터 지자체들에서 친환경 무상급식 정책을 확대하면서 유기농 농산물이 모자라니까 무농약을 받아들인 것이에요. 이때부터 무농약도 친환경이라고 해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반면, 오히려 유기농을 아예 안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농산물을 사들여 학교에 넘기는 중간 유통업자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무농약 농산물을 공급하면 이윤이 더 크니까요. 또 유기농이 모양도 안 이쁘고 하니까 아이들도 꺼리는 경향이 있었고요.
외국에서는 오가닉(organic)이라고 하면 무농약은 해당하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무농약이 유기농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었으나 이게 변질해 그냥 유기농 따로 무농약 따로 장르가 설정돼 버린 겁니다. 일반 소비자들도 '친환경'이라고 하니까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어요. 마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처럼 점점 무농약은 많아지고 유기농은 쪼그라들어 유통체계가 왜곡돼 버린 것입니다."
윤순자 대표는 유기농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퇴비를 들고 있다. 화학비료나 동물성 비료를 대신해서 땅과 작물에 이로운 유기농 퇴비를 잘 만들어 뿌려주는 게 농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라는 것이다. 그가 실제로 활용하는 유기농 퇴비의 사례를 들어보자.
"제가 하는 유기농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한 방식으로 퇴비를 직접 만들어 쓴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청귤청을 담가서 청귤 엑기스를 먹는 것은 물론이고 이걸 작물에 액비로 주기도 합니다. 또 청귤 엑기스 외에 찌꺼기가 나오는데, 이걸로 퇴비를 만듭니다. 청귤청을 만들 때 유기농 설탕이 들어가므로 이 찌꺼기가 발효하는데 매우 용이합니다.
또 밭에서 나는 여러 가지 부산물들, 예를 들어 상품성이 떨어지는 호박이나 호박잎, 당근 등을 청귤 찌꺼기와 함께 퇴비 구덩이에 집어넣고, 토착 미생물을 배양해 함께 섞어주는 겁니다. EM을 섞어주기도 하고요. 이렇게 형편에 맞게 퇴비를 만들어 충분히 주면 농약 없이도 병해를 이겨낼 힘이 생깁니다.
바다에서 나오는 것들도 훌륭한 식물성 퇴비가 됩니다. 태풍이 지나간 뒤 바다에 가면 감태가 어마어마하게 몰려와 있어요. 이걸 말려서 가져다가 그대로 밭에 주거나, 가루로 만들어 찌꺼기를 모아 놓은 퇴비장에 뿌리기도 합니다. 감태뿐 아니라 미역 다시마 쌀겨 등도 모두 훌륭한 식물성 퇴비로 만들어 씁니다."
농사를 지으려면 비료도 중요하지만, 병충해를 방지하거나 구제하기 위해 농약을 많이 쓰고 있다. 윤 대표는 어떤 방법으로 병충해에 대비할까.
"저는 농사를 지을 때 약 치는 것을 배우지 못했어요. 그래서 좋은 방법이 있다면 시도를 해보고 하는데요. 경험 많은 어르신들이 어떤 게 효과가 있더라, 하면 그걸 따라 해봅니다. 예를 들어 자리공이라는 식물이 벌레 퇴치에 최고라는 말을 듣고는 들에 나가 자리공을 꺾어옵니다. 그리고는 이걸 분쇄해 끓이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써보고 하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이지요.
자리공도 그렇고 천남성 같은 식물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독성을 많이 품고 있어요. 이걸 잘 활용하면 일반 화학농약이 아닌 천연의 농약이 되는 셈이죠. 저희 농법은 있는 것을 없애자는 게 아니라 해충이 생겨도 견뎌낼 수 있게 하자는 게 기본입니다. 병충해가 발생했을 때 이겨낼 수 있도록 땅심을 굳게 해주자는 것이고, 그 핵심은 퇴비를 많이 주는 겁니다."
"농산물 팔려고 서울 왔다 갔다... 안타까운 항공사 최우수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