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로 썰렁한 중국의 한 쇼핑몰 내 식당가 모습
박현숙
영화를 보고 나와 늦은 저녁 겸 2023년 마지막 날 기념 만찬을 먹기로 했다. 훠궈를 만장일치로 결정하고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훠궈 식당 중 한 곳으로 갔다. 4명인 우리가족은 3~4인용 세트를 주문하고 모자라는 것은 더 주문하기로 했다. 16 종류의 고기와 야채, 2인분의 국수와 볶음밥 등으로 구성된 메뉴다. 메뉴판에 적힌 세트 메뉴 가격은 362위안(6만 원).
고등학생인 두 아이가 '육식파'라 소고기를 두 차례 추가로 더 주문하고 내가 좋아하는 연근과 두부도 나중에 더 추가했다. 훠궈용 소고기는 너무 비싸지 않은 보통 종류로 100그램당 35위안(6500원) 정도다. 우리는 세트 메뉴에 포함된 고기 외에도 따로 소고기 300그램 정도를 추가 주문해서 먹었다.
맥주와 음료수도 시켰다. 하이디라오에서 자체 개발한 500㎖ 라거 맥주 한 병 가격은 8위안(1500원). 그보다 좀 더 비싼 병맥주는 500㎖ 한 병이 13위안(2400원)이다. 매운 훠궈를 먹다 보면 차가운 맥주가 술술 들어간다. 이래저래 추가 주문한 메뉴들과 맥주 두 병, 사이다 두 캔 등을 다 먹고 난 뒤 나온 가격은 약 560위안 정도. 회원 할인가가 적용되어 최종 결제한 가격은 500위안이 채 안 된다.
우리 돈으로 10만 원 정도 돈으로 4인 가족이 배 부르게 훠궈 만찬을 즐겼다. 물론 어떤 재료를 시키느냐에 따라서 가격이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즐겨 먹는 훠궈 재료들이 대부분 포함된 것치고는 그다지 '사악한' 가격은 아니다.
거의 똑같이 구성된 훠궈 재료를 직접 장을 봐서 집에서 자주 해 먹기도 하는데 그때는 재료비가 식당 가격의 거의 3분의 1 수준이다. 집 근처 마트에서 질 좋은 훠궈용 소고기가 500그램 한 팩당 우리 돈으로 약 1만3000원 정도고 나머지 야채 종류는 버섯, 배추, 시금치, 두부 등 5~6가지를 산다고 해도 우리 돈으로 2만 원이 조금 넘는다. 2023년 이후 각종 식품과 돼지고기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장바구니 체감 물가는 팬데믹 이전보다 훨씬 가벼워졌다.
2023년 한 해 동안 우리 가족이 생활비로 지출한 내역만 봐도 예년보다 지출이 크게 늘어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조금씩 줄어든 부분도 있었다. 가장 눈에 띄게 나타난 변화는 엥겔지수의 증가다. 다시 말해, 전체 생활비 중 식비 등에 지출하는 비용이 가장 크고 문화생활에 지출하는 비용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입맛이 갑자기 고급스러워져 매일 스테이크에 비싼 와인을 마시기 때문에 엥겔지수가 증가한 것은 아니다. 입맛은 여전히 싸구려지만 가계소득이 전에 비해 줄어 들었고 이로 인해 과거에 비해 여행이나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기는 걸 자제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2023년 중국에서 가장 유행한 여행방식은 '도시 산책'이나 '특공대식 여행' 같은 것이다.
팬데믹과 미중관계 악화 등 여러 악재로 인해 부동산과 금융 등 각종 산업이 연쇄적으로 침체에 빠지고 일자리와 임금이 줄어들면서 가계소득이 줄어들자 중국인들은 당장 여행방식부터 소박하게 바꿨다. 해외여행을 가는 대신 국내여행을 주로 하고 아침부터 밤까지 걷고 또 걷거나 이리저리 메뚜기처럼 분주하게 뛰듯이 둘러보는 '가난한' 여행 방식이 유행하고 있다. 우리 집도 갈수록 엥겔지수만 높아지는 추세다.
부동산경기 침체로 아파트 대폭 하락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