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슈퍼스타도시 순위, '도시는 왜 불평등한가? (처드 플로리다, 매일경제신문사)' p46 인용
이주원
대한민국은 전시 상황
전쟁이 일어나도 아이는 태어난다. 출산율이 낮을 뿐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3분기 기준 0.7명으로 떨어졌다. 출산율만 놓고 본다면 대한민국은 '전시(戰時) 상황'이다. 그러나 정치권과 정부는 이 심각성을 모르는 것 같다. 뻔하고 관성적인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답답하다.
관료들은 '~~ 정책' 같은 표현을 일상적으로 쓴다. 그러나 '~~ 정책'은 관료의 언어이다. 이제까지 경험에 비춰볼 때 '~~ 정책'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논의가 시작되는 순간, 절차적 합리성을 따져보겠다거나 선례를 고민하는 등 이전의 프로세스와 해결 방식을 벗어날 수가 없다. 관료의 언어로 추진된 정책의 결과가 합계출산율 0.7 명대다. 주거 정책만 보더라도 역대 정부 모두 그래왔다. 전형적인 '관료제'에 포위된 모습이었다. 정책의 실패였다.
전시 상황에서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야 한다. 관료의 언어가 아니라, 민생의 언어, 정치의 언어가 필요하다.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대대적인 수준의 변화가 절실하다. 이런 변화를 위한 국가 비전이 기본사회라고 본다. 기본사회는 국가가 시민들에게 '최소한의 삶'이 아니라 일정 수준 이상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하는 사회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기본소득)과 안락하고 편안한 수준의 주거(기본주거), 그리고 고소득·고액 자산가에게 유리한 금융구조의 개선(기본금융) 등을 이루는 나라가 기본사회 국가다.
기본주거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1개 정부 부처 수준의 정책으로는 어렵다. 관료의 언어로는 정부 부처 간의 벽을 넘지 못한다. 그래서 '정치의 언어'가 필요한 것이다. 정치인들이 '정치적 비전'으로 선언하고 시민들에게 동의를 구해야 하는 일이다. 그래야 부처 간의 벽을 넘어 전시 상황에 맞는 대책을 쏟아낼 수가 있다.
수도권, 특히 서울은 슈퍼스타 도시다. 일자리는 상대적으로 많지만, 생활비가 많이 드는 고비용 도시다. 일자리를 얻으려 서울로 이주하려는 노동자는 대개 낮은 임금의 일자리를 얻게 된다. 이들의 임금이 비(非) 슈퍼스타 도시의 노동자보다 더 높기는 하지만 비싼 생활비로 인해 더 고될 뿐이다. 특히 주거비가 이들의 삶을 옥죈다. 집값 상승은 이들을 도시 주변부로 밀어내서 과중한 교통비 부담이라는 짐을 지워준다.
고비용 도시에 사는 시민에게 비싼 주거 문제의 해결은 절실하다. 주거 문제는 주택·교육·교통‧의료 등 삶의 여러 문제와 맞닿아 있어 패러다임의 전환이 절실하다,
고비용 도시, 비용구조 결정권이 시장에 맡겨져 있는 탓
전시 상황의 대한민국호가 이 난제를 타개하려면 지나치게 고비용 구조인 시민의 삶터를 저비용 도시로 전환해야 한다. 우리의 도시는 '지나치게 고비용 구조'이고, 비용구조의 결정권이 시장(Market)에 맡겨져 있다. 특히, 주거의 고비용 문제가 크다. 시장이 주도하는 고비용 주거와 미흡한 일‧가정 양립 정책이 원인이 되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현실이다. 사람들은 주거 문제가 해결되고 '일·가정 양립'에 확신이 들 때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
집에 '거주'하기 위해 내는 비용 자체가 너무 비싸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주택을 매입하는 것은 평생 벌어야 할 노동소득을 다 쏟아부어야 하는 비용 수준이다. 전세와 월세 등 임차 비용도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최근에는 전세사기 문제가 터져서 안전한 임차를 위해 더 큰 비용을 내야 하는 상황까지 됐다. 주거 문제가 철저하게 '시장 논리' 위주로 구성된 탓이다.
교육과 교통 등은 직접적으로 '주거' 카테고리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사실상 주거 비용 상승을 유발하는 요소들이다. 이른바 좋은 학군으로 아이를 전학 보내거나, 대치동과 목동 등의 학원가로 보내기 위해 주변 주거비가 상승한다. 도시 중심지로부터 멀어질수록 부담해야 할 교통비는 커지고 출‧퇴근 시간은 길어진다. 교통 환경이 좋은 곳일수록 집값을 비싸지게 마련이다. GTX-A 등의 수도권광역급행철도에 목매는 이유나, 출‧퇴근 시간의 고역을 피하려고 김포시의 서울편입 같은 바람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