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생명안전공원 부지에서 열리는 예배에는 그 어떤 설교보다 귀하다는 세월호 가족들의 말씀 나눔 시간이 있다.
조선재
화랑유원지. 캠핑장과 미술관, 산책로가 있는 안산 시민들의 휴식처. 보수적 성향을 띤 단체는 이곳에 추모공원이 세워지는 것을 반대한다. 그들은 "화랑유원지는 안산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사랑받는 공원인데, 그곳에 영구히 국민들에게 슬픔과 추모를 강요하는 '납골당'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세월호 유가족을 비롯해 추모공간을 조성하고자 하는 이들은 4.16생명안전공원이 비석이 줄지어진 추모 시설이 아니라고 한다. 참사의 아픔은 눈물로 곱씹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날의 기억을 공유하고, 서로를 치유하고, 참사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을 더듬는 공간으로 지역사회에 녹아들 수 있도록 4.16생명안전공원을 디자인하려 애쓴 시간이 있다.
사람들이 한가로이 '기억의 숲'을 거닐며 산책하고 가족 단위로 소풍을 나오는 그런 공간, 10년 전 단원고 학생들과 그 가족들이 유원지였던 이곳에서 그러했듯이. 사람들은 아픔을 기억하는 것을 불편한 일이라 생각한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라는 말이 익숙하다. 그런데 산 사람은 앞으로 어떤 세상에서 살아야 하나. 추모와 애도는 이 질문을 하는 시간이다. 기도는 그 속에서 이뤄진다.
"10년 가까이 함께하시는 분들은 신앙의 유무와 상관없이 세월호참사를 내 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어요. 그 가족들에게 부채 의식을 느끼고요. 내 아이가 그렇게 될 수도 있었다. 빚을 갚아야 하는데 어떻게 갚겠어요? 가족들이 원하는 것이 목소리를 같이 내고 행동하는 거 아니겠어요?"
안산에 산다는 이유로 처음 세월호참사 분향소를 찾은 조선재가 추모공원 설립에 애를 태우는 이유다. 감정의 진폭은 달라졌어도 그가 움직이는 이유는 같다. 내 곁에서 일어난 일이다. 10년 전 봄, 이곳에 합동분향소가 세워질지 아무도 몰랐다. 참사는 불운한 일이지만 불운한 누군가에게만 닥치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누군들, 세월호 10주기가 다가오는 이 시점까지, 추모공원이 유원지 한가운데 허허벌판으로 존재할 줄 알았을까.
10주기의 중요성
자신이 피켓을 든 이유를 말하며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잖아요?" 라고 격양된 어조로 묻던 그였다. 조선재는 예배 때 만나는 이들을 세월호 유가족이라 부르지 않았다. 세월호 가족이라고 했다. 그것은 매달, 매주 가족들을 만나온 그와 그렇지 못한 나의 차이일 것이다.
"세월호 100일 세월호 1000일, 2000일, 3000일. 그때마다 문화제도 징글징글하게 많이 했어요. 많은 날을 보냈는데, 손에 쥔 게 없는 것 같은 저는 공대 출신이기 때문에, 인풋이 있으면 아웃풋이 나와야 하나 봐요. 생명안전공원이라는 아웃풋이 나오려고 하는 찰나인데, 9부 능선을 못 넘어가고 있는 기분이에요."
예배팀 활동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예배를 함께한 이 중 50명을 저자로 하여 그리스도와 세월호라는 주제로 책 <포기할 수 없는 약속>을 엮었다. 그 책을 이고 지고 전국으로 북토크를 다닌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세월호 침몰의 진실을 찾고 싶어 각종 위원회 보고서를 보며 자체 연구를 한다고 했다. "그러니 예배는 하나도 안 힘들어요." 매달 예배를 준비하는 노고를 칭하자 그가 한 말이다. 많은 것을 했으나 첫 삽을 뜨지 못한 공원처럼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에 초조해진다.
"10주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 번 세월호 문제가 조명받을 수 있는 시간이니까요."
10주기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한번 달려보겠다고 했다. 지쳤으나, 의지를 놓을 순 없다. 그러니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붙잡는다.
내 이웃의 안전지대
4.16생명안전공원. 명칭에 '안전'이라는 두 글자가 들어갔다. 이때의 안전은 단지 위험이 닥치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앞서 언급한 <포기할 수 없는 약속>에서 기도문 한 구절을 가져온다.
"이곳에 세워질 4.16생명안전공원은
… 시대의 약자들을 품으며 기꺼이 그들의 이웃이 되어줄 수 있는
샬롬의 안전지대가 되게 하시옵소서."
예배팀 이야기를 하던 그가 "세월호 가족들이 마음 편하게 웃을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게 기쁨이에요"라고 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를 말했다.
"안전한 공간이군요."
그는 크게 끄덕였다. 서로가 이웃이 되어줄 때 우리는 안전하다. '조만간' 세워질 4.16생명안전공원이지만, 오래전부터 그곳에는 서로를 이웃 삼아 안전지대를 만들어 온 사람들이 있었다. 세월호참사를 기억하는 공원을 세우려고 하는 것은 영구히 슬픔에 빠지고자 하는 일이 아니다. 서로의 이웃이 되어주자는 약속을 기억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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