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서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화염이 치솟고 있다. 이스라엘은 미국 등 국제사회의 휴전 압박에도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제거를 목표로 지상전을 이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중동의 화약고 팔레스타인이 결국 폭발했다. 이스라엘의 건국 이후 4차례의 중동전쟁에서도 올해 가자지구만큼 정규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없었다. 원인 제공이 하마스에 있음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패륜적 살상이 또 다른 불특정인을 향한 패륜으로 이어지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을 뿐이다.
더구나 피가 피를 부르는 순환적 복수의 원천적 원인 제공이 어디인지 찾는다면 이스라엘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하마스 세력을 키운 책임이 이스라엘에도 있다는 자성이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나온다. 20세기 팔레스타인 분쟁의 역사에서 평화와 공존의 길이 몇 차례 있었음에도 번번이 판을 깬 것은 이스라엘 극우집단이었다.
가자지구 전쟁은 평화가 얼마나 불안정하고 유약한 살얼음 위에 놓여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다. 10월 7일 하루 전까지도 중동은 데탕트의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앙숙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는 역사적 국교 정상화를 논하고 있었다. 이란-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도 정상화를 향해 순항하고 있었다. 중동의 문제아 시리아는 아랍연맹 복귀를 준비하고 있었다.
평화를 원한다면 양지를 봐서는 안 된다. '중동의 봄' 이면에는 누구의 관심에서도 동떨어져 있던 팔레스타인이라는 음지가 있었다. 이스라엘 정부가 온갖 불법을 저질러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탄압해도 국제사회는 중동의 봄 실현 가능성에만 주목했다. 그렇게 지구상에서 궤멸할 것이라는 공포에 떤 팔레스타인인들은 절망적 심정으로 하마스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그 대가로 저들은 지금 떼죽음을 당하고 있다.
과연 우리는 가자지구 학살을 보면서 정의를 말할 수 있을까. 응징의 화살은 앞뒤 좌우 없이 난사해도 되는 걸까. 국제사회가 정의와 평화를 원한다면 그 길은 응징과 보복에 있지 않을 것이다. 악의 근원적 원인을 찾지 못한다면 무력의 사용에 대한 철저한 관리가 현실적 평화 유지의 실현가능한 해법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포스트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에 살고 있다. 2023년은 그 시대의 절망적 단면을 보여준 한 해였다. 시간은 연속적이지만 1년을 분절할 줄 아는 지혜는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내년은 증오보다 이해, 착취보다 보존, 전쟁보다 화해가 한발 앞서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것이 다극화 시대의 어쩌면 유일한 생존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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