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희씨
히니
세월호참사에서 살아남은 단원고 학생은 75명이었다. 성희씨는 생존 학생들이 그들을 위한 공간에 삼삼오오 자주 올 거라 생각했다.
"저희가 처음에 아이들 상황을 잘 몰랐던 거에요. 어떤 아이는 반에서 혼자 생존한 경우도 있었거든요. 막연히 아이들끼리 친할 거로 생각했던 거죠. 그렇다고 뭘 묻기에도 조심스러웠어요. 이후에 3학년 때 몇몇 같은 반이 되고 하니까 몇 명씩 같이 오더라고요."
성희씨와 신나는 문화학교 상근자들은 예술 활동의 가능성을 믿었지만, 학생들에게 몇 번의 예술 프로그램을 제공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존 학생들이 참여하기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 만한 것들을 했다. 영화 보기나 게임, 떡볶이 만들어 먹기 같은 소소한 프로그램을 함께했다. 다행히 참여율은 생각보다 좋았고, 덕분에 '쉼표'라는 공간의 의미가 조금씩 채워졌다.
"앞에 바로 버스 정류장이 있고, 이 길을 주민들이 많이 지나다녀요. '쉼표'가 생존 학생들을 위한 곳이라는 걸 누구나 다 아는 상황에서 그 아이들이 여기까지 오는 게 쉽지는 않았을 거예요."
생존 학생들에게 언제든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에 만든 곳이 '쉼표'였다. 단지 편하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쉼표'를 개관했던 때는 세월호참사에서 1년 6개월가량이 지났을 때였다. 세월호를 둘러싼 논란이나 가짜뉴스가 계속 확대 재생산됐다. 이런 상황에서 '쉼표'를 찾는 게 부담이었을 생존 학생들이 그저 고마웠다.
세월호참사 이후 시간이 흐른 만큼 안산을 떠나거나 시간이 흘러 직장이나 대학 때문에 안산에 살지 않는 학생도 있다. 고등학교 때만 '쉼표'를 이용한 학생도, 지금까지도 오는 학생도 있고, 아주 가끔 '쉼표'를 찾아오는 학생도 있다.
"애들이 지금은 성인이잖아요. 그래서 저녁에 만나면 여기서 자기들끼리 술도 한 잔씩 하고 그래요. 저희가 퇴근해도 도어락 비밀번호도 애들이 아니까 자유롭게 다녀가죠."
생존 학생들이 성인이 된 후에는 '쉼표'의 낮이 비었다. 공간을 빈 채로 둘 수 없어 주민들에게 열어뒀다. 세월호참사 당시 내 일처럼 여기며 마음을 써주긴 했어도, 주민들에게 '쉼표'는 낯선 공간이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하자 주민들도 조금씩 경계를 풀었다. 생존 학생들의 공간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안산에 거주하는 모두와 공유하는 공간이 된 셈이다.
'안산 단원고 출신' 두려워하던 아이들
"(세월호참사 생존자) 아이들하고 친해지는 데 2~3년은 걸린 것 같아요.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아이들한테는 상처가 될 수도 있으니까 굉장히 조심스러웠어요.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느낌일 때도 있었죠. 매일 보는 사람이면 내일 사과하면 조금이나마 회복될 수도 있지만, 아이들은 내일 안 오면 관계가 끝나는 거잖아요."
성희씨는 생존 학생들이 겪은 고통이나 트라우마를 함께 이야기하는 건 고사하고 위로하는 것조차 가식처럼 느껴질까 봐, 말을 아낄 수밖에 없었던 때를 기억했다. 그래서 '쉼표'를 지키다가 학생들이 오면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눴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 쉬운 일처럼 보였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된 후에야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대학에 입학하면 자기소개를 하잖아요. 안산 단원고 출신이라고 하면 다 알잖아요. 그런 것 때문에 두려워하는 아이들도 있었어요. 그런 걸로 위축이 되니까 친구도 잘 못 사귀게 됐다고, 그래서 대학에 친구가 없었다고 그런 이야기를 나중에 하더라고요."
세월호참사가 발생한 지 곧 10년이다. '쉼표'가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고, 생존 학생들의 쉴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세월호와 물리적 시간이 점점 멀어질수록 아동과 청소년, 시민들의 기억에서 세월호가 점점 지워지고 있을까 고민됐다. 처음부터 생존 학생들만 쉼표를 이용했던 것은 아니었다. 초등학생부터 생존 학생들의 고등학교 후배들까지 다양한 연령의 학생들이 쉼표를 찾았다.
"한 해씩 지날 때마다 사람들의 기억이 흐려지는 게 느껴져요. 청소년들도 예전만큼은 잘 안 오고요. 그러니까 이 공간도 점점 잊히는 것 같아요. 생존 학생들이 이용할 시기에 그 아이들이 안전하고 편하게 이용했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에 홍보하지 않기도 했어요. 그래서 아쉬운 것도 있지만, '쉼표'를 찾는 아이들에게 편안함을 주려면 어쩔 수 없었죠."
'쉼'이 없는 '쉼표'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