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입장 발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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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하다시피 정당은 근대 민주주의 체제에서 직접민주주의의 대용물이다. 직접민주주의를 전면적으로 적용한 체제를 운용할 수 없기 때문에 정당이라는 대용물을 만들어 민주주의 체제의 지속 가능성과 건강성을 유지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정당의 기능을 점점 더 줄이고, 정당조직을 형해화하는 방식으로 개혁을 추동해 간다면 이는 오히려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정당을 우회하거나 정당을 없앤다고 유권자들의 직접민주주의적 요구가 수용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는 그 반대의 가능성이 높아질 뿐이다. 팬덤정치가 더 심화되기 때문이다.
정당 내외를 막론하고 '팬덤 리더'와 '지지자' 간의 직접적 관계만 남게 된다면 숙의와 교정, 건전한 공론장의 긴 호흡은 점점 사라지고 포퓰리즘이 융성하는 환경으로 변해갈 수밖에 없다. 정당이 아니라 판을 뒤집을 수 있는 새로운 지도자에 대한 열망은 팬덤정치를 더 가속화시킨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서 평균적인 일반 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충분히 확장되거나 제도화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정치 참여는 그야말로 특정 정치인들에 대한 지지 열정으로 똘똘 뭉친 정치 팬덤층들로만 국한돼 버린다.
당연히 팬덤정치는 이분법적인 특성을 갖는다. 특정인에 대한 지지 여부는 양자 택일과도 같은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의 선택지만 있을 뿐이다. 더 큰 문제는 두 집단 즉, 특정인을 지지하는 집단과 반대하는 집단 사이에는 대화를 통한 의견 교환이 어렵다는 사실이다. 팬덤정치 하에서 정치는 적군과 아군의 물러설 수 없는 대결, 상대를 섬멸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전투 행위가 되고 만다. 불행하게도 이미 이러한 프레임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 한국 사회가 팬덤정치의 한가운데로 빠져 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국민의힘이 보여준 모습도 팬덤정치의 틀 안에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인요한 혁신위원회가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한 일은 정당의 구조적 혁신과는 관계없는 물갈이 요구가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인적 쇄신에 대한 요구는 결국 당대표 사퇴와 한동훈 비대위의 출범으로 귀결되었다. 아무런 제도적 변화 없이 한동훈이라는 인물을 불러내어 새로운 팬덤층을 형성하고, 그 팬덤을 동력으로 총선을 돌파하려는 것이다.
이제 내년 총선은 팬덤정치의 재대결 양상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팬덤정치에 거리를 두는 일반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비호감 대선'에 이은 '비호감 총선'이라는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팬덤정치는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앞에서도 살펴봤듯이 팬덤정치와 정당정치는 대척점에 서있는 것과 같기 때문에 팬덤정치에 대한 처방은 정당정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구조적 환경을 만드는 데서 찾을 수밖에 없다. 즉, 정당이 특정 정치인 지지를 위한 플랫폼의 역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정책 대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유의미한 정치조직'으로 기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당은 당원들로 하여금 정책적 관심을 환기시키고 정책 중심의 논의가 활발해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특정 정치 지도자가 주도하는 이슈 중심의 논의가 아니라 당원들이 공감하는 실생활 중심의 정책적 관심이 자연스럽게 정당활동으로 이어지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는 팬덤 활동의 유인을 줄이고, 당의 정책 활동에 대한 참여와 관여를 강화해 나가기 위함이다.
당원들이 특정한 정책 분야에 대해 스스로 대안을 만들어 가면서 여러 각도에서 분석하고 새로운 시도들을 해나간다면 정당은 팬덤들로만 국한된 제한적 공간이 아니라 좀 더 다원적인 정책 논의가 가능한 공간으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정책 중심 정당이 해결 출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