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 있는 미쓰비시중공업. 2019.7.23
연합뉴스
세계 철강시장을 주도하며 미국 산업화의 상징으로 꼽혀온 기업이 US스틸이다. 1901년 설립된 이 회사를 인수했다고 이달 19일에 발표한 기업이 니폰스틸이라는 영문명을 갖고 있는 일본제철이다. 일본제철은 자사가 141억 달러(약 18조 3천억 원)에 US스틸을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니폰스틸이 US스틸을 흡수할 정도로 성장한 원동력은 공짜 노동력을 대규모로 활용한 기간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인 등의 강제노역에 힘입어 탄탄한 재정적 기반을 확보하고 지금도 계속 승승장구하는 이 기업이 여태까지 체불임금조차 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위 판결에 언급된 또 다른 강제노역장인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는 양금덕 할머니가 강제연행된 곳이다. 이곳의 노역 환경이 어땠는지를 2013년 11월 1일 선고된 광주지방법원 판결문(사건번호: 2012가합10852)에서 확인할 수 있다.
원고가 5명인 이 소송의 판결문은 "원고 등은 작업을 하는 도중에 곁을 보거나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고, 화장실에 갈 때도 허가를 받아야 했고, 일본인 반장으로부터 폭행을 당하기도 하였다"라며 "원고 등은 원고 김○○가 작업 도중 절단기에 왼쪽 집게손가락이 잘리는 상해를 입는 등 작업 도중 다치기도 하였는데,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였다"고 적시한다.
작업 도중 고개도 돌리지 못하게 했다는 것은 미쓰비시가 한국인들을 기계처럼 다루었음을 의미한다. 기계처럼 다뤘으니 치료도 제대로 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제철과 미쓰비시는 살인적인 노동 착취와 비인간적인 대우에 더해 임금 체불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피해자들을 모른 척하며 사과·배상을 거부해 왔다. 이들에 대한 손해배상명령이 2018년에 이어 이달 21일에 또다시 대법원에서 나왔다. 일본의 사과·배상을 촉구하는 피해자들의 외침이 이처럼 오랫동안 강력한 울림을 내고 있는 것은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일이다.
일본 극우세력은 지나간 일을 왜 자꾸 들추냐며 한국을 나무라지만, 이 일이 지나간 일이 되지 못하게 막는 쪽은 전범기업과 일본 정부다. 사과만 제대로 했다면, 이런 상황까지는 초래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법원판결의 의의
이번 대법원판결은 피해자들의 의지와 일본의 전쟁범죄 책임을 다시금 상기시켜 줬다는 점 외에, 그간 논란이 됐던 소멸시효 문제의 돌파구를 뚫어줬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대법원은 2012년 5월 24일 '피해자의 청구권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소멸되지 않았다'라면서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냈다. 그런 뒤, 하급심에서 대법원으로 재상고된 다음인 2018년 10월 30일의 대법원판결을 통해 한국 법원의 입장이 최종 확정됐다.
민법 제766조는 불법행위가 발생한 날로부터 10년 혹은 피해자 측이 손해 및 가해자를 알게 된 날로부터 3년이 지나면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피해자들이 일제 전범기업의 착취를 받은 일은 10년을 훨씬 넘었으므로, 피해자들은 10년 조항이 아닌 3년 조항에 따라 피해구제를 신청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피해자 측이 손해 및 가해자를 알게 되어 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된 시점이 언제인지를 두고 논란이 일어났다. 2012년 대법원판결을 그 시점으로 봐야 할지, 2018년 대법원판결을 그 시점으로 봐야 할지를 두고 혼선이 빚어졌다.
2018년 대법원판결 직후인 그해 12월의 광주고등법원 민사2부 판결은 2018년이 기산점이라는 전제에 입각했다. 판결이 최종 확정된 2018년 10월부터 피해자들이 배상을 청구할 수 있었으므로 이때부터 3년 기간을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 이 재판부의 입장이다.
금년 2월 14일에 나온 서울중앙지방법원 판결은 2012년 대법원판결 때부터 3년을 계산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전범기업인 니시마츠건설에 강제징용된 피해자가 2019년 4월 30일에 제기한 청구는 이 때문에 이 법원에서 기각됐다. 2012년 대법원판결로부터 3년 기한이 지났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대법원판결은 직접적으로 소멸시효를 언급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실상의 교통정리는 했다고 볼 수 있다.
보도에 따르면 대법원은 "피해자 또는 상속인들에게는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될 때까지는 피고를 상대로 객관적으로 권리를 사실상 행사할 수 없는 장애 사유가 있었다", "2012년 판결은 파기환송 취지의 판결로서 당사자들의 권리가 확정적으로 인정된 것이 아니었다"고 판시했다. 2018년 대법원판결로부터 3년 이내에 제기된 소송은 법적 구제를 받을 수 있다고 밝힌 것이다.
윤석열 정부에 책임 떠넘긴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