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탄 알 자베르 COP28 의장
AFP/연합뉴스
술탄 알 자베르 의장의 임명을 옹호한 이들은 그가 이 분야에서 오래 일한 전문가이고 인적 네트워크도 풍부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알 자베르 의장 본인 역시 "공공기관·정부는 물론 민간 부문까지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포괄적 논의를 진행하겠다"라며 민간 부문이 기후위기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데 있어 자신의 비즈니스 관계가 자산이 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문제는 그 스스로가 이해관계를 가진 장본인이라는 사실이다. 알 자베르 의장은 위키피디아 사용자를 고용해 자신과 회사 관련 정보에 '그린워싱'을 한 일에서부터, COP28 사무국이 이메일 서버를 자신의 석유회사와 공유함으로써 회사가 사무국 이메일을 읽을 수 있게 한 일에 이르기까지, 온갖 이해상충을 드러내며 내내 비판의 중심에 있었다.
기후총회를 열흘 앞둔 11월 21일에는 화석연료 퇴출을 통해 지구온도상승 1.5℃ (억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말에 대해 "과학적 근거가 없다"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전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기후변화 부정론'에 가깝다는 비판이 커지자 급히 기자회견을 열어 "과학을 존중한다"라며 화석연료 퇴출은 불가피하다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이렇듯 명백한 이해상충을 넘어, 좀 더 구조적 측면을 살펴볼 필요도 있다. 화석연료 퇴출과 같이 첨예한 의제일수록 이해관계를 중재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나, 기업의 협조가 필수적이니 민간 부문을 포함해 모든 이해관계자가 관련 논의와 의사결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은 국내 맥락에서도 새롭지 않다. 여기에는 '다중이해관계자주의'라는 함정이 있다.
기업의 협조가 필수적? '다중이해관계자주의'라는 함정
<다중이해관계자 거버넌스와 민주주의: 전 지구적 도전>의 저자, 초국경연구소(TNI) 해리스 글렉먼 박사는 '다중이해관계자주의(multistakeholderism)'를 이렇게 정의한다. "어떤 문제에 대해 잠재적 이해관계를 가진 전 지구 행위자들을 한데 모아 협력적으로 해결책을 마련하도록 요청하는, 새롭게 부상하는 글로벌 거버넌스 체계."
이는 2차 세계대전 후 확립된 국제 거버넌스 체계인 '다자주의(multilateralism)'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다자주의는 "정부가 시민을 대표하여 전 지구적 문제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리고, 국제기구가 이러한 결정을 이행하도록 지시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국제연합(UN)이라는 다자주의 거버넌스가 여러 이유로 힘을 잃고 약점을 드러내는 동안, 다중이해관계자주의 거버넌스가 대안으로 부상하며 점점 더 일반적 관행으로 자리 잡게 됐다.
다중이해관계자주의는 말 그대로 '이해관계자'를 중심에 둔다. 정부, 기업, 시민사회단체를 '동등한' 이해관계자로 간주하기 때문에, 정당성과 책무성의 차이, 권력 불균형은 고려하지 않는다. 예컨대 정부와 시민사회단체의 존재이유가 공익 추구라면, 기업의 목표는 해당 기업의 이윤추구일 뿐이라는 점에서 정당성과 책무성에 차이가 있다. 초국적 기업의 권력은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각국 정부보다도 강력하다.
기업의 권력과 의도를 무시한 채 단순히 '또 하나의 이해관계자'로 취급하는 논의와 의사결정은 결국 기업의 이윤추구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귀결된다. 자발적 조치를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규제를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표면상 공익을 지향하는 이러한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기업은 일정 수준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석유기업 CEO가 유엔기후총회 의장을 맡고, 화석연료 기업이 로비스트를 고용해 멀리 두바이까지 출장을 보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담배규제로부터 배우라" 전 세계 기후행동 활동가의 외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