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이화장에서 열린 이승만 전 대통령 탄생 148주년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승만은 1925년까지 임시대통령이었는데도 1940년대 초반의 청년 지식인들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는 그간의 독립운동에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일제 패망을 전후한 시점에 그는 크게 부각됐다. 여기에는 '미국의 소리' 역할이 컸다.
<조선일보> 기자인 역사저술가 이한우의 책 <대한민국을 세운 독립운동가 이승만>은 이승만이 1942년부터 대일 선전전을 위한 미국 단파방송에 투입된 일을 설명하면서 "문제는 이 단파방송이 의외로 국내 독립운동가와 여론지도층에 커다란 영향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라며 "단파방송은 이승만의 명성을 제고시켰을 뿐만 아니라 지도자로서 신비감, 민족해방의 희망과 우상으로 자리 잡게 했다"라고 기술한다.
그런데 방송 내용이 훗날 이승만의 지지자들이 될 사람들에게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가짜뉴스도 유포됐다. 정병준 교수의 <우남 이승만 연구>는 이승만보다 22년 뒤인 1897년에 출생해 미국 유학 중에 이승만과 함께 활동하고 귀국 뒤 <동아일보> 기자로 일한 홍익범이 방송 내용을 부풀려 유포시키는 일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다고 설명한다.
<우남 이승만 연구>는 "그가 입수한 이승만 중심의 정보는 국내 민족주의자들에게 과장된 형태로 전달되었고, 증폭되어 유포되었다"라며 그 정보 속에 "이승만 일파는 미국 정부의 원조를 받아 동지(同地)에 조선임시정부를 수립해 미국과 군사동맹을 체결한 뒤에 조선독립운동을 하고 있음"이라는 내용도 있다고 소개했다. 이승만이 미국에서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군사적 방법으로 독립을 추진하고 있다는 허위 정보는 미국이 일본을 꺾은 뒤에 이승만의 위상을 높이는 원인 중 하나가 됐다.
미국은 국내 기반이 사실상 전무한 이승만이 해방을 즈음해 유명해지도록 돕는 데만 그치지 않았다. 1945년 10월 16일에는 70세 된 이승만에게 미군 군복을 입히고 더글러스 맥아더의 전용기에 태워 김포공항에 내려놓았다. 꼭두각시를 연상시키는 전형적인 방법으로 이승만을 33년 만에 귀국시켰던 것이다.
그 뒤 미국은 남한 단독정부론을 성급히 터트리는 이승만과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그에게 힘을 실어줬고, 이는 친일·친미 세력인 한국민주당이 이승만을 선택하는 결정적 배경이 됐다.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이 된 것은 절반 이상은 미국 덕분이고 나머지는 친일세력 덕분이다.
윤석열 정권과 보수진영은 '국부 이승만' 이미지의 확산을 위해 한국전쟁과 한미동맹 부분을 집중 홍보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부 이미지에 결정적으로 필요한 3·1운동, 임시정부 수립, 일제 패망, 정부 수립 과정에서 이승만이 독자 기반으로 이룩한 성과를 입증하지는 못하고 있다.
건국이나 정부수립 과정의 독자적 역할이 확인되지 않은 인물이 건국 시조나 국부로 추앙된 사례를 찾아내기는 힘들다. 그런 시기에 출중한 업적을 세운 인물을 건국 시조나 국부로 인정하는 데에 인류는 익숙하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 보수처럼 정부수립 이후의 행적에서 그런 단서를 찾아내 대중을 설득하려 하면 성공 가능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승만은 자기 기반으로 이룩한 일도 없고, 한국인 조직(친일파 제외)과 제휴해서 성취한 일도 없다. 잊힌 자신의 존재를 미국 덕분에 어느 정도 알려 나가다가 미국의 배려로 귀국하고 미국의 도움으로 정권을 차지했다. 국부로 인정받는 데 필요한 요건이 전혀 구비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승만기념관이나 이승만 동상과 관련된 사업들은 하나 같이 허상의 이미지에 기초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이승만을 국부로 띄우는 것은 윤석열 정권을 포함한 보수세력이 전반적으로 조급증에 빠져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관한 보수진영 내부의 토론과 상호 비판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이런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에 대해서 그들이 주목하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왕건이나 이성계, 무스타파 케말이나 조지 워싱턴을 국부로 띄운 사람들에 비해 지금의 한국 보수는 집단적인 부주의를 범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이승만은 허상의 이미지로 12년간을 버티다가 1960년에 하와이로 달아났다. 문제의 메커니즘에 주목하지 않는 지금의 보수세력이 이승만 미화 작업을 추진하고 있으니, 이 일이 몇 년이나 버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승만기념관 건립을 위한 보수진영의 후원금 납부는 허공으로 거품을 날려 보내는 일이나 다름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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