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닐, <앤디 워홀>1970년, 리넨에 유화와 아크릴물감, 뉴욕휘트니미술관
뉴욕휘트니미술관
워홀의 몸은 처절하게 부서졌다. 그런데 그 이후 워홀은 의외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나 신비주의를 고수해왔던 그가 피격 사건 2년 후, 자신의 취약성을 놀랍게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그 증거는 미국의 초상화가 앨리스 닐(Alice Neel, 1900~1984)이 그린 앤디 워홀의 초상으로 남았다.
워홀은 그동안 자기 이미지를 만들어냈던 부속품을 하나하나 떼어낸 후, 침대에 앉아 셔츠를 벗었다. 이때 그는 더이상 복제 가능했던 스타 앤디 워홀의 모습이 아니다. 좁은 어깨, 깡마른 다리, 늘어진 가슴은 그가 죽도록 감추고 싶어했던 자신이다.
이제는 그에 더해 배에 참혹하게 남은 수술 흉터와 배 부분을 고정해주는 의료용 코르셋마저 그대로 내보인다. 손을 마주 잡은 채 다소곳이 앉은 워홀은 눈을 감은 채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당장 그 추한 모습을 치우고, 화려했던 앤디를 달라"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을 상상했을까.
하지만 이 그림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다. 오히려 '성자 같아 보인다'는 반응 일색이었다. 무방비한 몸을 담담하게 드러낸 워홀을 보며, 반쯤 벌거벗겨진 채 기둥에 묶여 무수한 화살을 기꺼이 맞았던 성 세바스티아누스를 떠올린 것이다. 관객들은 어쩌면 필사적으로 자신의 콤플렉스를 은폐하느라 생을 바친 그가, 마침내 기꺼이 '항복 선언'한 것을 그림에서 읽어낸 것은 아니었을까.
사람들이 진정 사랑했던 것은 워홀의 화려한 외모가 아니라 대중미술과 순수미술의 경계를 무너뜨린 그의 예술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워홀이 드러낸 용기는 그동안 자신이 달성해왔던 예술적 성취를 믿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예쁠 필요 없단다"
외모집착에서 서서히 벗어난 앤디 워홀과는 달리 우리 아이의 상태는 더 심각해져 갔다. 하루는 아이의 눈이 벌게져 있었다. 필사적으로 '괜찮다'는 아이의 제지를 뚫고 봤더니 눈꺼풀에 빨간 상처가 있었다. 아이는 쌍꺼풀진 눈이 갖고 싶어서 눈 위를 긁어내다 급기야 상처까지 냈던 것. "너는 원래 그 상태로도 예뻐"라는 말은 전혀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이 깨달음은 러네이 엥겔른의 책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책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많은 부모가 본능적으로 딸들에게 아름답다고 이야기해줌으로써 기를 세워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외모에 대한 칭찬은 소녀와 여성이 자신의 외모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외모가 중요하다는 것을 상기시킬 뿐이다."
즉 '당신은 그 모습 그대로 충분히 아름답다'는 말은 여전히 아름다움과 행복을 연결 지으며, 오히려 여성이 외모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하는 역효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그렇다. 오히려 딸에게 필요한 말은 '아름다움 이외의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것일 터이다. 외모보다는 딸이 평소 좋아하는 일에 얼마나 열심히 집중하는지, 용기 있는지, 배려하는지, 창조적인지, 너그러운지 알고 있다고 지치지 않고 말하기. 그러면 외모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놓여날 수 있을까.
앤디 워홀이 40대 때야 깨달은 사실을 지금 알 수 있을까. 누군가는 순진한 생각이라고 얘기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어쨌든 나는 노력할 뿐이다. 케이틀린 시엘의 시를 되풀이해 읽으며 말이다. "예쁠 필요 없단다. 그건 네 의무가 아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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