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중구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박민식 국가보훈처장과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보훈은 우리 사회의 성역에 해당한다. 사회와 국가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이들에 대해 작으나마 답례를 하는 동시에 이들에 대한 선양을 통해 국민통합을 제고하는 분야다. 유공자와 유족을 예우하고 국민 세금으로 이들을 부조하는 과정은 사회 구성원들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도록 만든다.
그런데 박민식 장관은 보훈을 성역이 아닌 논쟁의 장으로 전락시켰다. 그는 사회에 대한 공헌도를 기준으로 유공자를 평가하지 않고 이념과 사상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태도를 확산시켰다.
그는 지난 3월 7일에는 보훈처 산하의 '독립운동 훈격 국민공감위원회' 첫 회의를 통해 독립유공자 재평가에 시동을 걸었다. 국민공감위원 17명 중 9명이 뉴라이트 성향을 띠고 있기 때문에 이 기구가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어떤 잣대를 들이댈지는 처음부터 예고된 일이었다.
CBS 인터뷰에서 박 장관은 "친일이든 사회주의 활동이든 간에 정말 우리 대한민국 헌법 가치와 양립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힘들지 않겠습니까"라며 '무슨 목적으로 독립운동을 했는가'를 기준으로 독립운동가들을 재평가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친일이든 사회주의이든'이라며 사회주의와 친일을 동등한 자리에 두는 그의 발언 태도는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에 대한 그의 내면을 노출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뷰에서 그는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도의 독립유공자를 따지면 1만 7000분 되십니다"라며 "여기에 대해서 예산 사업으로 전수조사를 지금 진행 중에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독립유공자 전체에 대한 사상 검증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국가보훈부장관 직을 국가정보원장 직으로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발언이다.
이처럼 보훈부 장관이 앞장서서 독립유공자 사상 검증을 추진하는 가운데 지난 8월부터 육군사관학교의 홍범도 흉상 문제가 불거졌고 뒤이어 정율성 폄하 움직임이 부각됐다. 김원봉·여운형뿐 아니라 이회영·김좌진 같은 독립운동가들도 이로 인한 파편을 맞았다.
보훈을 이념 논쟁의 영역으로 떨어트린 박민식 장관의 행위는 보훈의 국민통합 기능을 훼손시킬 뿐 아니라 유공자 및 유족들에게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박 장관으로 인해 국민들과 야당은 보훈부 활동에 대해 돋보기를 들이댈 수밖에 없게 됐다. 보훈부가 이승만과 백선엽 미화 같은 불순한 목적에 국민 세금을 사용하지 않을까 우려하게 만들었다. 지난달 22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원회가 보훈부 예산안을 삭감한 일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국민들이 일치된 마음으로 보훈 업무를 응원해야 유공자 및 유족들이 소액의 지원금이나마 편하게 수령할 수 있다. 지금처럼 보훈부가 극우 기관처럼 되어 정치 논쟁을 유발하게 되면, 보훈 업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싸늘해져 유공자와 유족들이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그는 뒷수습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고객의 니즈'를 명분으로 성남 분당을 유권자들에게 표를 호소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책임한 공직자의 모델'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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