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말이 등장하는 것에 따라 사전도 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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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말가젠더가 성별정체성에 대한 단어라면 폴리섹슈얼은 성적 지향과 관련된 용어다. 이 단어는 다양한 성별의 사람들에게 성적으로 끌리는 이들을 지칭한다. 그런데 성적 지향과 관련된 단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질문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판섹슈얼(Pansexual)과 폴리섹슈얼의 다른 점은 무엇이지?
일단 판섹슈얼은 모든 성별의 사람이나 혹은 성별에 관계없이 성적이거나 감정적 끌림을 느끼는 이들을 뜻한다. 하지만 폴리섹슈얼은 성적 끌림을 느끼는 성별이 특정되어 있으며 그게 다수라는 차이가 있다. 즉 폴리섹슈얼인 사람들에게는 끌림을 느끼지 못하는 성별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판섹슈얼은 한국어로 '범성애(凡性愛)'라고 번역된다. 폴리섹슈얼을 옮겨보자면 아마 '다성애(多性愛)'로 번역될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낯선 이 단어들을 사전에 등재된 것이 사전 제작자들이 성소수자 친화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일까. 하지만 이들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아 보인다. 딕셔너리 닷컴의 편집 부사장인 존 켈리는 미국 <엔비시뉴스(NBC News)>와 한 인터뷰에서 하나의 단어를 사전에 추가할 때는 자체적인 네 가지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해당 단어가 널리 사용되는가, 공유된 의미가 있는가, 지속력을 입증 하는가, 대중들에게 유용한 개념인가'가 바로 그 기준들이다.
또한 켈리에 따르면 성별정체성 및 성적 지향과 관련된 단어들은 지난 15년 동안 특히 역동적이고 생산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언급했다. 즉 시대가 변하고 새로운 말이 등장하거나 혹은 기존의 의미가 변화하면서 사전을 만드는 사람도 이를 반영한 셈이다.
성별이분법을 넘어서자, 언어도 달라졌다
새로운 단어를 추가하면서 딕셔너리 닷컴은 기존에 등재된 단어들의 정의를 바꾸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수백 개의 단어 정의에서 성별을 지칭하는 단어가 삭제되었다. 예를 들어 자원봉사자라는 단어는 한국어로 다소 거칠게 옮기자면 '스스로 자원하여 일하기를 제안하는 남성 혹은 여성'이라고 정의되어 있었다. 그리고 딕셔너리 닷컴은 이 정의를 '스스로 자원하여 일하기를 제안하는 사람'으로 수정했다.
최근 영미권에서는 자신의 성별대명사를 직접 지정하거나 혹은 성별중립적인 대명사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영어 문장은 성별대명사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회가 인식하는 성별과 실제의 성별정체성이 일치하지 않거나 혹은 '그녀(she)', '그(he)'와 같이 기존의 이분법적 성별대명사로는 자신을 표현할 수 없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딕셔너리 닷컴의 개정은 이런 추세를 따른 것일까.
어느 정도는 맞고 또 어느 정도는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개정된 내용은 사회적 추세를 반영한 것도 맞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기존의 정의로는 더 이상 단어를 효율적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존 켈리는 이에 대해 우리들 중 누구도 '스스로 자원하여 일하기를 제안하는 남성 혹은 여성'을 찾고 있다는 의미로 '자원봉사자'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살아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자원봉사자를 성별대명사를 이용해 설명하면 '사람'으로 설명할 때보다 의미가 축소되며 읽기도 이해하기도 더 어려워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켈리는 불필요하게 성별대명사를 이용하여 단어를 정의하는 방식은 배타적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번거롭기까지 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사회적 변화를 고려하면 이번 개정이 이미 시한을 넘어서 이루어진 것이라 언급했다.
원칙과 기준에 따라 일을 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