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트 부티지지 미국 교통부 장관(맨 오른쪽)이 지난 3월 3일(현지 시각) 미국 켄터키주 글렌데일 블루오벌SK 켄터키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미 교통부
지난해 8월 16일 미국이 청정에너지 전환을 위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시행한 이래 1년 동안 115개 프로젝트, 760억 달러가 미국에 투자되었다. 미국의 에너지 연구자인 잭 코네스의 데이터에 따르면 우리나라 제조 기업이 총투자의 30%인 220억 달러(약 28조 6천억 원)를 투자해서 2위를 차지했다. 3위인 일본의 16% 투자보다 2배 많다. 코로나 발생 전인 2019년 한국의 대미 직접투자는 벨기에, 싱가포르보다 낮은 14위에 불과했다. 그런데 단 4년 만에 2위로 올라선 것이다.
한국 기후산업의 핵심 자본과 기술은 왜 미국으로 이동할까? 국가 정책에 답이 있다. 미국 정부는 2030년까지 신규 자동차 50% 이상을 전기자동차로 전환하고, 2035년까지 모든 전기에너지의 온실가스를 제로(0)로 만들겠다는 국가 정책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청정에너지 전환에 3690억 달러(약 480조 원)를 투입한다. 기후정책이 실종되어 투자처를 잃은 우리나라 자본과 기술은 이 정책과 예산 때문에 미국으로 빠르게 이전하고 있다.
지난 1월 세계경제포럼(WEF)에 참여한 윤석열 대통령은 특별연설에서 우리나라의 반도체, 이차전지, 철강 등이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기술과 제조역량을 보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당면한 한국의 기후위기는 원전과 수소(그린수소)로 극복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자랑한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기술과 제조기술은 우리나라가 아닌 미국의 기후산업을 고도화하고 미국인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
아직도 우리나라의 제조업에 희망은 있을까? 국가 정책에 답이 있을 것이다. 희망을 만들기 위해 큰 비전을 갖고 기후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미국이 그랬듯이 에너지 전환과 기후산업 부흥을 위해 적어도 GDP의 2%인 50조 원을 매년 지원하는 법을 만들고, 제대로 이행해야 미래가 보일 것이다.
다음으로 기후피해 지역 주민들을 보호해야 한다. 기후산업 전환과 기후위기로 재산과 일자리를 잃고 피해에 노출된 주민들을 보호하는 정책이 있어야 한다. 바이든 정부는 '정의 40(Justice 40)'을 통해 정부가 지원하는 기후 예산, 금융, 펀드의 40%를 반드시 기후피해 지역공동체에 혜택이 돌아가도록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그래야 기후산업의 저변이 지역과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일반 국민들도 정책을 지지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블루오벌SK에 92억 달러 금융 지원을 약속하며 조건을 달았다. 미국의 배터리 제조 역량을 더 확장하고, 기후피해 주민공동체에 기술학교, 일자리, 청정에너지 지원 등으로 지원비 40%에 해당하는 혜택을 제공하라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안 하던 일을 미국에서는 하고 있다. 정책이 있고 없고의 차이다.
지금은 우리나라가 최고의 제조업 기술을 가진 나라라고 자랑할 때가 아니다. 대담하고 정의롭게 탈탄소 전환을 할 때만 그것을 지킬 수 있음을 알아차릴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