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11월 6일 자 <동아일보> 기사 "커피의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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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11월 6일 자 <동아일보>에는 '커피의 상식'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따끈한 한잔의 커피는 피로를 회복시키고 마음의 휴식을 주는 동시에 생각하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처음으로 들어온 것은 약 60여년 전 초대미국공사 부임과 동시이지만 이제는 우리들이 항상 즐거이 마실 수 있는 차가 되고 말았다."
이 기사는 커피의 주성분인 카페인이 졸리듯 흐릿한 기분을 거두어 버리고 개운한 기분을 만든다고 소개하였다. 이런 기사를 읽고 커피가 당기지 않을 수 없었다. 기사가 실린 것은 낙엽이 지는 가을의 끝자락이었다. 이 당시에 지식인들은 커피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이 아관파천보다 10여 년 앞선 1883년 즈음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낯선 수입 음료 커피가 서울에서는 남녀노소가 즐기는 음료로 각광을 받고 있었다. 물론 서민들에게는 사치품이었다. 팔봉 김기진을 비롯하여 몇몇 지식인들은 이런 세태를 비판하였다. 커피와 같은 사치품보다 심각한 것은 나라의 운명을 불안하게 하는 한심한 사건 소식들이었다. 거리의 상품진열창은 안 보면 그만이었지만 뉴스는 피할 수가 없었다.
하룻밤 자고 나면 꿈에도 예측하지 못했던 한심스러운 사건이 꼬리를 물고 튕겨 나오는 것이 문제였다. 요즘과 다르지 않았다. 예를 들면 1958년 당시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것이 '판사의 살인사건'과 '교장의 광고사건'이라는 희대의 뉴스거리였다.
전자는 술에 취한 판사 이모씨가 요정에서 기생의 옷을 강제로 벗기려 하다가 이를 말리려던 요정 주인의 아버지 멱살을 잡아 질식사시킨 사건이었다. 후자는 맹휴의 책임을 물어 퇴학 처분을 한 학생 7명의 명단을 실은 광고를 신문에 게재한 교장 이야기였다.
이 두 사건에 대해 언론은 교장 사건에 대해서는 비교적 공정한 보도를 하였으나, 판사의 살인사건은 살인 판사에게 동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판사는 2년 형에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신문에는 이것이 취중 살인이었고, 판사가 반성하고 있으며, 가족들의 생계 책임이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동정적인 기사들이 넘쳤다.
어느 날 다방에서 팔봉은 손님들의 대화를 들었다. 한 손님이 말하기를 "여보게 판사가 살인을 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이걸 어떡하면 좋지?" 하니까, 그와 함께 있던 친구가 한숨을 쉬면서 "국운이 이렇게 됐다고 할밖에..."라고 대답하였다.
"낙엽 소리 하나를 듣고 천하에 가을이 온 것을 알았다"는 말을 인용하며, 팔봉 김기진은 판사가 요정에서 살인을 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무엇을 행해야 하고,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를 알지 못할 지경이라고 한탄하였다.
초임 교사에 이어 정년을 앞둔 교사가 스스로 교직과 목숨을 버리는 세상, 수십만의 교사가 거리로 뛰쳐나와도 꿈쩍도 하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국운이 다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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