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은 박근혜 정권 당시 교육부가 공개한 국정교과서 고교 한국사. 오른쪽은 비상교육에서 나온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
오마이뉴스
그런 소름 끼치는 일이 박근혜 정권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 때도 있었다. 박근혜 정권 역시 무장 투쟁에 대한 거부감을 숨기지 않았다. 교육부에 의해 구성된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가 2018년에 펴낸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백서>에 따르면, 당시의 청와대는 '여러 주체가 참여한 다양한 민족운동이 전개되다가 광복이 왔다'는 식으로 독립운동사를 서술하면 안 된다는 내부 입장을 2015년 9월 25일에 정리했다.
"마치 독립운동의 결과로만 해방된 듯하게 오인"될 수 있으며 "미국과 일본의 전쟁의 결과"로 해방된 것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무장투쟁을 강조하면 한국 자체의 힘으로 독립된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다고 염려한 셈이다.
백서에 따르면, 당시의 교육부가 작성한 '교육적으로 부적절한 구성 사례(현 한국사)'라는 파일에도 비슷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파일은 기존 역사교과서의 문제점 중 하나로 "1920~1930년대 무장 독립운동단체의 과도한 나열"을 적시했다. 무장 투쟁에 대한 서술이 너무 많다고 본 것이다.
무장 투쟁이 한국사 교과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낮은 편이다. 그래서 교과서만으로 공부하게 되면, 우리 민족이 스스로 독립할 힘이 없어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권은 무장 투쟁이 과도하게 서술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일반 국민들과 궤를 달리하는 역사 인식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국정화 작업에 동원된 국정교과서 편찬심의회는 무장 투쟁의 비중을 낮추는 대신, 다른 것에 '투쟁'이란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편찬심의회 내의 전문위원협의회는 '외교 활동'이란 용어를 '외교 독립투쟁'으로 바꾸자고 했다가 나중에는 '외교적 독립투쟁'으로 바꾸었다.
교과서 국정화 작업은 박정희와 더불어 이승만을 띄우는 방향으로 추진됐다. 독립운동을 방해했다는 혐의로 임시정부에서 탄핵을 당하고도 대통령 직함을 계속 사용하며 미국 외교가를 상대로 자신을 어필하는 데 주력했던 이승만을 띄우는 것이 이 사업의 목표인 양 말이다.
이승만의 주특기는 외교 활동이었다. 무장 독립투쟁의 비중을 낮추면서 굳이 '외교적 독립투쟁'이란 용어를 선택한 편찬심의회의 방침은 이 같은 이승만을 호의적으로 평가하는 데에 유리하게 활용될 수밖에 없었다.
무장 투쟁의 비중을 낮추고 '외교 투쟁'의 위상을 높인 것과 더불어 눈에 띄는 것이 또 있었다. 북한의 대남 무장 활동을 부각시키도록 한 점이 그것이다. 위 백서에 인용된 교육부 문건인 'EBS 역사교육 현황 및 편향성 해소 대책'에는 무장간첩 남파 사건 같은 "북한의 도발을 추가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무장 항일투쟁의 비중은 낮추면서 북한의 대남 무장 활동의 비중은 높였던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교과서 추진은 이명박 정권 때 절정에 달한 뉴라이트 운동을 배경에 깔고 있었다. 무장 독립투쟁을 폄훼하는 윤석열 정권의 태도가 국정 교과서 사업 때도 나타났다는 점은 무장 항일투쟁에 대한 거부감이 이명박·박근혜·윤석열 보수 정권의 DNA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보수 정권의 무장 투쟁 폄하,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