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개 치기 시작합니다!

검토 완료

서치식(ssnoeha)등록 2023.09.06 07:46
 활개(를) 치다 : 힘차게 두 팔을 앞뒤로 어긋나게 흔들며 걷다. 의기양양하게 행동하다. 라는 뜻의 관용어다'

 18년의 재활로 활개치기 시작하다. 
뇌병변 2급 장애인 필자가 저 지난달 15일부터 활개 치기 시작했다. 전기화학적 신경 정보를 신경 말단(nerve terminal)의 시냅스를 통해 다른 신경세포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돌기를 축삭돌기라 한다.  그 축삭돌기의 광범위한 손상으로 왼 편마비가 된 필자가 활개를 치며 걷는 것은 신경 전달체계가 재구축(再構築)된 확실한 반증이다.
하프 마라톤 완주를 목표로 18년의 재활로 일궈낸 기적이다.
 
범상치 않은 전조증상이 연이어 두 번 있었다.
이른바 자가 재활(오마이뉴스 기사 : 자가 재활한다니, 아내도 사이비 취급 참조)을하는 동안 현기증, 열감 등의 전조 후에는 반드시 획기적인 동작의 개선이 있고는 했다. 그런 경험으로 이상 징후가 생기면 으레 기대감이 앞서게 되었다. 

청사내 체력단련실에서 프랭크를 하는 모습 지금도 체력단련실을 이용해 하루애 두번 프랭크 20분, 공중걷기, 공중 계단오르기 각100회와 레그 레이즈 600회를 한다. ⓒ 서치식

 
 제대로 모양을 갖춰가는 복근으로 운동이 탄력을 받아 가던 3월 어느 날, 세상이 빙빙 도는 현기증이 있었다. 밤새 119를 누르다 말기를 여러 번 할 정도로 심한 현기증이었다. 플랭크 19분, 공중 걷기 100회, 공중 계단 오르기 100회, 레그레이즈 1,500회(500개씩 3세트)를 아침, 저녁으로 할 때였다. 연초에 옮긴 부서의 낯선 업무에 적응하느라 바쁜 중에 아침저녁으로 총 5시간여 운동하면서도 힘든 줄 모르던 때였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9시쯤 퇴근해 정해진 운동을 하고 샤워 중에 현기증이 왔다. 늘 그랬듯 반가운(?) 전조라 여기던 차 서 있기도 어려울 정도가 됐다. 서둘러 방으로 가 누워야 했다. 그러나 밀려오는 현기증으로 천장이고 바닥이고 온 세상이 빙빙 돌았다. 바로 누울 수조차 없어 잠이 안 올 때 모로 눕던 게 생각나 그렇게 하니 좀 나았다. 밤새 시달리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설핏 잠이 들었다가 아침을 맞았는데 태풍이 지나간 것처럼 현기증이 말끔히 사라졌다.

 그 후 왼 오금의 굴곡운동과 발목의 족배굴곡(dorsiflexion, 발등이 머리 쪽으로 구부러지는 것으로 발가락을 들게 하고 착지할 때 충격을 흡수하고 이어 달릴 수 있게 함). 족저굴곡[plantar flexion, 발등이 아래로 구부러지는 것으로 뒤꿈치를 들게 하며- 하퇴 삼두근(비복근, 가자미근, 족저근)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한다]의 현저한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두 번째는 근무 중 사무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2014년 일반행정직 공무원으로 임용되어 줄곧 세무 업무를 맡던 필자가 지난 인사로 복지 직렬인 여성가족과에서 아동 관련 제 수당 지급을 맡고 있다. 매월 25일이면 만 명 단위의 아동들을 대상으로 제 수당을 지급한다. 대량 이체 중에 발생하는 이체오류는 경리팀의 협조와 구청장 결재를 거쳐 은행 마감 전에 고지서로 국고에 반납해야 한다. 거기에 이체오류 명단은 오후에나 확인할 수 있기에 짧은 시간에 여러 단계를 거쳐 은행 마감 전에 반납하려면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그날도 그렇게 잔뜩 긴장한 채 이체오류 반납 고지서를 출력해 넘기고는 화장실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시야가 물결치듯 출렁거리며 여러 색으로 명멸하기 시작했다. 간신히 자리에 돌아와 자리에 앉았는데 모니터의 글씨가 부분적으로 안 보이더니 완전히 뿌옇게 변했다. 불안한 마음을 애써 억누르고 있자니 30여 분만에 시력이 회복되었다. 다음날 근처 신경외과 진료를 받았다. 뇌 손상 환자들은 스트레스로 간혹 그럴 수 있다고 했다. 별다른 소견은 안 보이나 반복되면 꼭 병원에 오라고 했다.

시야가 물결치고 번개 치듯 명멸하는 것을 후에 검색해보니 황반변성의 증상이라고 한다.
  

점심시간을 이용한 걷기 한결 부드러워진 걸음으로 점심시간을 이용한 걷기의 거리를 3배가량 늘렸음에도 소요시간은 같거나 더 짧게 기록되고 있다. ⓒ 서치식

 
두 번의 전조 후에 마비된 감각이 확연히 돌아오며 걷기가 점차 수월해졌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근린공원을 산책하던 중 불현듯 활개 치며 걷고 있음을 느낀 것이다.
 마비된 부위는 감각이 없기에 그저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존재한다. 느낌이 없으니 인식할 수 없고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무게로 쏠리는 왼 어깨도 마찬가지다. 마비된 부위의 감각 회복은 없던 감각이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기에 확연하고 뚜렷하게 다가온다. 장애를 얻은 이래 줄곧 꼬꾸라질 듯 앞으로 쏠리던 왼 어깨에 힘이 빠지고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감각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왼 어깨의 감각이 돌아오며 비로소 활개 치며 걷게 되어 자세가 확연히 잡혀가고 있다. 우선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계속되던 왼발을 들지 못하는 문제(족배굴곡, 족저굴곡의 부족)가 눈에 띄게 개선되었다. 연이어 발뒤꿈치, 발바닥, 앞꿈치(발가락) 순서로 발을 디딜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무리 애를 써도 마비된 왼발은 발로 땅을 강하게 차듯 디뎌졌다. 그 덕에 왼 엄지발가락은 시퍼런 멍이 가실 날이 없었고 신발은 두어 달 만에 밑창이 헤지기 일쑤였다. 아주 강하게 땅을 찰라치면 중심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질 듯해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곤 했다. 그랬던 것이 시나브로 발뒤꿈치부터 디디고 발바닥 전면으로 체중을 온전히 감당해 중심을 이동하고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어 추진력을 얻어 다음 발을 디딘다. 비로소 바르게 걷기 시작한 것이다.

"ㅇㅇ 느낌으로"라든지" ㅇㅇ 기분으로 해라.", 어떤 운동이나 동작을 설명할 때 흔히 쓰는 말이다. 하지만 마비된 부위는 감각이 없으니 느낄 수가 없어 실행할 수 없었다. 그랬던 필자가 마침내 올바르게 걷는 동작을 느낌으로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활개 칠 수 있게 되며 걸을 때마다 더 활개 치려 애썼다. 그러자 허리를 펴고 시선을 정면에 두고 걷는 것도 가능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선을 발끝에 두자니 상체는 심하게 굽고 이동하는 발에 체중을 싣지 못했다. 상체와 엉덩이를 뒤에 두고 조심스레 발을 앞으로 디디니 빨리 걸을 수도 바르게 걸을 수도 없었다. 활개 치기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마치 준비되어 있었던 듯 위에 기술한 변화가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필자가 19년째 이어지는 재활의 마지막 퍼즐을 맞추었다고 강하게 확신하는 분명한 이유다.
 

2019년 무렵 Z-up(일명 꺼꾸리)를 이용해 윗몸일으키기를 하는 모습 자세교정을 위한 기구인 Z-up을 이용해 체간 강화를 위해 거꾸로 매딜린 상태에서 윗몸일으키기를 하는 2019년 무렵의 모습. 완전한 재활을 목표로 한 필자의 자가재활은 항상 할 수 있는 극한의 운동을 하느것을 원칙으로 했다. ⓒ 서치식

 

 자가 재활은 '완전한 재활'을 본향으로 나선 재활의 순례길이다.
 
필자는 하나님을 재활의 주치의 삼고 자가 재활 중이다(오마이뉴스 기사 : 본격적인 재활은 영혼의 재활부터 시작됐다. 참조)
유수의 대학병원 두 군데를 거치며 간신히 걷기 시작하며 옮긴 신촌세브란스에서 애써 벗어난 휠체어 신세를 다시 져야만 했다. 보행 분석기 등으로 분석 후 '걷는 자세가 잘못됐으니 도로 휠체어를 이용하고 처음부터 다시 재활해라'라는 처방이 내려졌다. 1년 남짓 노력한게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것이다. 내 세상은 다시 무너졌다. 잠자리에서 경찰의 전화로 사고 소식을 접한 길로 세 살 난 딸을 떼어놓고 간호를 시작한 아내와의 병원 생활도 해를 넘겼을 때다. 암담한 상황을 맞아 아내와 함께 병원 교회를 찾았다. 그렇게 찾은 교회에서 휠체어에 앉아 '나의 등 뒤에서'란 복음성가의 '너 일어나 걸어라'는 구절을 부를 때였다. 가슴이 불같이 뜨거워지며 나도 모르게 "하나님을 재활의 주치의 삼고 재활해 반드시 하프 마라톤 완주를 이루겠다"라고 엄하게 기도로 서원(誓願)했다.
당시 필자는 "내가 사람에게 받을 도움은 더 이상 없다"는 생각으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80여 일 만에 불러일으킨 하나님께 온전히 몸을 부리는" 심정이었다.
그 후 하프 마라톤 완주를 한순간도 잊은 적 없다. 내 상황을 주도하며 본격적으로 재활애 나섰다. 치료과정과 의료진을 통해 재활개념을 정립하고 사소한 동작 하나도 재활을 염두에 두고 계획해나갔다. 보호자 없는 입원 치료, 통원 치료 후 자가 재활까지 나름의 계획대로 장애를 얻기 전의 건강 회복을 본향으로 재활의 순례에 나선 것이다.
  

틈새시간에 복도를 이용한 걷기 시선을 앞에 두고 활개를 치며 사무실 복도를 걷는 모습으로 일상에서 재활시간을 최대로 확보하기 위해선 화장실을 다녀오는 시간 등 틈새시간을 깨알같이 활용해야만 한다 ⓒ 서치식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 5:17~18)" 바울 사도가 2차 전도 여행에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쓴 첫 번째 서신의 일부다. 개척한 지 2주 만에 떠나 신앙적으로 무지함에도 유대인들의 박해 속에서 믿음을 굳건히 지키는 교인들에게 감사와 절실한 신앙적 당부를 담은 서신으로 알려졌다.

  필자에게 이 말씀은 하나님을 주치의 삼고 19년째 재활하며 체험한 기적에 대한 기록이며 간증이다. 하프 마라톤 완주를 목표로 나선 재활의 순례길에서 연이은 회복으로 끝없이 이어지던 '기쁨'과 완전한 재활로 이 땅의 장애인들에게 뚜렷한 이정표가 되겠다는 간절한 '기도'에 그 과정에서 넘쳐나던 '감사'에 대한 한점 한 획도 가감 없는 기록이다.

활개 치기 시작하며 이어지는 회복들
지난 6월 15일, 활개 치는 것을 느끼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끝마칠 수 없을 정도로 회복이 이어지고 있다.

재활치료에 계단 오르내리기는 별도의 치료 시간이 있다. 편마비로 밸런스 기능이 망가진 장애인에게는 계단이 그만큼 어렵고 위험하기 때문일 것이다. 계단은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어렵고 위험하다. 여러 번 넘어진 경험이 있는 필자에겐 계단 내려가기는 최근까지도 공포였다.
그랬던 게 지금은 시선은 정면을 향하고 계단 오르내리기가 가능해졌다. 점심시간을 이용한 걷기는 거리를 3배 정도 늘렸음에도 시간은 비슷하기나 2분 정도 빠르게 기록되곤 한다. 스마트 워치에 반 정도의 거리는 달리기로 자동 기록되고 있다.
 
'사람에게 더 이상 의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내 손잡아 이끄신 하나님의 인도로 나선 재활의 순례길에서 비로소 18년 만에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본향인 완전한 재활이 저만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건강을 완전히 회복한 징표로 21.0975km를 3시간에 완주하고, 누구든지 끈질기게 노력하면 완전한 재활을 이룰 수 있음을 내 입을 크게 열어 말하려 한다.

그것이 지난했던 재활의 순례길에서 손잡아 이끄신 내 하나님이 필자에게 무겁게 준 소명(召命)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전북의 소리, 브런치(요약)에 중복 게재합니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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