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일 폭염 속 양산 쓴 북한 주민들(조선중앙TV 화면)
연합뉴스
남한을 향한, 특히 집권 세력에 대한 북한의 호칭은 공식 매체를 통해 우리 귀에 총알처럼 박혀있다. "괴뢰도당", "괴뢰 역도" 등등… 공식 매체는 권력의 입장을 대변하는 나팔수이므로 차치하고, 북한 사람들은 남한 사람들을 어떻게 호칭하는지 궁금하다.
북한에서 남한을 향해 사용하는 여러 호칭 중 중앙의 간부로부터 주민들까지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남조선 아이들'이다. 얼핏 들으면 남한 사람들을 '아이들'로 얕잡아 부른다고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에는 공식 매체와 달리 상대방에 대한 혐오, 무시와 같은 부정적 감정이나 특별한 악의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투박한 억양에 실리는 이 호칭에는 사실 남한 사람들을 향한 북한 사람들의 애정과 선망이 어려있다. 예를 들면 이러하다.
개성공단 근로자: "쌀독에서 인심 난다고. 잘 사니까 우리한테 뭘 주지 못해 안타까워해. 상냥하고 부드럽고, 피부가 하얗고..."
경수로 지구 주민: "남조선 아이들 일하는 거 보면 단위 당 시간 내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헛눈(딴눈) 한번 안 팔고 잽싸게 손 놀리는데 우린 못 따라가겠더라."
남한 라디오 애청자들:
"야~ 남조선 아이들 세계 1위를 차지하는 산업이 10개 넘는다지 않아. 전자공업, 조선업…."
"갸들 경제 수준이 일본 따라 섰다잖아. IT는 세계 최고 수준이래."
"우리 민족의 반쪽만이라도 세계적 수준에 올라섰다니까 얼마나 다행이니."
남한 상품 판매자: "남조선 아이들 방직이 세계 1등이라오. 그러니까 남조선 상표 붙은 옷은 비싸도 무조건 사세요."
멋쟁이 주민들: "어머. 너 옷이 멋있다. 어디 거야?" "남조선 아이들 거야."(어깨 으쓱) "저 애 좀 사네. 신발 봐라. 남조선 아이들 거잖아."
러시아 벌목공: "러시아 나가니까 남조선 아이들 앞에서 코 큰 양놈들이 허리 굽히는 걸 보니 격세지감이더라."
외국인을 모두 "아이들"로 불러
북한 사람들은 남한뿐만 아니라 외국을 향해 다 '아이들'이라고 싸잡아 부른다. '소련 아이들', '중국 아이들', '독일 아이들', '일본 아이들'… 어린이들까지 그렇게 말하니 듣는 사람도 우스워 "그 나라에 네게 아이 취급당할 만한 사람이 몇이 되겠냐"고 호응한다.
외국 사람들을 향해 '아이들'이라고 부르는 북한 사람들의 고질적 말투가 외교 사건으로 비화될 뻔한 일도 있었다. 2000년 평양을 방문한 중국인들이 고려호텔 로비에서 겪은 일화다.
호텔 종업원으로 추측되는 사람들이 그들을 향해 "저 중국 아이들 좀 보라. 잘 먹어서 살이 피둥피둥 쪘네"라는 말을 주고받았다. 마침 일행 중에 우리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있어서 "조선 사람들이 우릴 보고 왜 아이들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북한 당국에 정식 문제 제기했다. 급기야 2001년 토요학습 대상 간부 강연회에서는 "외국 사람들을 보고 '아이들'이라고 부르는 말투를 고치라"는 당국의 지시가 하달되었다.
하지만 그 말버릇은 여전하다. <중앙일보>가 2007년 공개한 북한 노동당 장용순 부부장의 강연 녹취록에도 중국이 남한과 외교 관계를 맺은 데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서 "남조선 아이들과 빌붙어서 겨우 외교 관계를 맺으면서 40억 달러를 얻어갔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만약 우리가 미국을 향해 '미국 아이들'이라고 말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난 대선 기간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후보는 "해방 후 미군은 점령군"이라고 했던 발언으로 상대 진영의 공세에 휘말렸다. 감히 "우방이며 해방자, 공산주의 침략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준 은인 미군을 점령군이라고 할 수 있느냐"가 요지였다.
1945년 9월 7일 점령군으로서 미군의 점령조항을 공포한 맥아더의 포고 제1호 문서는 엄연히 존재한다. 하지만, 미국에 대한 우상과 숭배라는 절대적 믿음 상태에서 사실이나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특히 서울광장과 아스팔트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열심히 흔들며 '한미동맹'을 외쳐왔던 반공 전사들에게 더더욱 그러하다. 동맹이기는 하나 사실상 수직관계인 '미국 형님'들을 향해 '미국 아이들'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친미 국가 국민으로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북한도 1950년대 중반까지는 소련을 '조선 인민의 해방자'라고 했고 일부 공식 기록물들에도 남아있다. 하지만 북한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사회주의 종주국이며 자신들의 해방자인 소련을 향해 '소련 아이들'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도 소련에 벌목하러 들어갔다 나온 사람들이 소련 체험기를 화제에 올릴 때마다 줄곧 '소련 아이들'이라고 했다.
'소련 아이들'에서부터 출발해 '미국 아이들', '일본 아이들', '남조선 아이들' 식으로 세상 사람들을 향해 '아이들'이라고 부르는 그들의 무의식에 깔린 기저는 무엇일까? 그 호칭에는 상대를 낮춰보는 일종의 고자세와 북한적 고유성이 내재해 있다. 초강대국 미국뿐만이 아니라 일본을 향해서도 '섬나라 오랑캐', '간교한 쪽바리'라 하며 찰진 욕사포를 퍼부어 식민지 기억과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 때문에 멍이 든 우리 국민들 가슴을 후련하게 하는 그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호칭에 대한 고찰을 통해 우리는 북한이란 공동체가 형성되어 온 지정학적 및 정치·제도적 특성, 역사·문화적 배경과 맥락을 이해하고, 상대방의 관점과 입장에서 북한 사회와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깊이 투시해 볼 수 있다. 즉 우리의 심성에 똬리를 틀고 있는 상대방에 대한 반목을 이해로, 질시를 화해로, 증오를 사랑으로 환치해 나갈 수 있는 출발점이 되겠다.
카스트로 어깨 치며 "수령님 가르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