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물류센터에서 작업자가 땀에 젖은 옷을 입고 분류 배송 작업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연합뉴스
택배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정말 힘들었던 것은 그저 주소를 못 찾거나, 물건이 무거워서가 아니었다. 여러 개의 음료 세트를 여러 번 들고 올라가 올려놓으니 다른데 옮겨달라고 너무 쉽게 말한다.
크고 무거운 안마의자나 여러 포의 쌀을 들고 메고 올라가 숨을 헐떡이는데도 '수고했다'는 인사는커녕 일부러 눈을 마주치지 않고 모른 척한다. 사실 별것 아니지만 일하는 사람은 기운이 빠진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분들이 더 많다.
그 마음의 정체는 '돈 받았으니 불평하지 말라'는 것 아닐까? 돈을 받은 것은 맞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타고 손수건 한 장을 배송하든, 음료 세트를 메고 5층을 걸어 올라가든 700~800여 원이다.
목사로 오래 살다 보니 일하면서도 설교에서 할 법한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것을 돈으로 말하고 돈으로 평가한다. 기본적으로 그렇다. 그러나 모든 일을 그저 돈으로만 평가하는 게 사람 사는 사회일까? 또 일에 따른 적정한 보수는 얼마일까? 한국 사회에 함께 묻고 싶은 질문이다.
친기업(재벌) 정부가 들어서니 국정농단 사태를 계기로 정경유착 관행을 반성하며 자숙하겠다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삼성, 현대, SK, LG, 4대 재벌의 복귀를 포함, 재가동의 시동을 걸고 있다.
편의점 사장과 알바가 시급을 놓고 얼굴 붉히고, 같은 노동자와 노조가 채용조건과 임금수준을 두고 원수가 되고, 아파트 관리원과 청소원의 월급 몇 푼을 올리냐 깎냐를 놓고 신경전 벌일 때, 가려진 회장님들 세계에서는 천문학적인 보수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경제개혁연구소의 2021~22년 상장회사 임원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이 기간 근로소득 4위 이재현 CJ 회장의 보수는 221억 3700만 원(급여 45%, 상여 55%)이다. 7위 신동빈 롯데 회장은 154억 100만 원(85%, 15%), 김택진 NC소프트 대표는 123억 8100만 원(20%, 80%) 등이다. 그러나 진짜 놀라운 것은 이들의 고액 연봉이 아니다. 고액 연봉 지급 기준이 모호하고 때로는 그 기준이 충족되지 않아도 무조건 지급된다는 점이다.
한화그룹 승계 1순위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회장의 보수는 2020년 7억 5000만 원 정도에서 2022년 31억 1000만 원 정도로 2년 만에 무려 315% 올랐다. 고연봉이든 저연봉이든, 주변에서 보수가 2년 만에 4배로 오른 사람을 보았나? 아마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이유로든 4배 상승의 근거를 대기 어렵기 때문이다.
'수백 대 1'의 차이
그러나 회장들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김 부회장은 2020년 1월부터 사내이사 부사장으로 있다가 그해 10월 대표이사를 맡았고, 2022년 8월에는 다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결국 보수상승 주요인은 경영 이양을 위한 직급의 수직상승이다. 게다가 회장들은 단지 한 회사가 아니라 여러 계열사의 임원이기에 동시에 여러 곳에서 수익을 창출한다.
이들의 높은 보수 기준은 무엇일까? 지난 9일 <한겨레>에 실린 "재벌총수 일가의 코미디 같은 임금체계"에 따르면, 한화솔루션 기준급은 '직무, 직급, 전문성, 회사기여도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하고 조정급은 '조직기여도 및 시장가치, 전문성 및 역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책정'한다고 되어 있다. 두루뭉술한 기준에 필요에 따라 짜 맞추면 되는 구조다. 그러나 이런 엉터리 기준 고액 급여의 끝판왕은 다른 곳에 있다.
지난 10일 자 <한겨레> 기사 "취업제한·횡령 재판중에도, 회장님들은 수십억씩 보수 챙겼다"에 따르면,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은 특정경제가중처벌법(특경법)상 배임 혐의로 확정판결을 받아 취업제한 기간 중인 2022년에도 55억 원 넘는 근로소득을 받았다. 또 조현준 효성 회장도 업무상 횡령 혐의로 재판 중인 지난해 72억 원을 넘게 받았다. 장세주 동국 홀딩스 회장도 특경법 위반으로 취업제한 기간 중인 2021년 57억 원을 받았다. 이외에도 이해욱 DL 회장, 박태영 하이트진로 사장 등 사례가 끝이 없다
'회사가 어렵다'거나 '경기가 안 좋다'며 한숨이 많지만, 그래도 회장님들은 상황이 어떻든 받아 갈 돈 이상을 다 받아 간다. 최근 잼버리 대란에 필요한 물품을 전량 조달하겠다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지시에 '삼성이 없었다면 어떡할 뻔했냐'고 찬사를 내뱉는 언론에 심사가 뒤틀리는 것은 내 속이 좁은 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