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것 만큼이나 죽는 것도 힘든 세상이군요

<각자도사 사회> 단상

검토 완료

홍윤정(arete)등록 2023.08.09 16:28
"그 나이가 되면 그들은 병으로 서로를 더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에브리맨> 필립 로스

40년 이상을 같이 산 남편이 아내를 다른 여자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지인 아들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오래된 팝송이 흘러나오자 아내를 향해 "옌, 이 노래 기억해? 우리 이 노래에 맞춰 같이 춤췄잖아" 라며 남편은 회상에 잠긴다. 잠시 아내는 질투심에 휩싸이지만 이내 남편에게 문제가 생겼음을 직시한다. 치매가 시작된 것이다.  

남편 증세는 나날이 심해져 혼자서는 외출도 운전도 할 수 없다. 누군가 옆에 붙어있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지역도서관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아내의 일상에도 제동이 걸렸다. 소식을 들은 아들이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제안했다. "간병인을 구해드릴테니 아버지를 맡기고 어머니는 일을 계속하세요." 아들의 제안을 곰곰 생각해보던 아내는 며칠 후 결단을 내린다. 도서관에 사직서를 내고 집에 돌아와 아들에게 전화한다. "간병인은 필요없다."

본격적으로 남편을 돌보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수퍼에 들러 성인용 기저귀를 사오고 식사를 챙기고 남편 옆에서 큰소리로 책을 읽는다. 집나간 남편을 찾아 온 동네를 돌아다니고 남편이 수시로 "누구세요?" 물으면 "나예요. 옌"이라 일일이 답한다. 피로한 일상이지만 남편이 제정신이 돌아올 때면 함께 고생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베트남계 미국작가 비엣 타잉 응웬(Viet Thanh Nguyen)이 2017년에 쓴 단편 'I'd love you to want me'의 줄거리다. 그의 단편집 <The Refugees>에 수록되어 있다. 소설속 남편은 프랑스에서 해양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조국인 베트남으로 돌아와 학생들을 가르치던 교수였다. 1975년 베트남이 공산통일되자 부부는 배를 타고 베트남을 탈출했고, 보트피플로 바다위를 떠돌다 미국에 정착했다. 남편은 미국대학에서 베트남어를 가르치며 살다 이제 치매를 앓는 노인이 되었다. 난민출신의 이 부부가 현실에서는 어떤 복지혜택을 받을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이런 이야기는 어떤가.

루까는 파리에 산다. 에어프랑스사에서 항공정비사로 30년 넘게 일하다 60세에 은퇴했다. 은퇴 후 아내와 이곳저곳 여행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갑자기 아내에게 이상이 생겨 병원에 가보니 알츠하이머라 했다. 아내가 남편을 알아보지 못하는 지경이 되었지만 루까는 매일 병원에 들러 아내가 식사하는 걸 도와주었다. 몇 달 뒤 병원에서 통보가 왔다. 치료가 끝났으니 퇴원하라는 통보였다. 루까는 사립요양원을 수소문해 아담한 규모에 시설이 잘 갖춰진 곳을 찾아냈다. 한 달 비용이 3,500유로나 되지만 아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아 그곳으로 아내를 옮겼다. 그날 밤 루까는 자신의 재정상태를 검토했다. 연금과 그동안 저축해놓은 돈이면 앞으로 3년은 버틸 수 있다. 그 다음에는? 무일푼이다. 루까는 그날 달력에 이렇게 적었다. '지금부터 1,095일 남음'.

존 버거의 수필집 <벤투의 스케치북>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탈리아인 부모를 따라 파리로 온 루까는 어린 시절부터 신문배달과 공사판 심부름 등의 잡일을 하며 집안생계를 도왔다. 종전 후에는 오를리공항 건설 현장에서 잡역부로 일하다 공항 근처 에어프랑스사에서 기계견습공으로 일했고 그의 꼼꼼한 일솜씨를 상급자가 맘에 들어해 수석 항공정비사 자리까지 올랐다. 그 사이 프랑스여자와 결혼해 가정도 꾸리고 열심히 저축하며 살았는데, 어느덧 노년이 되었다. 

생애 말기 돌봄과 죽음의 문제를 다룬 책  <각자도사 사회, 송병기 지음, 어크로스>를 읽었다. 한국 사회에서 병들어 늙고 죽어가는 문제가 쉽지않음을 고민케 하는 책이었다.   

호스피스 이야기를 특히 흥미롭게 읽었다.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를 통해 연명의료를 중단하거나 보류할 수 있는데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받으며 임종할 경우 국민건강보험 혜택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호스피스를 이용하려면 주치의로부터 '말기' 판정을 받아야 하고 이런 의료결정은 주치의의 철학에 따라 요동치는 게 현실이다. 한국은 말기암 환자를 중심으로 호스피스가 운영되고 있다. 저자는 여러 사례를 들며 한국에서 아직 호스피스가 원활히 작동하지 못하는 걸 아쉬워한다.

모두가 피하고 싶어하지만 언젠가는 맞이할 수 밖에 없는 게 바로 죽음이다. 그렇다면 존엄한 임종을 선택할 권리도 있어야지, 연명의료 기술이 발전했다고 삶의 서사는 없이 의료기기에 기대 죽지않고 오래산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애주기를 통틀어 누구나 겪는 질병과 노화 앞에서 존엄한 돌봄과 임종을 맞으려면 돈이 많거나 운이 좋아야한다는 사실 앞에서 씁쓸해졌다. 돈의 유무에 따라 숙련된 간병인과 쾌적한 시설, 섬세한 의료서비스를 제공받는 세상이니, 사는 것 만큼이나 죽는 것에도 차별이 넘치는 세상이다.

늙어가는 일은 육체에서 점점 소외되는 일이다. 자기 몸을 마음대로 조절하지 못할 때 인간은 무력감을 느끼게 되고 이 무력감은 비참함으로 이어진다. 노년기에 닥치는 절망감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해서는 물론 각자가 모색해야 할 문제겠지만 이를 사회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함께 검토할 수 있다면 우리 모두 조금은 덜 쓸쓸하지 않을까. 그런 사회가 도래하기를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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