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히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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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고구려를 세운 궁예는 낡은 신분제도인 신라 골품제를 깨는 데는 기여했지만, 비상식적인 우상화 작업으로 자신의 기반을 스스로 약화시켰다. <삼국사기> 궁예열전는 권력의 절정기에 달한 궁예가 "자칭 미륵불이라 하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몸에 방포(方袍)를 걸쳤다"고 말한다.
금관과 승복 차림으로 미륵불을 자처하는 궁예는 거리를 행차할 때도 장엄한 광경을 연출했다. 깃발, 일산(양산), 향과 꽃을 든 젊은 여성과 남성들이 앞에 서고 승려 200여 명이 뒤따르면서 노래를 부르도록 했다.
<삼국사기>에 묘사된 이 장면보다 훨씬 우스꽝스러운 일이 일본의 히로히토와 그 동맹자인 독일 히틀러에게서 나타났다. 궁예의 경우와 달리, 이들이 벌인 일은 인류 역사에 전대미문의 부정적 파급력을 끼쳤다. 이들은 우상화를 시도했다는 점에서는 궁예와 비슷하지만, 전 세계 인류를 불행으로 몰아넣었다는 점에서는 궁예와 차원을 달리했다.
전쟁 패망 3개월 보름 뒤인 1946년 1월 1일, 나루히토 현 일왕(천황)의 할아버지인 히로히토 일왕은 흔히 '인간선언'으로 불리는 '신일본 건설에 관한 조서'를 발표했다. 조서에서 그는 "짐과 너희 국민들 간의 결합은 시종일관 상호신뢰 및 경애로 둘러싸이는 것이지, 단순히 신화와 전설에 의해 생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천황을 현어신(現御神)으로 하고 또 일본 국민을 다른 민족보다 우월한 민족이라 하고 나아가 세계를 지배할 운명을 가졌다고 하는 가공의 개념에 기초한 것도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자신과 일본 국민의 관계는 신화에 의해 매개되는 것이 아니며, 자기를 신으로 설정하는 가공의 관념에 기초한 것도 아니라고 인정한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그는 자기가 신이 아님을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자기가 신이라는 전제하에 세계를 자신의 지배하에 두고자 대대적인 침략전쟁을 일으키고 대중을 강제징용·위안부·강제징병에 동원했던 이전 모습과 대비되는 장면이다.
히틀러는 그런 인간선언을 할 기회가 없었다. 이탈리아 무솔리니가 처형되고 이틀 뒤인 1945년 4월 30일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 역시 미국의 압력을 받아 인간선언을 했을 수도 있지만, 그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히로히토뿐 아니라 히틀러 역시 우스꽝스러운 자기 신격화를 시도했다. 그 역시 자신을 메시야로 설정했다.
권력과 신앙: 히틀러 정권과 기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