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정환'들'이시여! 힘 내시라

어린이 해방 선언 100주년의 해,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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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수(ubomanri)등록 2023.07.25 15:29
당신은 고달펐습니다. 너무도 고달펐습니다. 
남달리 세상을 위하여 많은 일을 하시노라고 당신의 몸은 몹시도 고달펐습니다. 두 가지 잡지(<어린이> <학생> - 필자 주) 편집만에도 고달프실 텐데, 학교일, 소년회 일, 또 집안일에, 고팔프다 고달프다 못하여 시들었습니다. 아아, 고달픈 얼굴이, 그 말할 수 없이 시든 얼굴이 우리들 머리에 사라질 날이 있사오리까. 그 고달픈 얼굴에 웃음을 보기 전에, 그 닦아 놓은 화단에 꽃과 열매가 맺기도 전에 왜 당신은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까? 너무도 이르지 않습니까? 너무도 빠르지 않습니까? 
이 글은 1931년 7월 25일, 천도교중앙대교당(경운동88) 앞마당에서 열린 영결식에서, 소파 방정환이 가장 사랑하던 소년회원이자 동지이기도 했던 미소 이정호(微笑 李定鎬, 1906-1939) 조사 중 일부이다. 
 

방정환 장례식장( 이 사진은 1931년 7월 23일 서거한 방정환의 장례식장(1931.7.25) 이 장소는 천도교중앙대교당 앞마당(경운동88)으로 방정환이 1921년 천도교소년회를 창립한 곳이고, 1922년 5월 1일 최초의 어린이날 행사를 거행한 곳이다. ⓒ 박길수

 
방정환 선생은 1931년 7월 23일, 향년 33세를 일기로,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서거하였다. 심혈관계 질환이라는 설도 있고, 신장병이 악화되어서라는 설도 있으나, 어느 쪽이든 그가 어린이를 위한 다방면의 운동, 동화 구연 등의 활동, <어린이> 지를 위시한 개벽사 잡지 간행 등에 과로한 때문에 발병하고, 병이 악화되어 결국 서거하게 되었다는 데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오늘, '문명화'된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선생님의 교권과 아동(어린이-이하 '어린이')의 인권이 서로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원수처럼 대립하며 으르렁대는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한 선생님이 죽음으로 내몰렸다. 어찌 이 한 분뿐이랴. 은폐된 죽음이 적지 않고, 죽음보다 못한 치욕을 견디며, 병실에서 혹은 교실에서 소리죽여 우는, 죽어 가는 선생님들이 한둘이 아닐 테다. 나는 이들이 모두 이 시대의 방정환'들'이라 믿고 있다. 

일제 강점기 방정환 등의 어린이운동이 난황에 난황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단지 어른-부모들의 몰이해나 경제적 여건 등이 갖춰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일제 식민당국의 유형 무형의 압박과 탄압 때문이었다. 일제로서는 '어린이가 10년 후의 조선의 희망'이라는 그 운동 취지가 그야말로 자신들의 인후(咽喉)를 노리는 비수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진 것이 조선 사회의 경제적, 윤리적 악습이었을 뿐이다. 

오늘의 선생님의 서거도 그가 자초한 일이라기보다는 어린이를 선생님 앞으로 내몰아 '인성교육의 부재' '학교/교육 당국의 무관심과 책임 회피' '내 자식 제일주의, 내 자식의 학적부에 조그마한 흠결도 남겨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의 원흉으로서의 입시제도' 등등이, 마치 일제강점기 식민당국(일제)의 탄압의 굴레처럼 선생님을 옥죄어 죽음으로 내몰아 간 것이 아니겠는가. 하여, 90여 년 전 방정환의 죽음이나, 오늘 선생님들의 죽음이나, 그 죽음이 가리키는바, 어린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향한 "방정환'들'"의 행보는 여전히 계속되어야 한다. 그것이 방정환'들'의 죽음을 헛되히 하지 않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 어린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향한 헌장이라고 할 만한 것이 <어린이 해방 선언>(1923)이다. 

올해는 소파 방정환(小波 方定煥, 1899-1931), 소춘 김기전(소小春 金起田, 1894-1948) 등이 세계 최초의 <어린이 해방 선언>을 공포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100년 전, 방정환, 김기전 등의 어린이 운동 선구자들이 "어린이 인권(해방) 선언"을 내걸어야 했던 정황은 분명하다. 당시는 어린이가 한 사람의 인격체(인간)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매질과 노동이 일상화되었던 시대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재래의 윤리적 위계질서의 최하층에서 어른들의 놀잇감이 되거나 일방적 학습의 대상으로서만 취급되던 세태를 근본에서부터 바로잡겠다는 뜻을 담고 있었다.

방정환 등은 1921년 천도교소년회를 세우고, 1922년 제1회 어린이의 날행사를 치르고, 1923년 3월에는 <어린이> 잡지를 창간하였다. 그리고 그해(1923) 5월 1일 제1주년 어린이날 행사의 메인 행사는 "<어린이 해방(인권)선언>의 반포와 선전 활동이었다.
 

어린이 해방선언을 소개한 당시 동아일보(1923.5.1) 기사에 따르면이날 <어른들에게><동무들에게>가 담긴 선전지 12만 장이 시내 곳곳에 배포되었고, '소년운동협회'에서는 <소년운동의 기초조건> 3개항을 공포하였다. ⓒ 박길수

 
<어린이 해방 선언>은 먼저 총론격인 '소년운동의 세 가지 조건'에서 "어린이들을 윤리적 압박으로 부터 해방하여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할 것"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일체 소년 노동을 폐지할 것"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 수 있도록 가정과 사회적 시설을 행할 것"을 제시하였다.

이어서 어른들에게 (1)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말고 치어다 보아 주시오" (2) "가까이 하고 자주 이야기하여 주시오" (3) "보드라운 말로, 경어로 대해 주시오" (4) "위생을 잘 챙겨 주시오" (5) "잠자기, 운동을 충분히 시켜 주시오" (6) "산보와 원족을 가끔가끔 시켜 주시오" (7) "꾸짖을 때는 성만 내지 말고 자세자세히 타일러 주시오" (8) "놀이터 등을 많이 지어 주시오"라는 8개 항에 더하여 마지막 제9항으로 다음과 같이 선언하듯 당부한다.
대우주 뇌싵경의 말초는 늙은이에게 있지 아니하고 젊은이에게도 있지 아니하고 오직 어린이 그들에게만 있는 것을 늘 생각하여 주시오.

어린이가 가장 새로운 생명의 원천임을, 우주의 근원임을 선언하여, 사고의 대전환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날의 <어린이 해방 선언>에서는 어린이들에게도 (1) "돋는 해와 지는 해를 반드시 보기로 합시다" (2) "어른들에게는 물론이고 당신들(어린이들-필자 주)끼리도 서로 존대하기로 합시다." (3) "꽃이나 풀을 꺾지 말고 동물을 사랑하기로 합시다" 등 7개항의 약속을 제시하였다.  

돋는 해와 지는 해를 볼 줄 알고, 어린이들끼리도 서로 공경하며, 꽃이나 풀을 함부로 꺾지 않고 동물을 사랑하는 어린이들은 선생님 또한 공경하고, 해치지 않으리라. 어른들(학교당국, 교육당국, 부모들)이 할 일은 그러한 일을 우리 시대의 방정환'들', 선생님들과 어린이들이 스스로 해 나갈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일, 그것뿐이다. 

이 <어린이 해방 선언>은 1923년 5월 1일 어린이날을 기하여 작성되었고, 이날 수십만 장의 전단을 만들어 전국에 배포하고, 서울 시내에는 어린이들이 직접 곳곳을 다니면서 전단을 배포하였다. 방정환, 김기전, 박달성 등 천도교소년회의 지도위원(천도교청년당 당원)들은 어린이들이 주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뒤에서 돕고 옆에서 지원하며, 어린이들이 스스로의 주인으로, 시대의 주역으로 성장하기를 빌고 빌었다.

다시, 그로부터 100년 대한민국에서 펼쳐지는 풍경은 무엇인가? 그 해방 선언 조항의 많은 부분이 성취되었으나, 얻은 것만큼 잃은 것이 많아져 버렸다. 누가 선생님을 싸움판으로 내몰아 가는가? 누가 이른바 '학생인권조례'를 이번 사태의 원흉으로 지목하며, 뒤로 숨는가? 어린이 인권과 선생님의 교권(인권과 교육권)은 결코 부딪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부딪치게 하는 세력이 문제를 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교실에 안의 일에 관한 한 학부모조차도 선생님의 그림자를 밟아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것이 그들 자녀(어린이)를 위하는 일이며, 이 세상의 미래, 이 우주의 생명을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오늘 어린이 인권 보장이 여기까지에 이른 것은 방정환 선생과 그 동지들, 그리고 그 뜻을 이어 받은 이 땅의 수많은 선생님들의, 어린이 운동가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해코지하고, 그 귀중한 동산의 꽃을 꺾어서 내 집안에만 들여다 놓으려고 하는 '이기주의' '내 자식 상전주의'는 모두가 어른들의 죄악이다. 그 죄악에 물든 어린이들은 또 다른 희생양일 뿐이다. 제발, 정신을 차리자!

위 이정호의 조사는 이렇게 끝이 난다. 우리 시대, 그 선생님'들'께도 드리는 마음이다.
당신의 고달픈 몸을 작별하는 이 마당에 당신의 친애하던 모-든 사람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신문지 보부(報訃-부고)로 온 조선 곳곳의 운동 동지가 이 시간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원컨댄 이 많은 사람의 뜻을 받아 당신의 몸은 편안히 창공의 흰구름을 타시고, 당신의 영(靈)은 오래도록 우리의 옆에 계셔서 자라가는 소년운동을 보시고 소년회관에서 울려 나오는 노래 소리를 들으시면서 오래도록 오래도록 웃고 지내 주소서! 운명시까지 안타까워하시던 <어린이> 잡지는 당신을 대신하여 이 몸이 꽃과 열매를 맺어 드리오리니, 부디부디 마음 편히 돌아가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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