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민의힘 국토교통위원회 실무 당정협의회를 가진 뒤 소통관에서 브리핑 하던 중 "서울-양평 고속도로 전면 백지화, 정치 생명 걸겠다"고 밝히고 있다.
남소연
언제부터인가 괴담정치나 가짜뉴스라며 의혹 제기 자체를 뭉개는 것이 정치권의 습성으로 자리 잡은 분위기다. 의혹에 대해서든 합리적인 의문 제기에 대해서든 충분히 설명하지도 해명하지도 않는 일이 빈번해졌다. 대통령실 보도자료만 봐도 그렇다. 일단 가짜뉴스 등으로 규정하고 의혹의 신빙성부터 깎아내린다.
아니면 말고 식 무책임한 폭로가 많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정치 혐오만 키우는 허위 폭로가 문제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국정을 책임진다는 이들이 걸핏하면 '괴담' '가짜뉴스'로 몰아가는 것이 과연 적절한 태도일까. 오히려 의혹 제기를 차단하고, 어떤 반응도 논의도 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까지 보인다.
실제 괴담몰이는 사안의 본질을 가리고 반드시 해명해야 할 것도 어물쩍 넘어가기 위한 방편이 되고 있다. 서울-양평간 고속도로 특혜 의혹에 대한 원희룡 장관의 태도가 바로 그렇다. 애초부터 장관은 제기되는 질문에 답하기보다는, 야당이 '거짓 선동'을 하고 있다며 그것을 이유로 국책사업 백지화 선언이라는 무리수를 두었다.
현재까지 해당 고속도로의 양평 종점 변경에 관한 원희룡 장관과 국토교통부의 주장은 남김없이 기각되었다. 상황이 여기에 이르자 뒤늦게 국토부는 "무책임한 괴담으로 국민이 피해"를 볼 수 없다며 국민 질문에 답하겠다고 한다. 제대로 해명하는지 지켜볼 일이다.
이와 별개로 고속도로 종점의 급작스런 변경이 국토부의 독단에 의한 것이었는지,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의한 것인지를 규명하기 위한 국정조사를 추진해야 한다. 국정을 책임진다는 이들에게 답하지 않을 권리라는 건 없다.
정권에서 연일 부르짖는 '이권 카르텔'은 실체가 있는 것일까. 아무 데나 갖다 붙이면서 희화화되고 있지만, 사실 우리 사회에는 공인된 이권 카르텔이 존재한다. 검찰을 위시해서 전관예우라는 이름으로 부와 사법 정의를 맞바꾸는 법조계, 통신요금 담합으로 막대한 수익을 거두는 이동통신사들, 고가의 분양가로 수익을 거두지만 부실공사 책임은 하청으로 돌리는 민간건설사들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현 정권은 노조에 대한 공격에 이어 시민단체를 이권 카르텔의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그 근거로 얼마 전 대통령실은 '비영리 민간단체에 지급된 국고보조금에 대한 감사 결과'에 관한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그 내용은 "최근 3년간 지급된 1만 2000여 개 사업, 6조 8천억 원이 감사 대상이었고, 이 중 1865건 314억 원의 부정 사용이 적발되었다'는 것이었다.
감사 대상이 된 비영리 민간단체는 각종 협회, 재단, 연맹, 복지시설, 시민단체 등을 포함하고 있다. 정부나 지자체를 감시하는 시민단체는 비영리 민간단체의 작은 일부이고, 그중에 재정적으로 독립된 활동을 하는 단체들은 지원금이든 보조금이든 받지 않기 때문에 해당 사항이 없다.
대통령실은 감사 결과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자료는 공개하지도 않았다. '정치 목적 단체 지원으로 부정사용' 등의 몇몇 사례가 간단히 소개된 정도일 뿐이다.
다양한 목적과 활동 방식을 가진, 영리 목적이 아닌 민간기관은 수없이 많다. 이들 중에는 정부나 지자체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위탁사업을 수행하는 곳도 있고, 청소년과 노인 등 공동체 구성원을 보살피고, 마을을 정비하는 등 각종 지원사업을 통해 공동체의 유지와 지속가능성을 위해 역할 분담을 하는 곳도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는 복잡하고 분화된 사회에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 와중에 부정과 일탈이 발생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책임을 물으면 될 일이다.
그러나 대통령실의 감사 결과는 "시민단체들의 혈세 도둑질"로 둔갑하였고 "정부 보조금 나눠먹기 카르텔"로 이어졌다. '시민'을 내걸지도 않고 정치색도 없는 수많은 비영리 민간단체들이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표현에 따르면 졸지에 "정권에 빌붙어 빨대를 꽂는 '시민 참칭' 흡혈 기생 집단"이 되어 버렸다.
서울시 지원 대상이 공공기관, 노동조합, 대학, 언론, 종교단체 등을 포함하고 있는데도 오세훈 시장이 "서울시가 시민단체 ATM기"라며 시민단체를 모욕했던 것은 또 어떤가. 구체적인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서울시도 마찬가지이다.
자유총연맹 등 관변단체들에는 아예 법률로 각종 지원을 규정해 주고 있는데, 정작 실재하는 이권 카르텔은 손대지 않듯이 이런 지원은 그대로 유지한다. 이러고도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축인 비영리 민간단체들에 대한 지원을 "권력에 유착된 시민단체에 대한 퍼주기"라 매도하는 것은 결코 온당하지 않다. 사실관계에도 맞지 않을뿐더라 현실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시민단체, 신뢰도 낮으니 필요 없다?